[이수완의 월드비전] 트럼프 '뭇매'에 중국경제 맷집만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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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1-01-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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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ㆍ중 투자협정 합의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중국 경제의 성적표는 코로나19 여파로 역성장을 보인 미국이나 다른 주요 서방국가들을 압도했다. 거시경제측면에서 중국의 독보적 성과는 공산당 주도의 권위주의적 경제 발전 노선이 서구식 자유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시진핑 주석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중국 누르기'에 올인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나고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세계는 미국의 새로운 대중 전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숨겨둔 거대한 용의 '발톱'을 서서히 드러내며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식 자유 자본주의와 정면대결에 돌입할 태세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겐 트럼프의 무차별 공격에 맷집만 더 좋아진 중국을 상대로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시 주석은 2017년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마오쩌둥·덩샤오핑과 동일한 위상을 획득했다. 당시 서구 사회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유럽의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싼 갈등과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득세로 혼란이 멈추지 않았다. 이런 취약한 서구의 모습은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배제하고 자유시장과 규제완화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낳은 산물이기도 하다. 중국 지도부는 서구식 모델에 대한 미련이나 환상을 떨치고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 모델에 대한 신념을 더욱 굳히게 된다. 당 대회를 통해 권력기반을 공고히 한 시 주석은 서방국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시장개입과 검열·통제를 강화해 나갔다. 동시에 서구에 뒤처진 과학기술에 공격적인 투자와 함께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등 IT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육성했다. 이러한 소위 중국식 국가자본주의(red capitalism)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무역 선전포고로 분기점에 이른 듯했다. 

미국의 무역전쟁 판정패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무역전쟁은 미국의 판정패로 귀결된 모습이다. 트럼프는 2018년 36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상품에 대한 폭탄관세(15~25%)를 발표하면서 미국은 손쉽게 중국에게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5G 시장 선도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제재조치까지 이어지면서 수세에 몰린 중국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기 직전인 지난해 1월 미국과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했다. 중국이 172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미국은 관세율을 낮추고 일부 중국제품에 예정되었던 추가 관세를 철회하는 내용이다. 미국이 중국을 더 몰아붙이지 못하고 1년반 만에 무역협상을 타결한 것은 관세폭탄에도 불구하고 대(對)중국 무역적자는 미국이 기대와 달리 줄어들긴커녕 오히려 더 늘어난데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기업들의 불만도 커졌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너무 높아, 대중 압박이 거셀수록 더욱 큰 피해를 보는 미국 기업들이 속출했다. 거기다가 중화민족주의까지 앞세운 중국 공산당의 반미 공세도 대단했다.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은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존재감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었다. 글로벌 공급망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수요가 급증한 의료용품이나 재택근무용 컴퓨터 등 주요 소비재를 제때 대량으로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가는 오로지 중국뿐이었다. 트럼프가 미국 기업들에게 본국으로 리쇼어링(reshoring) 또는 동남아 등으로 이전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을 통한 탈중국화를 독려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세계 최대 제조업 기지이며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을 포기하는 것은 미국 기업들에게 쉽지않은 선택이다. 2018년과 2019년 미국의 무역 대공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6%를 넘는 양호한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지난해에는 40년 만에 최저수준이지만 2.3% 성장으로 세계 주요국 중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당시 중국 GDP는 미국의 31%에 불과했으나 작년에는 70% 수준을 넘었다. 미국을 추월하는 예상시점도 기존의 2030년에서 점차 앞당겨질 전망이다. 이젠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갈수록 위력을 더하는 중국이라는 초대형 태풍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제조업과 과학기술 분야에 비해 중국은 아직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기축통화인 달러의 패권을 쥔 미국과의 격차를 줄이기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와 디지털 화폐 발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미 여러 차례 디지털 위안화를 실제로 사용하는 실험을 마쳤다.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가 되어 미국의 달러화 통화패권을 일부라도 차지하겠다는 의도이다. 월가(Wall Street)에서는 미국의 금융분야 우위 유지가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꼽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 사태로 주춤한 사이 중국이 글로벌 자금을 급속히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1630억 달러)은 미국(1340억 달러)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에 등극했다(월스트리트저널 보도). 미국이 뒤늦게 중국 기업들의 자국내 상장을 배제시키고 있지만 양국 금융시장의 관계는 밀접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의 금융시장 개방과 함께 미국 대형 금융기관들이 중국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향하는 글로벌자금 


