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경제적인 시선] 무궁화꽃 입에 물고 땅 짚고 헤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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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정경부 부장
입력 2020-07-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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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기 반환점 돌았는데도 '열 go' 부동산 대책…'금융으로 할 수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 우려

  • 靑·여당·정부의 다주택자 증여 꼼수도 컨트롤 못 해…대책 발표 후에나 '누구나 아는 구멍' 검토도 논란

  • '동학개미' 우러러보며 자산소득을 불로소득으로 왜곡…갈수록 부동산을 정치로 푸는 인상 짙어져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다. 세상일이 어디 내 맘대로만 되던가. 그래서 핑계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공감하면 다행이다. 아니면 조롱만 남는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문제로 연일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10일,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이 추세라면 임기가 끝날 때쯤엔 '최다 부동산 대책 양산' 타이틀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뭔가 핑계가 필요하다. 마침 하루 앞선 9일 한국감정원은 이달 첫째 주(6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주 대비 0.11% 올랐다고 발표했다. 상승 폭이 직전 주(0.06%)보다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작년 12월 셋째 주(0.20%) 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주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초치해 따끔하게 한 수 가르쳤다. 그 결과가 10일의 '주택시장 안정 보완대책'이다.

정부와 수 싸움 하는 국민(정부는 이들을 투기꾼이라 한다)도 다 계획이 있었다. 여러 차례 일방통행식 정책을 경험했다. 김현미 장관이 내놓을 카드도 충분히 예상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강화, 세금 폭탄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매물이 마를 거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낼 세금이 걱정은 되지만, 집을 사야 한다는 조바심이 공포를 불렀다. '패닉 바잉(panic buying)', 그렇게 7월 첫째 주 부동산 시장은 공포로 시작했다.

◆이미 게임의 승패는 났다
 

정부는 세금 폭탄을 떨어뜨리면 집 가진 사람들이 항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당 국회의원들과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솔선수범하라고 회초리도 들었다. 회초리가 따끔하지 않아서일까? 여당 국회의원들과 고위 공무원들도 모두 다 계획이 있었다. 대통령의 옆방에서부터 꼼수가 나왔다. 반포 아파트 대신 청주 아파트를 팔겠다고 해 뭇매를 맞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그는 그나마 순진한 편이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아들에게 증여했다. 윤 의원은 꼼수라는 비판이 일자 SNS를 통해 "매각 서약은 올해 했고 증여는 작년에 했다. 세금 다 내고 증여한 것도 불법이냐"고 큰소리쳤다. 그는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4·15로 총선에서 1가구 1주택 서약을 받은 인물이다. 국토부 출신으로 청와대에서 주택정책을 맡은 윤성원 정책국토교통비서관도 강남구 논현동 아파트 대신 세종시 것을 처분했다. 그의 세종 아파트 처분 이유는 "지금 서울(청와대) 근무 중이기 때문"이란다. 청와대 근무가 끝나면 국토부로 복귀하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서초(잠원동)와 세종에 아파트를 한 채씩 가진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공무원 특별분양을 받은 세종시 아파트를 처분했다. 마지 못해 버티다 버티다···. 그가 세종시 아파트를 처분한 과정을 취재한 기사를 보면 금융위원장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눈물겹기도 하다. 반년을 버텨 8000만원을 더 벌었다.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기획재정부의 김용범 1차관도 배우자와 공동으로 소유한 지분을 장모에게 넘겼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 정부 고위 공무원들의 다주택 처분은 이렇게 이뤄지고 있다. 파는 대신 증여하고, 강남 아파트보다는 지방 아파트를 먼저 처분하는 건 상식이다. 재테크의 기본이다. 어차피 세금 내는 것, 남에게 파는 것보다 내 울타리에 두는 상식을 좇은 결과다. 이런 상식을 이번 부동산 대책을 마련한 당국자들과 여당의 정책 설계자들은 몰랐을까?

급기야 당정은 14일 다주택자 증여 취득세율을 최대 12%까지 올리기로 했다. 7·10 대책에서 취득세율을 최대 12%로 올린 것에 맞췄다. 매물 잠김을 유발하는 증여는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시행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같은 규모의 세금을 낸다고 굳이 남에게 팔 이유가 있나? 어차피 기대 수익은 다른 곳에서 생긴다. 자중지란이다. 그들은 시장과 맞짱을 뜨기도 전에 졌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12·16 대책, 지난 6·17 대책 또 오늘(10일) 대책까지 포함해 모두 입법으로 뒷받침돼야 실효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입법화가 되지 않아서 저희가 발표한 대책이 효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김현미 장관이 지난 10일 부동산 세제 강화를 중심으로 한 7·10 대책을 내놓은 후 SBS 8시 뉴스에 출연해 한 말이다.

