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의 정치학] ②‘감염 이후 삶은 불평등하다’…사회적 차별·혐오 현상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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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기자
입력 2020-09-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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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역 매뉴얼로 불가능…감염정책의 민주화 절실

전북장애인거주시설인권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이 지난 8월 5일 오전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전북 무주의 지적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사회복지사들이 장애인을 때리고 희화화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며 "전북도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발생 당시 폐쇄된 전북 순창군 장덕리 마을. 동네 안쪽에 거주하던 한 노인이 확진판정을 받았고, 역학조사를 통해 14명의 밀접접촉자가 확인됐다. 이후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거주하던 마을 전체가 격리됐다. 인구밀도가 더 높은 도심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서울시내 한 호텔 계약직 직원들이 해고를 통보 받았다. 한 직원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잘렸어’라며 울먹였다.

코로나19 사태는 6년 전 메르스 때와 비교했을 때 위험 의사소통의 방식과 형태가 상당히 개선됐다는 평가에 이견은 없는 것 같다.

초기 청도대남병원 코호트 격리가 부적절한 조치임을 인정, 환자들을 적절하게 치료 가능한 기관으로 이송하고, 식별 가능한 세세한 동선 공개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을 수용하고 방침을 수정한 것이 주효했다. 또 아직 일부 마스크 미착용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전 국민적인 마스크 착용도 방역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차별과 배제, 혐오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보다 더 연약하고 취약한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 존엄 등을 존중하는 것은 방역 매뉴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코로나19는 ‘신종 감염병’이라는 ‘정치’로 불평등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에도 이미 고된 상황을 버텨내고 있었던 저소득층 등 사람들의 일상이 ‘RT-PCR’(역전사효소)라는 검사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지난달 15일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주관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감염정책의 민주화’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도 중요하지만, 오래된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직도 감염 이후의 삶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유경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언론에 ‘방역 모범사례’로 알려진 전북 순창군 장덕리 마을 사건을 감염 불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박 연구원은 “동선이나 주거밀집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 편의적 조치이자, 과도한 공포에 기초한 비이성적 조치였다”면서 “주민들은 폐쇄 결정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생계나 의료 체계와의 단절을 견뎌야 했다”고 지적했다

전보영 국립재활원 연구사는 “지역사회 감염에 대한 시민들의 민감한 반응과 달리, 수용시설 집단감염 사례는 상당히 남의 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격리된 공간을 바라보는 비격리 공간 사람들의 ‘타자화’, 무관심, 막연한 공포가 작동하고 있는 현상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차등’이 우리사회에서 어느 정도 묵인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전 연구사는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보건통계에서 시설거주자는 제외대상이었다면, 이제 제외대상이 아니라 이들의 건강상태나 기본적인 의료접근성, 서비스 적절성과 안전 등에 대한 평등한 관심과 근거의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장애인 자가격리자나 확진자를 위한 대책이 실제 인프라와 부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애 유형별 감염병 가이드라인’ 및 적절한 보건의료 인력풀 구축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러한 매뉴얼이 제대로 개발되고 활용되기 위해서는 정책적 의지와 연구자의 노력에 더해, 수용시설의 협력과 인권친화적 환경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보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의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정책을 통해 전염병 감염인이 ‘낙인화’되는 현상을 언급했다.

1985년 첫 감염인 발생 이후 한국에 HIV가 대대적으로 확산한 적은 없었고 치료법 역시 꾸준히 전문화됐다.

서 교수는 HIV 감염인의 일상적 삶을 ‘전파 매개 행위’로 간주해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끊임없이 정당화됐다고 봤다. HIV 감염인임을 밝혔을 때 의료기관에서 진료·입원을 거부하는 사례도 반복됐다.

서 교수는 “질병 당사자를 사회문제화하는 것은 공중 보건에 기여하지 않으며 감염인의 사회적 고통만 더할 뿐이라는 것이 지난 40년간 HIV 정책의 교훈”이라며 “(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염의 치안화’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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