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통치변화] ①‘만기친람’ 버렸지만…공개서한으로 ‘건재함’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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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인 기자
입력 2020-09-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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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發 '위임통치' 北 권력구조 변화 관심 ↑

  • 김정은 권력 약화·쿠데타 등 각종 추론 이어져

  • 김정은 5일 수해지역 방문…위기관리능력 과시

  • 함경남도 현지 정무국 확대회의 '이례적' 소집

  • 태풍 피해책임 당 간부 해임, 최고권력 재확인


지난 8월 20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위임통치론은 꺼내 들었다. 김 위원장이 통치 스트레스 부담 절감 등을 위해 자신의 권한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 당 주요 간부에게 이양했다는 주장이다.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국정원의 업무보고 내용을 전하며 “후계자를 결정하거나 후계자의 통치는 아니다”라면서도 “김여정이 사실상 2인자”이라고 했다.

국정원 보고 이후 김 위원장의 권력 동향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동안 잠잠했던 ‘김정은 건강이상설’. ‘쿠데타설’, ‘김여정 후계자설’ 등 각종 ‘추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특히 최근 노동신문 1면에 김 위원장이 아닌 당 간부들의 현지시찰 소식이 연이어 게재되는 등 이례적인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김 위원장의 권력 약화 주장 목소리는 커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 5일 제9호 태풍 ‘마이삭’ 피해 지역을 함경남도를 찾아 당 중앙위원회 정무국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평양시 당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는 등 자신의 권력 건재함을 과시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권력 장악은 여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 위원장이 최근 각 분야 핵심 간부들에게 정책 결정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역할분담’의 개념으로, 오히려 권력 장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강원도, 원산시, 함경남도 등의 태풍 피해가 심각해지자 해당 지역의 당 간부를 즉각 해임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외형상으로는 ‘임금이 온갖 정사(政事)를 친히 보살핀다’는 만기친람(萬機親覽)식 통치 굴레에서 벗어나 당 간부의 역할과 책임을 분야별로 분담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의 권력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의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본 함경남도에서 노동당 정무국 확대회의를 열었다고 조선중앙TV가 6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방송 캡처]

 
◆수해 지역 또 찾은 김정은···‘현장 통치’ 지도자 행보 강조
6일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태풍 ‘마이삭’ 피해 지역인 함경남도를 직접 찾아 태풍 피해 복구 사업을 지시했다.

그는 함경남도를 방문하기 전인 지난 3일 당 부위원장들을 먼저 파견해 피해 상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현지에서 소집한 정무국 확대회의에서 상세히 보고받았다.

김 위원장이 수해 지역 현지에서 회의를 주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노동신문 등을 통해 공개하는 것도 드문 일로, 이번 사안이 긴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전시 상황에서 하던 공개서한 형식을 선택해 북한의 태풍 피해가 심각하는 것을 방증한다. 

김 위원장은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우려에도 직접 운전해 수해지역을 찾으면서 홍수·태풍에 따른 피해 예방, 피해 복구 사업 강화를 강조해 주목을 받았다. 

김 위원장이 함경남도에서 주재한 정무국 확대회의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조선중앙TV에 공개된 회의 장면을 근거로 이번 회의는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정은 전용열차에서 현지 회의 진행 모습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 “위기관리능력을 과시하며 현장통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 실장은 “일반적인 국가의 수해복구 현장에 대한 지도자 방문과 같은 형식의 통치 행보를 보였다”면서 “기존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수해 이후 관료들을 이끌고 현장 방문해 지도력을 돋보이게 한 측면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김정은 전용열차’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정무국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영상 캡처]

 
◆수해지역 당 간부 해임·공개서한으로 ‘권력 장악’ 재확인
북한의 코로나19·홍수·태풍 등 재난재해 대응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국정운영 방식 변화가 확인됐다. 최고지도자의 권한을 분산시켜 제한된 자율성을 주고, 사업성과에 따라 책임을 지는 것이 변화의 특징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국정원의 ‘위임통치’ 보고를 앞세워 주장하는 ‘김정은 권력 약화’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재난대응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권력 장악이 한층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김 위원장이 태풍 피해 지역에서 직접 책임자를 해임하고, 평양시 당원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것이 그 근거다. 김 위원장은 공개서한에서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최정예 수도 당원 사단’ 조직을 구성해 평양 당원 1만2000명을 수해 지역에 급파하겠다고 밝혔다.

홍 실장은 “현장에서 직접 함경남도 당 위원장 해임하고 곧바로 후속 인물교체,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하달 등 자신의 ‘영’이 강력하게 하달되고 통치 전반에 압도적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함경남도 당 위원장으로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교체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위임통치가 아닌 자신의 건재함과 직접통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한편 홍 실장은 김 위원장의 공개서한이 사전에 준비된 ‘계획’ 차원으로 보인다면서 수해복구를 위기전환용, 전화위복용, 일심단결용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봤다.

김 위원장은 공개서한에서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과 내년 1월 개최 예정인 제8차 당대회를 언급하며 태풍 피해 복구 사업 강화를 강조했다.

홍 실장은 “사실상 수해를 내부 결속과 당 창건 기념일 성과로 대체하는 작업을 선전·선동 차원에서 기획하는 듯하다”면서 “코로나19로 침체한 평양 분위기를 동원을 통해 일신시키는 계기로 삼는 등 전반적으로 ‘전화위복용’, ‘일심단결용’으로 이번 상황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제9호 태풍 ‘마이삭’ 피해지역인 함경남도를 찾아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피해복구 대응책 마련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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