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의 데이터 政經] 원칙을 고수하는 정당・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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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입력 2020-03-0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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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민주당까지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위성정당 창당수순으로 접어들었다. 시민사회원로들이 주도하는 연합정당에 지분 참여하는 형식이고, 의병정당이라고 변명을 하지만 국민들이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민주당은 이른바 4+1(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창준위 + 민주당) 가동을 통해 원하는 공수처 도입 등 검찰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2020년 예산안과 적지 않은 민생법안들도 이 4+1협의체를 통해 이뤄냈다. 이것은 각료를 파견하지 않는 사실상 정책연대기구 가동이다. 민주당과 군소정당 간 정책연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30석의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때문이었다. 1년여를 끌어온 선거법개정안은 4+1에 참여한 군소정당들의 절실한 요구사항이었다.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당시 4+1협의기구 의원들의 재석은 156명이었다. 이 안건이 처리됨으로써 나머지 여당 민주당이 원하는 안건들도 하나하나 차곡차곡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물론 이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비록 상한선이 30석으로 묶였지만 소수정당에게 상대적으로 의석을 획득하기에 매우 유리한 방식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정책연대는 꼼수 위성정당문제를 간과했다. 미래통합당은 4+1에 저항하기 위하여 노골적으로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선거법개정안 통과 직후 실제 미래한국당을 등록시켰다. 이를 맹렬하게 비난하던 민주당도 이제 곧 사실상 위성정성인 선거연합당 창당수순으로 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민주-보수 양자구도는 더욱 뚜렷해지고 소수정당은 설 자리가 더 더욱 없어진다. 정치평론가로부터 일반 유권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국민들은 선거 때만 다가오면 기계적인 연대구도에만 매달린다. 보수·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종교적 신념처럼 오랫동안 간직해온 최상의 선거 전략이란 기껏해야 양자 구도를 만들어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소망적 사고를 내세운다. 이는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유명한 정치 격언을 주된 근거로 한다. 이 말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이후 처음 등장했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 까닭은 집권 보수층의 재정부패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혁명은 손쉽게 성공한다. 이때부터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라는 격언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왕당파를 반대하는 입헌군주파, 공화주의자, 온건공화파, 급진좌파, 평등주의 중도파, 관용주의 우파, 민족주의 등등 수많은 주의와 주장들이 혁명기 프랑스를 동시에 어지럽힌다. 그리고 서로가 권력을 차지하겠다며 12년간 다투는 틈을 노려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는 반혁명을 부르고 말았다. 이 결과를 두고 사람들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고 비웃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상황이 여러 차례 연출된 적이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와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의 분열로 민주진영이 집권에 실패하고 노태우 후보가 어부지리,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로써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논리가 처음 선보인다. 하지만 1995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보수정권의 부패한 민낯이 발가벗겨졌고, 외환위기를 초래한 무능의 상징 김영삼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1997년 대선에서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이때부터 ‘진보는 분열’, ‘보수는 부패’라는 이미지가 대중 속으로 선명하게 각인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 엄청난 편견이다. 20대 총선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2016년 3월 30일 정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노회찬 전 의원은 〈SBS〉 라디오 ‘한수진의 전망대’와 인터뷰를 가졌다. 노 전 의원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야권 지지층들의 야권연대에 대한 요구는 70%까지 이르고 있는데 연대를 하면 효과가 적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얘기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바와는 전혀 다른 진단이다. 