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중견기업 ②] 성장하면 오히려 페널티…규제로 몸살 앓는 중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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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기자
입력 2019-05-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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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라리 성장 안 하는 게 낫다”

  • 중견기업 성장해야 한국 경제도 발전

  • 4차산업혁명 시대, 정책 변화 필요

국내에서 해운사를 운영하는 A대표는 최근 한국가스공사로부터 벌크선을 납품 받았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배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했는데, 이 SPC가 그룹 자산으로 포함되면서 회사 규모가 10조원 언저리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SPC가 자산으로 포함된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10조원이 넘지 않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토로했다.

한국 경제 허리인 중견기업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중견기업계는 “기업의 크기별로 관리하는 곳은 한국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클 수 있는 역량이 있지만, 엄격한 규제에 몸을 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제조기업 대표는 “정부는 혁신성장으로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지만,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성장하면 ‘페널티’를 받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박양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자산 규모 5조원과 10조원 경계에 있는 기업들은 새로 기업을 인수해서 확장을 하고 싶어도, 이 수치들을 넘어서면 공정거래법상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되므로 (기업) 인수를 꺼린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되고나니 자금난”

정책자금 이용과 세금혜택 등 각종 지원이 축소되는 것도 문제다. 중견기업인들은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는 많아지고 혜택은 줄어들어 경영하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최근 중견기업에 진입한 국내 조명 제조업체 대표 B씨는 “연구개발(R&D) 공제율 축소로 자금난을 겪고 있어 신사업 진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커지면 세금 부담이 늘어나 성장을 위한 투자가 쉽지 않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R&D투자공제율(세액공제액을 투자액으로 나눈 수치)은 중견기업이 9.1%로 중소기업(25.0%)에 비해 2.5배 이상 낮게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절반이 넘는 중견기업들이 질적 성장을 외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견련이 공동 진행한 ‘중견기업 실태조사’를 보면, R&D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중견기업 비율은 2017년 62.6%, 지난해 63.1%, 올해 63.1%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설비투자 계획이 있다고 응답하는 비율은 2017년 61.9%에서 지난해 58.7%, 올해 57.1%로 감소했다.
 

[사진=임이슬 기자]


◇“4차산업혁명 시대 근본적인 변화 필요”

중견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결국 한국 경제도 발전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 중견기업이 우리나라 산업에서 신사업 개발 등 중추적 역할을 하는 만큼 고용문제, 내수 소비 진작 등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견기업들의 성장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과 대만의 경우 중견기업을 지원대상으로 판단했다. 중견기업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중소기업 지원제도를 중견기업으로 확대했다. 중소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중견기업을 지원해 중견기업들이 글로벌 진출에 용이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일본은 △신흥국·선진국 대상 맞춤형 제도 운영 △R&D와 해외 표준화 사업 연계 △판로 확보 해외기업과 전략적 제휴 △지역 중심 중견기업 육성 등의 제도를 운영한다.

대만은 독일의 히든 챔피언 경험과 특징을 참고해 ‘중견기업도약 추진계획’을 시행했다. 중견기업에게 우선권을 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차등적인 혜택을 적용해 중견기업 전용제도를 활성화했다. 또한 중견기업 추진계획 전담기관을 둬 중견기업 정책을 통합‧관리하고 있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정책은 1980년대 나왔는데 중소기업은 지원하고 대기업은 규제하는 이분법적인 형태”라면서 “열심히 성장한 기업은 세금과 규제폭탄을 받게 되는 제도가 돼 버렸다. 당장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게 어렵지만, 4차산업혁명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혁신적인 기업이 나오기 위해선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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