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초심(初心)과 하심(下心)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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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입력 2019-05-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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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심- 2년전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십시오..촛불初心이 사라진 지금

  • 하심 - 국민이 위선이라 느끼면 어떤 선의도 무효 ..마음을 낮추십시오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위선(僞善)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면전에서 하는 착한 말과 뒤돌아서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고 느끼면 배신감이 들고, 배신감은 곧 분노로 바뀐다. 10일로 집권 2주년을 맞는 문재인 정권은 ‘위선의 프레임’에 갇혀있는 듯하다. 많은 국민의 눈에 이 정권은 입으로는 아름다운 말을 쏟아내면서 자신들의 행동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걸로 비치는 탓이다. 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촛불정신’을 이보다 명쾌하게 압축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다수 국민은 지난 2년간 과연 그 말대로 됐느냐고 묻고 있다. 당신들부터 그 말대로 살았느냐고.

대통령은 ‘포용’과 ‘평화’를 국정운영의 양대 축으로 내세웠지만 이를 국민이 삶 속에서 얼마나 체감했는지는 의문이다. “다 함께 잘살게 하겠다. 모두 끌어안고 가겠다.”는 포용의 선의(善意)에도 불구하고 양극화가 개선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으로 못 가진 사람들의 고통만 가중됐다는 목소리가 더 컸다. 정치, 사회적으로는 나라가 더 찢기고 갈라졌다. 국민이 좌우로 확연히 나뉘었고 상호 적의(敵意)는 깊어졌다. 그런데도 여당대표는 치유할 노력은커녕 “100년 집권”에 “총선 240석”을 호언하고 다녔다. 포용은 말뿐이고 뒤로는 그들만의 권력유지에 혈안이 돼 있음을 보여주는 위선의 증거로 읽혔다.

‘평화’ 또한 비슷했다. 보수정권 10년간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풀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뤄보려는 구상은 좋았다. 이를 위해 한반도문제의 중재자(촉진자)를 자임하고 북·미를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낸 것도 평가받을 만했다. “평화가 곧 경제”라는 대통령의 말은 기업은 물론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에게 “분단 너머에 기회가 있다”는 메시지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북의 비핵화에 진전은 없었다. 우리에게 돌아온 건 4일 동해상으로 발사된 북의 단거리 미사일이 전부인 형국이 돼버렸다. 그 1차적 책임은 물론 김정은에게 있지만 국민은 또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정권의 평화는 과연 어떤 평화인가.

문 대통령은 최근 독일의 유력지(FAZ)에 기고한 글에서 “평화는 평범한 국민들의 의지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될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말은 숭고하나 현실에선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우리 주변은 김정은, 트럼프, 시진핑, 아베, 푸틴처럼 사자의 용맹함(폭력)과 여우의 간교함을 갖춘 지도자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들에게 ‘평범한 국민의 위대함’이 과연 통할까. 제1차 세계대전 후 우드로 윌슨 미국대통령(28대)은 정치적 이상주의(political idealism) 외교의 깃발을 높이 들었지만 뒤이어 닥친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 이후 국제정치와 외교의 황금률은 정치적 현실주의(political realism)로 귀결됐다.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크고 작은 업적을 남긴 정치지도자들은 거의 전부가 현실주의자였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면 나이브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심한 경우 위선으로 몰린다.

이밖에도 위선의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드러난 장관후보자들의 ‘내로남불’ 행태는 위선의 전형을 보여줬다. 부동산 투기를 잡아야 할 국토교통부장관 자리에 투기 전문가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 후보로 추천됐을 때 모두들 아연했다. 그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의 신(神)”이라고 조롱당한 끝에 낙마했다.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마저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물러났다. 빈자리는 어김없이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채워졌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인사 참사’는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저에 대한 지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 해 일을 맡기겠다”고 한 말이 허언이 됐으니 이 또한 위선이었다. 대통령이 강조한 ‘통합’과 ‘협치’도 말뿐이었다. 국민으로선 누구라도 ‘위선 피로증’을 느낄 만했다.

국민이 ‘위선’이라고 느끼면 어떤 선의도 백약이 무효다.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입에 발린 말로 듣고, 뭘 해도 보여주기 위한 쇼로 받아들인다면 천하에 없는 이념도 정책도 통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2년 사이에 거의 반 토막이 나 40%대 후반으로 떨어진 것도, 이 정권의 우군 격인 경실련의 평가에서조차 국정운영 성적표가 10점 만점에 평균 5.1점에 그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가히 ‘위선의 덫’이라 할 만하다. 이 정권은 지금 이 덫에 한 발 정도는 걸려있다. 더 늦기 전에 발을 빼야 한다.

물론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정권 반대세력, 대통령의 표현에 따르면 반칙과 기득권, 분단과 적폐 세력이 집요하게 ‘위선의 프레임’을 만들어 그 안에 가두려고 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 정도는 국민도 안다. 어떤 정권인들 잘 못한 일만 있겠는가. 이 정권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국민 참여의 폭을 넓혔고, 소통의 통로를 확대함으로써 직접 민주주의 기반 구축에 기여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다소 불편하고, 효율성을 떨어트리며, 자칫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고 해도 시대의 추세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스스로 자초한 ‘위선의 덫’에 걸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내로남불’을 넘어 ‘내정남불’(내가 하면 정의, 남이 하면 불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도덕적 우월감부터 버려야 한다. 위선자로 몰리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자신들만이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지킨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조금만 더 겸허하게 스스로를 낮췄다면 설령 역량이 조금 부족했더라도 평가는 달랐을 것이다. 언제까지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수진영의 부채감(負債感)만 우려먹을 셈인가. 민주화 투쟁은 좌파만 했나. 정권은 언제든 바뀐다. 12일은 부처님 오신 날, 이 정권 사람들에게 권할 말은 딱 두 글자,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라는 부처님의 하심(下心)이다.

 

문 대통령, 사회원로와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 왼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김지형 전 대법관, 노영민 비서실장, 김연명 사회수석,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종찬 전 국정원장,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 김수현 정책실장, 고민정 대변인, 강기정 정무수석, 정해구 정책기획 위원장, 김영란 전 대법관, 김우식 전 청와대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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