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의눈] 노무현과 손녀 노서은 "자아, 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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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5-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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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한장의 인문학 - 10주기때 부시 옆에 있던 15세 소녀…10년전 노무현 발인 때 V자 그리며 웃었는데

[노무현재단이 공개한 노무현과 손녀 노서은 사진.]

조선 중기 문필가인 유몽인(1559~1623)의 '어우야담'에는 화법(畵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 안목을 갖춘 사람, 즉 구안자(具眼者)로 화가 안견과 성종임금을 예로 들고 있다.

안견은 중국에서 사왔다는 '명화' 한 폭을 감식할 기회가 있었다. '앙면간송(仰面看松)'이란 이 그림은, 큰 소나무 아래에서 어떤 이가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보는 장면을 그린 것이었다. 이 그림을 본 안견은, 얼핏 보면 잘 그린 듯 하나, 대실기지(大失其旨, 그 뜻을 크게 잃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지앙면야 항후필유추문(人之仰面也 項後必有皺紋)
 
사람이 고개를 높이 들면, 목덜미 뒷쪽에 주름살이 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그 주름살이 빠져 있으니 별 볼 일이 없소이다.
 
성종의 경우는 이렇다. 강정대왕(康靖大王)이라 불린 이 임금은, '묘필'이라 불렸던 옛 그림 한 폭을 감식하게 된다. 이 그림은 '포손반향(抱孫飯餉)'이란 제목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노인이 손자아이를 안고 밥을 먹이는 그림으로 뭇사람들로부터 '신채여활(神采如活,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귀신같이 묘사한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성종은 그림을 보더니 과연 틀림없이 잘 그린 그림이긴 하나 뭔가가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범인지식아 필자개기구(凡人之食兒 必自開其口)
 
보통사람은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면, 자신 또한 그 입을 벌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그림의 노인은 입을 다물고 있으니 화법이 지녀야할 리얼리티를 크게 손상했다는 의견이었다.
 
성종은 스스로 그림을 좋아해서 많은 그림을 보기도 했고 실제 그리기도 했던 군주다. 그의 안목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가 실제로는 자연스러이 그렇게 하면서도 잊어버렸던 본능적 습관을 통찰하고, 그 감정이입 행동을 놓친 그림은 인간의 진실을 담지 못한 그림이라고 퇴짜를 놓은 것이다. 유몽인이 이 에피소드를 인용한 까닭은, 금장수구(錦章繡句, 비단으로 꾸민 문장과 비단으로 수놓은 구절)라도, 팩트를 놓치면 허튼 작품이 될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으리라.

갑자기 '구안자' 성종대왕이 떠오른 까닭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풀밭에 주저앉아 손녀(노서은)에게 과자를 먹이는 사진 한장 때문이다. 과연 지혜로운 성종의 단언처럼, 할아버지는 손녀와 같은 입모양으로 입을 벌린 채 과자를 입에 넣어주고 있다. 자연스런 동작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일을 형식과 강제로 풀어왔던 이 나라의 많은 시스템을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바꾸려 했던, '노무현의 정치적 이데아'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장면으로 여겨져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자아, 아아아아아, 하며 스스로 입을 크게 벌린 채 어린 입으로 숟가락을 내밀던 어머니의 표정과도 오버랩되지 않는가.
 

[2019년 5월 10주기 노무현 추도식 때 나란히 입장한 노서은(15세)과 부시.[사진=연합뉴스]]

 
노서은은 노무현 10주기 행사에 참석한 부시 미국 전대통령과 나란히 추도식장에 입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소녀는 10년 전인 노무현 발인식 때 할아버지의 영면을 이해하지 못한 천진한 모습으로 손가락으로 'V'사인을 표시해,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도 했다. 서은의 나이는 15세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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