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준의 취준생 P씨](10) 전문직과 공기업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이유

정석준 기자입력 : 2020-07-17 00:10
길어지는 수험 생활에 불안감↑···다른 길 고려하게 돼 공백기 메울 수 있는 '블라인드 채용' 공기업으로 몰려
[편집자주] 올해 6월 기준 국내 취업준비생(취준생)은 약 123만명입니다. 누구나 이 신분을 피하진 못합니다. 준비 기간이 얼마나 길고 짧은지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취준생이라 해서 다 같은 꿈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만 합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만은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취준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매주 취준생들을 만나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원을 건네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취준생은 합격(pass)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P씨로 칭하겠습니다.


열 번째 P씨(27)는 투 트랙 전략(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책략)으로 세무사와 공기업을 동시에 준비하는 취준생이다.

세무사는 1년에 한 번 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전문자격시험(1·2차)을 통과해야 하는 전문직이다. 전문직인 만큼 연봉이 높고 정년도 없어 직업 만족도가 높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9년 세무사 연봉 평균은 6372만원이다. 또 세무사는 다른 전문직 변호사, 변리사 등과 함께 직업 만족도가 높은 직업 30개에 포함됐다.

반면, 공기업은 기업이 수시로 진행하는 신규채용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통 서류전형-필기전형-면접전형 순이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취준생들의 취업 목표 1위에 ‘공기업’이 선정될 정도로 공기업 역시 인기가 높다. 안정된 수입과 워라밸 확보가 이유다.

처음 P씨의 취업 계획을 들었을 때 ‘어려운 취업시장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두 직업 사이를 저울질하게 된 P씨의 사연을 들은 후 바뀌었다.
시험에서 실패는 '차선책 마련'의 어머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P씨가 처음부터 투 트랙으로 취업을 준비한 건 아니었다. 2017년 군대를 갓 전역하고 세무사 준비를 결심했을 때는 시험공부에만 매진했다.

세무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P씨는 “인문계 취업이 어렵다. 주변에 인문계로 온 친구들은 전문직 아니면 취직한 경우를 보기 힘들다”라며 “세법 관련 수업이 나랑 잘 맞아서 전문직 중 세무사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세무사 시험은 보통 4월에 1차 시험, 8월에 2차 시험 순으로 진행된다. 1차 시험을 합격하면 다음해까지 2차 시험 유예가 가능하다. P씨는 이 일정에 맞춰 1학기는 시험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휴학하고 2학기만 다니면서 대학 생활 3년을 보냈다. 공부 시작 1년 만에 1차 시험에 합격한 P씨는 2018년부터 2차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2019년 세무사 합격자 724명 중 2030 비율이 609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2차 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을 등록했던 P씨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직장을 나와서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저 나이까지 해서 붙으면 성공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내심 여유로웠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P씨의 불안감은 커졌다. P씨는 “막상 휴학과 재학을 번갈아 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며 “몇 년간 자취비, 학원비, 교재비 등을 부모님께 지원받으니 등골을 빨아먹는 느낌도 들고 나이 생각하고 급하니 공기업 취업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차선책 준비를 결심하게 된 결정타는 작년에 본 마지막 2차 시험이었다. 2차 시험 유예 기간 중 마지막 시험이었던 P씨는 “답안지 제출 직전 첫 문제부터 틀리게 풀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후 시험시간 동안 멘탈이 약해지고 ‘취업 준비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불안감에서 오는 '전문직-공기업' 저울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직과 공기업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비단 P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취업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전문직 vs 공기업 준비’, ‘전문직이랑 공기업 중 선택’, ‘공기업? 전문직?’ 등 취준생들의 고민이 담긴 제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면서 단기간에 합격하면 좋지만, 높은 문턱 앞에 수험 기간이 길어지면서 불안감에 차선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 하는 우려가 주로 담겼다.

사기업이 아닌 공기업과 전문직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이유는 '워라밸 확보'와 '시험 준비 동안 생긴 공백기 커버'다. 시험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그 시간은 오롯이 공백기로 남아 사기업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나마 공기업은 정부 지침에 따라 선발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고 있어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P씨 역시 사기업 취업 시장에서 쓴맛을 봤다. P씨는 “사기업에 원서를 쓰면 서류에서 바로 떨어졌다”며 “세무사 시험 준비 기간을 메울 만한 자소서가 안 나오고 스펙도 없으니 차라리 NCS 시험으로 객관화돼 있는 공기업을 준비하게 됐다. 주변에서도 이런 이유로 공기업을 많이 준비한다”고 고백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인문계 전공 분야가 취업에 어려움이 크다보니 고용 안정성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라며 "공기업은 안정적인 직업으로 인식되고 전문직은 직장으로서 안정성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전문성으로 경제적 활동을 확보할 수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울질 끝에 병행을 결심한 P씨는 결코 공기업 취업을 만만하게 보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 우물만 파는 수험생들에 대한 존중도 나타냈다.

“몇 년째 전문직만 준비하는 분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해져요. 그렇다고 다른 곳에 한 다리 걸쳐 놓는다는 느낌은 아니예요. 세무사에만 몰두해서 준비하다가 다른 기간에는 공기업에도 투자할 생각이에요. 올해 1차 시험 이후 하반기에는 공기업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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