야권연대를 할 경우에 국민의당을 만들었던 분당의 명분이 상실되는 걸 우려해서 연대를 피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의석을 늘리고 의석이 180석, 200석까지 육박할 경우에는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고 물었다. 또한 “안 대표와 국민의당은 야권연대를 하지 않고 후보를 끝까지 내보내 정당 득표율과 비례대표를 늘림으로써 제3당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하고 제3당이 되겠다는 얘기인데, 원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여권연대에 봉사하는 꼴이 된다. 그것을 과연 국민들이 용납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투표 4일 전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당이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준다는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그러면 왜 19대 총선에서 후보단일화로 새누리당 과반수를 만들어줬나? 1번을 그대로 놔두고 2~8번까지 다 합쳐도 못 이긴다. 문제는 현재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 이탈자들을 담아내는 그릇을 저희 국민의당이 담당하겠다”고 언급했다. 안철수 대표가 큰 소리 친 것처럼 20대 총선결과 새누리당은 제2당으로 밀려났고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재현됐다. 이 황당한 상황은 ‘야권분열은 필패’라는 가짜뉴스를 금과옥조처럼 간직해온 노회찬 전 의원의 실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제1당 대표(김종인)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문재인), 그리고 진보 시민사회단체 및 진보 언론매체까지 총 출동해서 야권연대가 없으면 필패라고 절절히 호소했으나 개표 결과는 독자 여러분도 잘 아는 바와 같다.  특히 수도권은 122석 가운데 85석을 야당이 석권함으로써 69.7%라는 매우 높은 의석점유율을 보였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17대 총선 당시 의석점유율과 똑같을 만큼 엄청난 기록이다. 즉 무조건적 연대가 아니라 혁신경쟁이 승리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 2016년 실시한 20대 총선에서 5% 미만으로 승패가 엇갈린 지역구는 총 253개 곳 가운데 66곳, 비율로는 무려 26%나 된다. 특히 122개 지역구가 밀집된 수도권은 33곳이 5% 미만에서 당락이 엇갈려 그 비중(27%)은 더 높았다. 여론조사는 보통 표본 1천 명 안팎이면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오차범위가 ±2.5%p 안팎이다. 그러므로 5% 미만 승부라면 사실상 동률과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20대 총선을 바로 앞두고 주요 여론조사 기관들은 새누리당이 155~175석 사이에서 압승한다고 예측·공개하였다. 심지어 4월 초까지만 해도 패스트트랙 확보선인 180석 운운하는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더불어민주당에게도 밀린 2위, 122석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예상의석에서 33석 내지 53석이나 크게 미달한 엄청나게 빗나간 개표결과를 놓고, 여론조사 업계는 술렁거렸다. 여론조사업계 역시 연대= 승리라는 등식에만 매몰돼있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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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소선거구 다수득표순 당선방식인 우리나라 총선에서만큼은 보수 또는 민주·진보 진영 내 혁신경쟁을 통한 분열은 오히려 승리를 견인해왔다. 즉 현재의 프랑스 제5공화국과 같은 결선투표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유사한 색깔의 정당 간 혁신경쟁은 지지층 결집에 훨씬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 민주화 이후 13대부터 20대까지 여덟 차례 총선에서 분열한 진영의 합계 승률은 독자여러분 놀라지 마시라, 무려 100%이다. 의석수와 의석 비율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13대 민정당과 공화당은 여야로 갈렸지만 보수진영 합계가 160석에 53.5%이다. 14대 총선 당시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여당 민자당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선도전을 위해 독자 창당한 중도보수 계열 국민당은 합계로 180석에 60.2%이다. 15대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신한국당과 그로부터 밀려난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이 여야로 격돌했으나 어쨌든 보수정당 의석합계는 무려 189석에 의석비율도 63.2%로 신기록을 경신했다. 16대 때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지독한 개혁공천을 하고 이에 반발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국당, 그리고 자민련 이탈파 한국신당 등은 136석에 49.8%이다. 참고로 이때 자민련은 선거법개정협상 실패로 새천년민주당과의 공동정부에서 탈퇴 후 (무늬만) 야당으로 복귀한 상태로 총선을 치렀다. 17대 집권 열린우리당과 진보정당 최초로 원내 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및 열린우리당과의 분당 앙금으로 야당이 됐지만 원래는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한 새천년민주당을 포함하면 172석에 57.2%이다. 18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나라당과 박근혜 당시 의원이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기며 탈당을 부추긴 결과로 만들어진 친박연대 및 친박무소속연대, 그리고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까지 보수계열 의석은 자그마치 총 197석에 65.9%이다. 