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脫北) 태영호 여의도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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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입력 2020-02-2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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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작년 7월 서울 봉천동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탈북민 한성옥씨(42)와 여섯살 난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굶주림. 수도요금을 못 내 식수 한 방울 안 나오는 집안엔 먹을 거라곤 없었다. 냉장고에 든 고춧가루 한 봉지가 전부였다. 엄마의 통장 잔고는 0원. 보름 전 마지막으로 인출한 돈은 3858원. 모자(母子)는 이 돈으로 2주가량 연명하다 숨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았다. 탈북민들이 모여 광화문에 작은 분향소를 차렸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라는 선진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그들은 울었고 분노했다.

탈북 모자의 아사(餓死)와 태영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58)가 4·15 총선 지역구 출마 의사를 밝힌 날, 맨 먼저 떠오른 건 이들 모자였다. 그가 정치 입문에 성공한다면 적어도 이런 비극은 다시 없을 것 아닌가. 국회에서 관련 법령이든 담당기관이든 꼼꼼히 챙기면 될 테니까. ‘탈북’과 ‘정치’ 사이의 간격은 이미 너무 커져서 이처럼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모자의 비극 앞에서 달리 무슨 생각이 나지 않았다. 탈(脫)냉전의 그늘이 이리도 깊구나 싶었다.

태 전 공사의 출마는 남북한 선거사(史)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한국은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 때 남북 인구비례에 따라 전체의석의 3분1인 100여석을 북측 몫으로 남겨뒀다. 휴전선이 열리면 북측 의원들을 뽑아서 채울 참이었다. 물론 이 계획은 당시 남북 간 정통성 경쟁의 산물로 애초 실현 가능성은 없었다(북한은 그해 8월 25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치러 212명의 북측 대의원을 선출하고 21∼26일 해주에서 남조선대표자대회를 열어 남측 대의원 360명을 뽑았다). 그로부터 72년 만에 북한주민 출신인 태 전 공사가 남한에서 열리는 총선에 지역구로 출마하게 됐으니 역사는 이렇게나마 이어지는 걸까.

그는 왜 지역구를 원했을까. 탈북자로 남기보다는 한국사회의 지도층에 편입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을 것이다. 북에서의 성장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엘리트코스인 평양외국어학원(중등)과 평양국제관계대학을 나와 베이징외국어대 영문학부에 유학까지 했다. 성취동기가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다. 그가 내건 목표도 “현대판 노예사회인 북한의 해방과 남북통일”이다. 그는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입당 기자회견에서 “제가 당선되면 북에는 자유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정도의 포부와 집념이라면 지역구를 택할 만하다.

탈북민들의 힘든 삶도 그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탈북민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고 했다. 탈북민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총 3만3523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내놓은 ‘2019 북 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에 따르면 ‘남한사회에 호감을 갖게 됐다’고 답한 탈북민의 비율은 작년보다 20.0%가 줄어든 35.1%였다. 반면 ‘북한정권에 반발을 갖게 됐다’는 응답은 12.0%가 줄어 10.4%였다(크리스천 투데이 2019년 12월 6일). 통일부는 남한생활 만족도가 74.2%로 전년 대비 1.7% 올랐고, 월평균 소득도 204만7000원으로 200만원을 넘어섰다고 밝혔지만 중요한 건 탈북민이 겪는 상대적 박탈감과 정체성의 혼란이다.

지역구 출마와 유시민의 조롱

그의 지역구 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산 지가 4년이 채 안 되는데 선거라니···. 북에선 엘리트들조차도 민주주의 선거를 어떻게 치르는지 모른다고 했다. 혹여 지역구가 서울 강남 쪽으로 정해진다면 더 난감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진열장 같은 곳에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그의 모습이 어떻게 투영될까. 유세를 하고 주민들과 악수를 나누며 한 표를 부탁할 그에게서 우리는 남북 체제 간 동화(同化)의 가능성과 우월성을 확인하게 될까, 아니면 선거전략 차원에서 ‘흥행’의 효과나 점치게 될까.

