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어젠다]<6>철학자 최진석 "우리에 갇힌 우리, 돈키호테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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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철학자
입력 2020-08-1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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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선도국가로 뛰어오르자 ​- 쪼그라진 심장 펴서 한 단계 상승을!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돈키호테']

안 변하면, 죽는다

누구에게나 복을 주는 두 문장이 있다. 하나는 ‘금방 죽는다’이고, 다른 하나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이 두 가지 말을 깊이 인식하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기품을 유지하면서 일의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

‘금방 죽는다’라는 말에는 항상 자기 존재의 품질을 살피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이 말을 기억하면 자신을 인식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각성하여, 기품과 존엄 내지는 품격 등등을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정도에 이른 사람이라야 덕(德)이 있다는 칭찬을 듣는다. 덕은 어떤 사람을 바로 그 사람으로 존재하고 활동하게 하는 힘이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게 하는 동력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의 이치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자유로운 기풍 속에서 변화에 올라타면 흥하고, ‘정해진 마음’에 갇혀 변화에 올라타지 못하면 망한다. 나라나 개인에게 모두 해당된다. 나라가 멈춰 서서 갈등 속에 있다는 말은 변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다. 깃발로 계속 펄럭이느냐 아니면 완장으로 전락하느냐 하는 일도 변화의 여부가 결정한다.

변화는 혁신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동작이다. 그래서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할 일, 혹은 그렇게 하도록 하는 지혜가 바로 ‘건너가기’다. 이 세상에 출현한 모든 것들이 질문의 결과라는 말을 건너가기의 결과라는 말로 바꿔도 하등의 차이가 없다. 대답은 정해진 지식이나 이론에 멈추는 일이라서 건너가지 않으니 새로운 생산에 기여하지 못한다. ‘정해진 마음’에 갇히면, 멈출 수만 있지 건너갈 수 없다.

돈키호테, '건너가기'의 표상

요즘 ‘책 읽고 건너가기’ 운동을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권을 읽는다. 첫 책으로 <돈키호테>를 읽었다. 돈키호테는 세상에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나선 편력기사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온갖 모험에 뛰어든다. ‘모험’이 바로 ‘건너가기’이다. 정의를 실현하려 했다는 것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살던 세상에 정의가 사라졌음을 암시한다. 당시 스페인은 정치나 종교를 막론하고 사회 계층 간에도 심한 내부 갈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화려했지만, 국력은 약화되고 재정이 고갈되어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화려한 영광의 시절은 가고 쇠락의 기운이 감도는 때에 나라에 대한 사명감이 강했던 세르반테스는 멈춰 서서 ‘건너가기’에 실패하고 있는 스페인을 구하고 싶었거나 아니면 몰락해 가는 제국 스페인을 바라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자신을 탓하면서 그저 건너가기의 보편적 희망이라도 심어놓으려 했는지 모른다.

온갖 모험으로 채워진 그의 ‘건너가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도 멈춘 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이다. ‘건국-산업화-민주화’의 직선적 발전을 하다가 민주화에 이른 후 다음 단계로 건너가지 못하고 민주화의 ‘정해진 마음’에 스스로 갇혀 멈춰 있다. ‘촛불은 정말 혁명인가?’(『철학과 현실』119호, 2018년 가을 호)라는 글에서 밝혔듯이 혁명은 소란스럽기만 했고, ‘말만 혁명’이었을 뿐이다. 사람과 색깔만 바꿨지 틀을 바꾸는 과격함은 실현하지 못했다. ‘이것이 나라냐’라고 하면서 뒤집은 정권이 다시 ‘이것은 나라냐’라는 말을 듣는다. 뒤집힌 정권과 뒤집은 정권 사이에 다름이 없다. 과격한 건너가기를 혁명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미 실패했다. 이제는 오히려 민주주의와 자유의 급속한 퇴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멈춘 스페인을 본 세르반테스는 스스로의 무력감을 희망으로 바꾸려고 몸부림치며 <돈키호테>를 남겼고, 우리는 지금 그 <돈키호테>를 읽는다.