이때는 친 한나라당 무소속(최소 5석)까지 포함하면 개헌선인 200석도 훌쩍 넘어섰다. 19대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도 합계가 157석에 52.3%이다. 20대 야권3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은 모두 167석에 55.7%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총선에서만큼 ‘후보단일화 = 필승’이라는 신화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절대로 우연도 아니고 일부 현명한 유권자들의 전략적인 선택 때문은 더 더욱 아니다. 그 보따리는 필자가 곧 내놓을 <이기는 선거>에서 하나하나 풀어나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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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과 비슷한 상황이 바로 16대 총선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1인 1표로 전국구를 배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지역구 후보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상식이었다. 그래서 공동여당(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은 일종의 위장이혼을 하고 총선을 치렀다. 다행히 전국구에서 한나라당보다 합계 3석 앞섰으나 지역구에서는 서로 제 살 깎기를 하는 바람에 수도권 13곳을 5% 미만에서 날렸다. 특히 자민련은 이한동 의원 단 1명밖에 당선시키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후보들을 돕게 된 셈이다. 텃밭 충청권에서도 4곳이나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아서 사실상 승패가 엇갈리고 모두 한나라당에게 의석을 내주었다. 이처럼 16대 총선은 여당 입장에서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반대로 총선은 아니지만 정책을 매개로 민주진보진영 최초의 선거연합을 구성한 2010년 6・2지방선거는 야4당과 무소속이 완승했다. 당시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으로 구성한 야5당 선거연합추진기구는 정책연합위를 가동해 12개 분야 공동정책 1차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강화, 4대강 사업예산의 민생예산 전환, 세종시 원안 추진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이 최종 불참하며 야4당(일부 무소속)만으로 선거연합을 꾸렸다. 참고로 야권연합에 대항한 한나라당의 공약을 보면 저소득층, 농어촌 학생을 위주로 2012년까지 197만명에게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또한 공공부문에 약 3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과 청년층, 노인층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며 지역 실정에 맞는 특화사업을 지원하는 안이 포함되었다. 이 선거는 1995년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길을 걷던 투표율이 이때 특이하게도 처음으로 상승곡선을 탄다. 그 결과 16석의 시・도지사는 한나라당 6석, 민주당 7석, 자유선진당 1석, 무소속 2석(선거연합에 참여한 김두관 경남지사당선인 포함) 등이다. 자유선진당이 차지한 1석(대전)도 ‘세종시 원안 추진’으로 뭉친 야당연합 때문에 한나라당 후보를 28.5%로 묶었다. 한편 서울시장은 한명숙 후보가 0.6%(2만6천412표) 간발 차이로 졌는데, 3.26%(14만여 표)를 잠식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결정타였다. 그리고 김두관 경남지사는 취임 즉시 공동지방정부 운영공약을 실천에 옮겼다. 민주노동당 출신 강병기를 정무부지사에, 시민사회단체 대표 출신 이은진을 경남발전연구원장으로, 민주당 출신 공민배를 남해도립대학 총장에 임명하였다. 경남과 같은 야권 취약지역에서 정책과 공동정부운영합의가 갖는 위력은 이처럼 대단했다.

 

 



프랑스는 대통령, 하원의원, 레지옹 주지사 선거를 결선투표로 운영하기 때문에 정당 간 선거연합이 일상적이다. 현직 마크롱 대통령의 전진당도 민주운동(MoDem)과 선거연합을 통해 대선에서 승리했고 총선에서도 60.6%의 합계의석을 확보했다. 프랑스는 대선 6주 후에 총선을 치르는데 총선내각 성격인 1차 내각을 우선적으로 출범시킨다. 마크롱 대통령은 1차 내각에 민주운동 대표 바이루를 법무장관에, 국방장관(실비에 굴라드)과 유럽연합부 부장관(마리엘 드 사르네즈) 등 요직을 바로 이 공동여당에 할애했다. 또한 대선과 총선에서 정책협약을 통해 공공부문개혁, 노동시장개혁, 교육개혁 등 주요 3대과제를 확정하고 유권자 설득에 나섰다. 당연히 우리나라 19대 총선과 대선에서 이루어진 무조건적 민주진보 단일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정치는 타협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치의 본령인 대타협(여당+제1야당) 또는 소타협(여당+군소야당)이 이루어지면 오히려 색안경을 끼고 본다. 현실은 정책연대 또는 연정을 전제로 한 단일화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그밖에는 원칙대로 혁신경쟁만이 최고의 승부수다. 꼼수 대 꼼수로 대결하는 방식, 전혀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최광웅(데이터정경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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