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으로 시작, 단식으로 끝…정치 부재한 20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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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입력 2019-11-2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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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현 시작으로 김성태 손학규 이정미 등 줄줄이 단식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반대하며 8일째 단식,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8일 가족과 측근들의 만류에도 단식을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미경·신보라 최고위원은 이날부터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취지로 단식을 시작했다.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이 확실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 거부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중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만류하며 남긴 말이다. 단식은 정치적 입장의 관철을 위해 목숨을 거는 행위다. ‘어떤 타협도 없다’는 극단적인 행위인 만큼 그 사례가 많지 않다.

유독 20대 국회에서는 단식을 하는 정치인들이 많았다. 2016년 5월 20대 국회 개원부터 2019년 마지막 정기국회까지 총 6차례의 단식이 있었다.

가장 먼저 단식을 한 사람은 2016년 10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다. 그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정 의장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표결을 강행 처리했다는 명분이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관련자들의 증인 채택을 막기 위해서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당시 여권 내에서조차 반발이 일었고, 이 전 대표는 7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고 나서 단식은 더 잦아졌다. 2년 6개월 간 총 5차례의 단식이 있었다. 6개월에 한 번 꼴이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018년 5월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9일 간의 단식을 끝으로 중단했다. 드루킹 특검이 도입됐고 김경수 경남지사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해 12월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열흘간 단식을 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합의문을 받아냈다.

올해 7월엔 권성주 바른미래당 부산 수영구 지역위원장이 손학규 대표에게 당헌·당규를 지킬 것을 요구하며 11일 간 단식을 했다. 권 위원장은 단식 후유증으로 백내장 증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9월엔 이학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19일 간 단식 투쟁을 벌였다.

20대 국회에서 유독 단식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여야는 물론 당내의 ‘정치가 부재했다’는 뜻이다.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에 바빴다. 의석의 3분의 2를 넘게 차지하고 있는 두 정당이 정치적 타협은커녕 캐스팅보트를 잡고 있다는 국민의당·바른미래당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만 열을 올렸다. 정치의 빈 공간엔 극한 대립만 남았다.

황 대표의 단식 역시 여야 간 협상을 가로막고 있다. 이인영 민주당·나경원 한국당·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상(SMA)과 관련한 국회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3박 5일간의 방미 일정에서 원내대표들이 패스트트랙과 관련된 극적인 합의를 이뤄낼지 관심사였다. 황 대표는 출국 날 오전 급작스럽게 단식을 결정했고 나 원내대표는 협상의 재량권을 갖지 못한 채 빨리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이·오 두 원내대표는 우려의 뜻을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전날 3당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뒤 “황 대표가 단식을 중단하고 한국당이 협상에 나설 여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 원내대표도 “황 대표가 단식 중이기에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황 대표가 단식을 철회하지 않는 한 협상의 여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셈이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고리로 제1야당을 고립시킨 여당의 전략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한국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내몰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검·경수사권 조정을 관철하고 소수정당은 더 많은 비례대표 의석을 담보 받을 수 있지만, 한국당은 아무런 득(得)이 없이 손해만을 강요받는 형국이다. 여야 간 정치력 부재가 아쉬운 대목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 6개월에 한 번씩 단식이 있었다”며 “상대를 적으로 보는 갈라치기식 정치에 대화가 단절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 “여당이 청와대 돌격대 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정치가 실종이 됐다”고 짚었다.
 

청와대 앞에서 8일째 단식하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7일 밤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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