무지(無知) 벗어야 건너간다

섬을 통치하러 떠나는 산초에게 돈키호테가 한 말이 참 들을 만하다. “첫째, 지혜로워야 하네. 지혜로우면 무슨 일에서도 실수가 없을 걸세. 둘째, 자신에게 눈길을 보내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도록 노력하게. 셋째, 자기가 수행하는 업무에 있어 엄격하되 온화함과 부드러움을 잊지 않아야 하네.” 통치술의 기본 핵심이지만, 그렇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돈키호테의 이 말을 통치술의 기본 핵심으로 이해하는 수준 자체가 보통을 훨씬 넘는다.

일에 실수가 없으려면 지혜로워야 한다. 지혜로우려면 일단 기초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고, 들어온 지식을 지배하는 내공을 갖춰야 한다. 정확한 지식을 갖지 않으면 일을 임의대로 처리한다. 객관적 흐름을 도외시 하고, 주관적 확신에 빠진다. 우리는 아직 국가가 무엇인지, 민족이 무엇인지, 통치가 무엇인지, 헌법이 무엇인지, 군대가 무엇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민주가 무엇인지, 자본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독재가 무엇인지, 통일이 무엇인지, 정치는 도대체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 그 정도의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관리하는 나라라는 인상을 갖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고 갈등이 심한 것은 이런 기본 주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들이 꽉 막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것들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사실과 깊게 연관된다. 결국 지혜는 고사하고 ‘정해진 마음’(이념)으로 그것들을 허겁지겁 다루는 우를 범한다. ‘무지’는 무서운 것이다. 실수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실수들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돈키호테가 지혜로워야 실수가 없다고 한 말은 맞다. 우리 사회가 심한 갈등과 정체라는 ‘실수’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원인이 ‘무식함’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돈키호테가 모험을 감행할 정도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한 첫 번째 일이 전답을 팔아 책을 사는 일이었다. 여기에 많은 긍정적 암시가 담겨 있다. 무지에서 벗어나야 ‘건너가기’를 시작할 염원이라도 갖는다.

사람이 먼저다? 먼저 사람이 되자

세르반테스가 인간과 세계에 얼마나 깊게 들어가 있는지는 두 번째 말을 들으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통치의 핵심 가운데 하나를 자신을 아는 것으로 잡았다. 자신에게 눈길을 보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을 본다는 뜻이다. ‘금방 죽는다’는 사실을 가끔이나마 떠올리는 사람 정도가 되어야 자신을 자신의 눈으로 보려 한다. 인간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기품과 품위와 자존 등은 여기서 나온다.

기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우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 통치를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실수’가 없다. 자기가 하겠다고 한 일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해서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앞서서 조장하면 안 된다. 자세히 보는 사람만 알지만, 거짓말을 하면서 우선 속이고 보는 태도가 모든 일을 꼬이게 만드는 원흉이다. ‘정해진 마음’(이념)에 갇히면, 그 ‘정해진 마음’을 집행하는 기능이 중요하게 보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본질적인 근본을 오히려 소홀히 하게 되는데, 여기서 큰 실수가 나온다. 우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먼저다’보다는 ‘먼저 사람이 되자’는 구호가 지금의 우리에게는 더 효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 2019)'의 한 장면.]

갇힌 자여, 열려야 건너간다

자신을 스스로 인식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돈키호테도 “너 자신을 알고자 노력하면서 네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눈을 떠야만 한다. 이것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인식이지”라고 한다.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의 시선이 가장 높다. 이런 수준의 사람은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덕’을 근본으로 해서 활동한다. ‘덕’은 ‘건너가기’를 할 수 있는 활동성을 가졌기 때문에 개방적이다. 그러나 ‘정해진 마음’은 집단에 갇혀 있어서 폐쇄적이다. 개방적인 상태에 있으면 온화하고 너그럽다. 폐쇄적인 상태에 있으면 급하고 분노한다. 이념에 갇히면 분노의 정치에 빠지게 되는 이유다. 자신에 집중하는 자는 개방적이며 크고, ‘우리’에 갇힌 자는 폐쇄적이며 작다.

작은 승리에 집착하며 자잘하고 쩨쩨하게 살지 말자. 당장은 사람 되는 길을 가는지 여부부터 살펴야 할 형편이다. 지금 우리의 사명은 전술국가나 추격국가에서 전략국가나 선도국가로 건너가는 것이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돈키호테>에 나오는 말에 귀를 열자. “쪼그라진 심장부터 쫙 펴십시오!”
 

[철학자 최진석]



                                             최진석 철학자(서강대 명예교수,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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