유시민은 자신의 유튜브(알릴레오)를 통해 벌써 조롱하고 나섰다. 그의 영입은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해 이번 선거를 이념대결로 몰아가겠다는 것”이라며 “(중도층이 아닌) 태극기 세력에게나 어필할 이런 전략을 내놓으니 참 좋다. 막 흐뭇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설령 이념대결로 간다고 해도 안 될 건 또 뭔가. 태 전 공사에게 이념대결은 곧 인권대결이다. 굶어죽은 탈북 모자와 요덕수용소에서 죽어가는 북녘 주민의 인권 말이다. 그걸 개선하기 위해 싸우겠다는데, 그게 비아냥거릴 일인가.

진보 좌파진영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유달리 민감해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에게 북의 인권은 역린 같은 것이다. 잘못 건드리면 북 정권의 심기를 해칠 뿐 아니라 자신들이 그동안 구축한 북에 관한 모든 논리, 담론, 신화, 판타지가 깨져버린다. 예컨대 그들은 재독(在獨) 친북인사인 송두율 교수(뮌스터대학)의 ‘내재적 접근법’을 신봉한다. 내재적 접근이란 쉽게 말해 ‘북한은 북한의 눈으로 보자’는 거다. 그럴 경우, 북의 모든 행위는 “북한이니까”라는 이유로 합리화된다. 예외가 있다면 인권이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는 내재적 접근이 안 먹힌다. 북은 인권탄압으로 유지되는 체제다. 그래서 인권은 좌파 진영에도 아킬레스건이다. 그 치부가 드러나면 북에 관한 자신들의 신념체계가 무너진다. 북에 대한 맹목적인 호의도, 남북관계의 과속(過速)도 모두 ‘허상 쫓기’였음이 드러난다. 그들은 그게 두려운 것이다.

유시민은 태 전 공사의 출마를 비웃었지만 그가 벌일 인권대결의 파장이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지난 18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선 탈북민 100여명이 ‘남북통일당’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탈북민 주도로 통일 준비 신당을 만들겠다고 선포하는 자리였다. 그도 참석해 “남북통일당이 꼭 국회에 진입해서 김정은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달라”고 격려사를 했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그의 당선을 기원함으로써 화답했다. “남북통일당과 태 공사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오마이뉴스).

‘정체성의 정치’와 인권

남북통일당이 창당에 성공한다면 그 의미는 자못 심장할 것이다. 통일단체가 하나 더 생기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의 확장이다. 주변부에 머물렀던 세력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결집함으로써 기존의 지배구조에 맞서는 현상을 정체성의 정치라고 한다. 인종, 젠더(gender), 종교, 문화의 차이가 다양한 정체성의 정치를 낳는 게 현대정치의 한 특징이다. 여성정당 창당 움직임이 비근한 예다. 탈북민 정당이 생겨날 토양은 이미 조성되고 있다. 탈북민이 3만명을 넘었고,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다. 탈북민 정당이 탄생하면 정강정책이 만들어지고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 북 정권, 특히 북의 인권에 대해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흔히 탈북민을 ‘먼저 온 미래’라고 한다. 통일이 되든 안 되든 우리가 앞으로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이란 뜻이다. 태 전 공사나 남북통일당도 ‘먼저 온 미래’일 것이다. 그가 지역구에 출마해서 탈북민들의 열렬한 지지로 당선되고, 탈북민 정당과 함께 한국정치의 한 참여자(player)로 활동하게 될 날을 그려보는 게 한낱 꿈일까.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은 15년째 통일 독일의 총리를 하고 있다.

‘먼저 온 미래’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많다. 탈북민 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해온 한 연구단체의 지적을 한 대목 옮겨본다. “오늘날 탈북민과 한국 주민 간의 관계는 사람들이 통합에 대비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미래상을 미리 보여준다. 탈북민의 적응을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들 사이의 통합방안을 고민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만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우애롭게 평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전 세대’인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탈북민의 적응과 치유 이야기’,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2015년)

태 전 공사의 출마도, 북의 인권문제도, 이를 보는 우리의 자세는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권 앞에 좌우는 없다. “개(애완견)도 다이어트를 한다”는 한국에서 탈북민이, 그것도 엄마와 아이가 함께 굶어죽는 그런 참담한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남북통일당(가칭)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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