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시샘']'동창이 밝았느냐' 시조가, 한국정치를 후려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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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5-2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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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의 소박한 삶을 그린 노래로만 알았던 남구만의 시조, 알고보니 맹렬한 '권력비판'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조선시대 학자이자 관료였던 남구만이란 분의 시다. 강릉 사람인 남구만은 1689년 숙종대 장희빈을 책봉하는 일에 반대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다. 이후 그는 강릉으로 내려와 이 시를 읊었다. 말을 풀면 이런 뜻이다.

해가 뜨는 동쪽 창문이 밝았구나 종다리가 우짖는 걸 보니
소를 관리하는 아이는 아직 아니 일어났느냐
산 너머 긴 이랑의 밭을 언제 경작하려고 그러느냐

얼핏 보면, 전원생활을 노래한 것 같지만, 당파싸움과 간신들을 비판한 시다.

동창은 해가 뜨는 창으로, 임금의 안목과 총기가 밝아졌느냐를 묻는 것이고 노고지리 우짖는 상황은 간신들이 왕에게 고하는 행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잇다. 노고지리는 종다리의 옛말로 규천자(叫天子) 혹은 고천자(告天子)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는데, 하늘에게 아뢰거나 고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어전에 부복한 신하들을 가리키는데, 옳은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소치는 아이는 목민관(牧民官)을 가리키며 제 역할을 할 충직한 관료를 의미한다. 아직 아니 일어났느냐고 묻는 까닭은, 아직도 그런 강직한 공직자가 등장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개탄이다. 재 너머 사래 긴 밭은 산적한 국정과제다. 당파 싸움에 매몰되어 긴급한 현안들을 제쳐놓고 말꼬리 싸움만 벌이고 있으니, 먼 강릉에 내쫓긴 충신이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완장 찬 분들에게 남구만의 시를 갖다주면, 왜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느냐고 핀잔을 줄까, 아니면 늙은 주인영감이 잠도 없이 일찍 일어나 머슴들 새벽 댓바람에 내몬다고 비난할까, 노동시간 위반을 들먹이며 아동 착취 혐의를 거론할까.

                     이빈섬(시인,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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