지난해 달러화 가치는 미국의 경기침체에 대응한 엄청난 돈풀기로 크게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지난해 달러화 미국 국채 매입을 지속적으로 축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믿을 만한 자산으로 평가되는 미 국채를 중국 중앙은행이 다른 자산으로 교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여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투자가들의 안전피난처 역할을 했던 미 국채시장이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 경제위기 상황에서 외면을 당한 것은 의미심장한 변화이다. 미 국채 매입 축소와 동시에 중국 지도부는 자국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으로 글로벌 자금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미 연방준비은행의 저금리정책과 고인플레이션 용인정책으로 현재 미 10년물 국채수익률은 1%선을 넘나들고 있는데, 중국의 10년물 국채는 3.1%로 3배가 넘는다. 올해 들어서 중국은 각국의 재무부나 국부펀드 또는 자산운용사에게 중국 국채에 투자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홍콩 시장에서 중국 본토 채권을 외국인이 쉽게 살 수 있게 한 이른바 채권통(債券通)에 대한 부양책도 선보이고 있다. 제로금리 정책과 대규모 국채발행 등 비상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미 경제 내부 혼란상을 이용, 중국 지도자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위안화와 연동된 중국의 주식과 채권은 불안전 자산으로 평가받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까지 5년 동안 위안화는 달러화에 비해 15%정도나 가치가 하락했다. 국제투자가들이 위안화 대신 달러화 표시 국채를 선호한 주요 원인이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의 상승을 지속적으로 용인했다. 위안화 강세는 미국보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적게 받은 중국이 미국보다 돈을 훨씬 적게 풀고 금리도 거의 손대지 않은 것이 원인이지만, 무엇보다도 높아진 중국 경제의 위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추락하는 달러화 위상과 투자가들의 미국 자금시장 이탈은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투자자들이 상대적 고금리로 투자 매력도가 높아진 중국 자산을 더욱 사들이다면 위안화의 ‘몸값’은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달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에 나설 경우 위안화 강세와 달러화 약세기조는 지속될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는 조만간 ‘달러당 5위안대 시대’, 즉 ‘초강(超强)위안’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1930년대 대공황을 연상케하는 코로나 팬데믹 경제위기를 계기로 나타난 서방경제 시스템의 취약성은 상대적으로 중국 경제의 견고함과 잠재력을 부각시켰다. 그렇지만 중국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이며 지속적으로 강력한 경제 성장세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기본 전략, 즉 철저한 정부의 감시로 기업을 통제해 나가는 한편 시장경쟁을 통해서 안정성과 역동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서로 모순적인 시노믹스(Xinomics)는 미국과 서방의 이해와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이코노미스트지(誌)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기업내 당 조직을 통해 기업을 전략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민간기업들은 앞다퉈 사내 당 위원회를 설립하고 기업전략 수립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 기업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정부가 승인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상당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기업이 시장규율을 준수하고 당 통제를 더 따르면 중국의 거대한 집단적 목표 달성이 용이하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국가자본주의 방식을 선호하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긴장과 갈등의 심화일 것이다. 


바이든 시대, 미중 협력은 가능한가 

트럼프 시대 각종 무역보복에 시달리던 중국은 바이든 시대가 도래했어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트럼프처럼 충동적이고 변칙적으로 행동하는 대통령은 아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를 빠른 속도로 좁히고 있는 중국을 그냥 놔둘 리는 없다. 중국과의 무역전쟁 1라운드에서 트럼프가 저돌적인 인파이터였다면 2라운드에 등판하는 바이든은 잽을 날리고 뒤로 빠지는 기교파 아웃복서라 할 수 있다. 외교통으로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바이든이 미국의 전통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한 다자 방식으로 중국을 코너에 몰아세운다면 중국은 수세에 몰릴 수도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지난해 12월 30일 중국은 7년간 교착상태였던 유럽연합(EU)과 투자협정에 전격 합의했디. 미국의 최대 동맹인 EU를 끌어안고 중국을 견제하려던 바이든 당선자에게 선제공격을 날린 셈이다. EU로서도 '차이나 머니'의 위력을 확산시키고 있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라고  판단한 듯하다. 

지난해 12월 16일 중국은 중앙경제공작회의를 개최, 2021년 중국경제운영방안을 논의했다. 닛케이의 전 베이징 지국장 가수이 나카자와 논설위원은 이 회의가 끝난 후 나온 중국의 발표문을 주목했다. 그는 2019년 회의 때와 달리 중국 경제가 더 큰 '하방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는 시 주석의 표현이 사라졌음을 지적했다. 대신 중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주요국으로 등장했다는 것, 그리고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가는 막강한 역량 형성의 근본적인 보장은 제도적 우월성이다"라고 강조한 시 주석의 자신만만함이 발표문에  잘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경제를 두고 '블랙 스완'이니, 회색 코뿔소'니 하며 각종 경고음이 울리던 지난 수년간의 암울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진 게 분명하다.

시 주석은 신년사에서 중국만이 코로나를 잘 극복했다고 평가하고 올해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점으로 중국몽 실현과 글로벌 리더십 강화를 강조했다. 작금 미국식 자유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바이든은 중국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제재를 일단 해제하지 않고 중국의 대응을 지켜볼 심산이다. 중국과의 2단계 무역협상도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가 공약으로 내세운 '러스트 벨트' 등 쇠퇴한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은 자유무역을 통한 중국과의 공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다만 양국은 인류 공동의 최대 현안인 기후변화 및 코로나 극복을 위한 보건 분야에서 협력의 여지가 보인다. 즉, 관계 정상화를 향한 양국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미·중 양국이 대립일변도의 신냉전보다는 경쟁과 협력의 시대가 싹틀 수도 있다는 희망은 살아있다. 헨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조 바이든 시대, 미·중 관계는 전략적인 면에서 각각 어느 분야에서 협력하고 경쟁한다는 계획이 수립될 때까지는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로선 미·중간 협력과 상생의 시대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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