옳다. 정책은 대부분 법을 통해 이뤄진다. 세제 정책은 더 그렇다. 그만큼 심사숙고하고 야당과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동문서답이다. 정부의 대책이 왜 듣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는 그렇다. 김현미 장관이 이런 입법 과정과 절차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이 말은 핑계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주거 안정 부동산 정책은 별로 없다. 아파트값과 계속 씨름하며 그냥 사지 말라는 말뿐이다. 결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모르진 않는다. 걱정이 클수록 한발 뒤에서 좀 더 심사숙고하라는 것이 옛 선현들의 가르침이거늘···. 결국, 시장을 상대로 돈줄을 막아버리겠다는 호기로 똘똘 뭉쳐 마냥 '열 go'를 외치고 있다. 마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움직이지 말라는 얘기뿐이다.

금융(대출 억제)으로 부동산을 컨트롤하는 것은 한껏 열이 올라 붉게 달궈진 솥뚜껑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돈을 빌려주지 못하도록 금융회사의 팔을 비틀어 자금 원천을 막아버린다. 잠시 열기가 식어 해결된 듯하다. 그러나 찬물을 덜 얻어맞은 곳부터 열기는 다시 확산한다. 22번의 대책이 나오는 과정에서 보인 아파트값 상승률 그래프가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도 집값의 과도한 상승을 막겠다며 자금 원천 자체를 막아버리겠다는 말뿐이다. '집 사면 패가망신한다(노무현 정부)'는 1막에 이은 2막인데도 별로 발전한 게 없다. 그래서 1막 때 없던 '박수 부대(우군)'를 동원했다. 솔선수범이라는 말로 자기 몸을 태워 달란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도 대출 규제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손쉬운 부동산 정책에 발을 담그고 말았다.

정부는 투기꾼들이 손쉽게 대출을 받아 이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출 규제는 분명히 몇몇 투기꾼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더 많은 실수요자에게도 시름을 안긴다. 그것이 현실이다. 한 푼 두 푼 모으고 월급의 3분의2를 원리금 갚는 데 써도, 그래서 우리 집이 아닌 은행 집에 10여년을 살아도, 버티며 사는 게 전세 끼고 대출을 받아 산 내 꿈, 내 집이다.

그걸 막아버리면 결국 엉덩이 밑에 현금 30억~40억원씩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만 편해진다. 아무런 경쟁도 없이 요지의 아파트를 손쉽게 '현금 줍줍'하는 현상은 이미 일상이다. 현금다발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자금 출처를 증빙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까? 부모에게서 빌렸든, 대부업체에서 빌리든, 이 자금의 출처 증빙을 만들어줄 변호사와 세무사는 차고 넘친다. 대출 규제와 세금으로만 거래를 정지시키는 이 방식이 초가삼간 태우는 격인 이유다.

◆불로소득이라지만···
 

[그래픽=연합]


"땅은 유한하며 이 땅은 국민 모두의 것이다." 정부가 약방의 감초처럼 하는 말이다. 집값 상승에 의한 소득은 불로(不勞)라는 말도 입에 달고 산다. 글자 그대로 노동을 하지 않은 소득인 불로소득은 현대사회에선 자산소득으로 불린다. 불로소득은 그저 과세 대상을 구분하기 위한 개념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같은 것이다.

이 자산소득은 사회가 발전한, 정확히는 자본주의가 성숙한 나라에선 재테크의 기본이다. 모든 금융회사는 거래자의 자산을 불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현 정부의 정책자들은 은행의 예금금리가 낮고 대출금리가 높다고 불만이 크다. 그러나 전 세계에 예금금리가 대출금리보다 높은 금융회사는 없다. 현대의 '금융'을 사기꾼의 돈놀이로만 치부한다면 전 세계의 산업은 돌아가지 못한다.

코로나 폭풍 속 동학개미 운동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들은 실제로 과격하게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위험 경고가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을 하고 있다. 그들보다 훨씬 정보와 자본이 튼튼한 기관을 상대로 말이다. 노동해서 수입을 얻지는 않지만, 현 정부는 동학개미와 내 집을 마련하고자 대출을 일으키려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생존권 차원에서 집 문제를 다루겠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면서 '빚 내서 집 사지 말라'는 말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빚을 「잘」 내서 집을 사라'는 것이, 모두는 아닐지라도 다수 국민의 편에 서는 방법이다. 빚을 내지 않아도 충분히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인 반면, 대출을 받지 않으면 집을 살 수 없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 그렇다.

부동산 정책이 현 정부에선 궁극적으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치의 일환으로 변질했다는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쉬운 방법으로 1대99의 편 가르기를 통해 분노를 등에 업고 선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분노를 자극해 표를 얻을 수는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탄생에서 생생하게 지켜봤다.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더 나은 보편적인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속도감이 안 느껴질 수는 있다. 5년짜리 정부의 딜레마다. 그럴수록 후일에 현재의 정책이 어떻게 평가받을지를 생각하는 게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는 자세다. 쉽고 결과가 빠르게 나오는 정책은 뭔가 부작용을 안고 있다. 땅 짚고 헤엄치기는 쉽다. 그러나 땅 짚고 하는 헤엄은 수영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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