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반전, 시장에 답 있다] 정권마다 "규제 혁파" 외쳤지만… 기업은 여전히 '전전긍긍'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최다현 기자
입력 2020-07-20 00:05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단두대부터 원수까지… 역대 정부 '규제 개혁' 의지 앞세워

  • 건수총량제 도입 후 오히려 규제 수는 증가… 규제비용 감축도 감소 추세

#유료방송 시장에는 2년 전 사라진 규제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3년 일몰제로 도입된 후 2018년 효력을 잃은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미 사라진 규제지만 국회를 중심으로 부활 가능성이 거론되고 사후규제 논의까지 합의를 찾지 못하면서 2년 가까이 논쟁으로 이어졌다. 하나의 유료방송 사업자가 전체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점유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에 유료방송 1위 사업자인 KT는 규제가 사라졌는데도 케이블 사업자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규제가 생긴 뒤 영향을 주고 이후 일몰돼 사라진 후에도 기업의 활동을 가로막는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규제 혁파를 기치로 내세웠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불필요한 규제에 가로막혀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다.

역대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을 돌이켜보면, 김대중 정부는 "단두대처럼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규제총량제를 실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봇대를 뽑는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규제를 '손톱 밑 가시', 암 덩어리, 원수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출범 원년인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규제정책에 관련한 보고서를 내면서 '더 나은 규제를 향한 끝없는 여정'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당시 OECD는 "차기 정부에서도 규제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규개위에 이해관계자, 전문가를 포함해 대표성을 강화하고,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중요 규제 심사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선도형 경제로 가는 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과감히 들어내야 한다"라며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규제 개혁을 주문했다.

정부마다 규제 개혁을 내세웠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해마다 발표하는 국제경쟁력 평가에서 올해 한국은 23위로 다섯 계단이나 순위가 상승했다. 하지만 '기업 관련 규제' 부문의 순위는 46위에 그쳤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규제 완화를 요청한다. '2018 한국기업혁신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한시적 규제 유예 및 완화'를 할 경우 대기업의 50.1%는 정책에 따른 영향력이 '보통 이상'이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중기업은 39.1%가, 소기업은 23.9%가 영향력이 보통 이상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를 완화할 경우 대기업 56.8%는 이에 따른 영향을 '보통' 또는 '높음'으로 예상했다. '신기술/신산업 관련 규제 충돌 문제 해소'의 경우 영향력이 높을 것이라고 답한 비중이 대기업보다 중기업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대기업 중 신기술·신산업 관련 규제 충돌 문제 해소가 혁신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다고 답한 비중은 3.1%였지만 중기업은 11.7%로 4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정부도 규제영향분석과 규제일몰제 등을 운영하며 규제의 영향력을 평가하고 있으나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을 뿐이다. 규제영향분석은 인력·예산의 부족, 공무원 순환보직제로 인한 전문성 결여, 관례적인 행정절차 등 고질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규제 신설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 가지 규제가 신설될 경우 다른 하나를 폐지해야 하는 '건수총량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건수총량제가 도입되고도 오히려 규제는 늘어났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던 2003년 7836건이던 규제는 2006년 8083건으로 증가했다. 해당 제도가 폐지된 2015년에는 1만4688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는 몇 건의 규제가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2015년 9월 이후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에서 규제 현황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신 2016년 하반기부터 '규제비용관리제'를 도입했다. 양적 지표가 아닌 질적 지표로 규제를 관리하겠다는 의미에서다. 규제개혁 백서에 따르면 2016년 7월 제도 도입 후 총 8533억원의 규제비용을 감축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규제비용 감축은 도입 첫 6개월 동안 이뤄졌을 뿐이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1월까지 5586억원의 비용을 줄였지만 지난해에는 713억원을 감축하는 데 그쳤다.

박상인 교수는 "선도형 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진입장벽을 없애고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이 일어나도록 환경을 바꿔야 한다"며 "진입 장벽을 없애는 것은 규제 혁신으로 해야 하는데, 한국의 규제 혁신은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해 그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