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화웨이 런정페이, 미국 피해서 탄광에 간 이유

배인선 중국본부 팀장입력 : 2020-12-21 13:40
미국 제재로 스마트폰,통신장비 사업 난항…'산업인터넷' 집중 석탄·철강 등 전통산업에 첨단IT기술 접목해 '스마트화' 中자주적 산업·공급망 구축 계획과도 연결

지난 7일 중국 산시성의 지하 1000m 탄광을 찾은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 [사진=웨이보]



남청색 작업복 차림에 주황색 안전모를 눌러쓰고, 목에는 흰 수건을 둘렀다. 안전장갑을 낀 손에 든 손전등을 비추며 일행과 함께 어두컴컴한 갱도를 둘러보고 있다.  

지난 7일 중국 산시성의 약 1000m 지하 탄광을 찾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창업주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모습이다. 

이곳은 중국 전국 최초로 5G 통신망이 깔린 '스마트 탄광'이다. 화웨이가 중국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 탄광업체 화양그룹과 함께 지었다. 런정페이는 직접 5G 탄광 내부를 둘러보며 기술 응용 상황을 점검했다.

이튿날, 런정페이는 비행기를 타고 후난성으로 날아갔다. 이번에 찾은 곳은 후난성 샹강 제철소. 그곳에서 5G, 인공지능(AI), 산업인터넷 등 차세대 IT 기술이 접목된 철강 생산 현장을 둘러봤다.

런정페이 회장이 지난 8일 후난성 한 제철소를 방문했다. [사진=웨이보]


1944년생인 런정페이 회장은 내일 모레면 벌써 우리 나이로 78세다. 그가 추운 겨울 노구(늙은 몸)를 이끌고 탄광, 제철소 등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이유는 하나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맞서 활로를 찾는 것이다.

올해 화웨이는 미국의 겹겹 포위망 속에서 그야말로 극한의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각국에 화웨이 5G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며 보이콧 압박을 넣고, 화웨이가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 조달도 못하도록 재갈을 물렸다.  

화웨이는 결국엔 주요 수익원이었던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 ‘아너’까지 팔아 넘겨야만 했다. 런정페이가 "미국이 우리를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닌, 때려 죽이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다시 말하면 중국 기술굴기의 상징인 화웨이에 그만큼 미국이 위협을 느꼈다는 말이기도 하다. 

화웨이는 주저앉지 않았다. 중국경제주간은 “참깨(스마트폰)는 잃었지만 런정페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박(5G 산업인터넷)을 노렸다”고 표현했다. 중국 속담엔 참깨를 줍고 수박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작은 걸 구하려다 되레 큰 걸 놓친다는 말이다. 하지만 화웨이는 큰 걸 위해서 작은 걸 버렸다.

화웨이의 사업은 크게 세 부문으로 나뉜다. 스마트폰 등을 취급하는 소비자 부문, 기지국 등 통신장비를 취급하는 캐리어네트워크 부문, 그리고 엔터프라이즈(기업) 부문이다. 이 중 소비자 부문이 캐시카우다. 지난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로 사실상 스마트폰 부품 조달이 어렵게 되면서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캐리어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미국 주도로 전 세계에 5G 통신망에 화웨이 장비 보이콧 움직임이 일면서 난항에 부딪힌 상황이다.

남은 건 기업 부문이다. 지난해 화웨이 전체 매출에서 비중이 10% 내외로 가장 왜소하지만 화웨이가 앞으로 집중적으로 키워나갈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특히 5G 시대 기업 부문의 발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핵심은 산업 인터넷이다. 산업인터넷은 각 기업 산업 현장의 모든 장비를 인터넷으로 연결시킨다는 말이다. 런정페이가 제철소, 탄광을 줄줄이 방문한 것도 낙후된 산업 현장을 스마트화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런정페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올 초부터 화웨이 고위 경영진은 유난히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중국 베이징청년보 산하 SNS 매체인 정즈젠에 따르면 올 들어 쉬즈쥔 부회장, 궈핑 부회장, 후허우쿤 부회장, 펑중양 기업부문 총재 등이 후난성·지린성·헤이룽장성·장쑤성·산시성·후베이성 수장과 잇달아 만났다. 5G,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산업인터넷 등 방면에서의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는 중국 지도부가 내세우는 내수 확대, 기술 자립 중심의 '쌍순환(雙循環) 전략'과도 연결된다. 중국은 현재 미국 봉쇄 전략에 맞서 중국 내 자주적 산업망과 공급망 구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선 자국의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디지털 인프라를 깔고 산업·공급망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한가운데 화웨이가 자리잡고 있다. 

2001년 초 런정페이는 사보 ‘화웨이인(人)’에 ‘화웨이의 겨울’이라는 장문을 게재했다. 당시는 화웨이가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중국 대표 IT기업으로 부상하던 때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봄이지만, 겨울이 머지않았다. 위기감이 있어야 10년을 더 생존할 수 있다”고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월동'을 미리 준비한 화웨이에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됐다. 오늘날 '화웨이의 겨울'은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필독문'이 됐다.

오늘날 화웨이는 그때보다 더 혹독한 겨울에 맞닥뜨렸다. 화웨이는 과연 이번 겨울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사진=화웨이]


컴패션_미리메리크리스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