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대물림 관치금융 … 이명박‧박근혜 펀드도 줄줄이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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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기자
입력 2018-11-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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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책 수혜주 상품 우후죽순…지속성 떨어져 정권말 유명무실

[그래픽=김효곤 기자]


2015년 9월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KEB하나은행이 출시한 '청년희망펀드 공인신탁'에 1호로 가입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고 1호 가입자가 된 후 주요 부처 장·차관은 물론 재계, 금융권 수장 등 민간에서도 릴레이 가입에 나섰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구사하자 시장도 꿈틀댔다. 정책 수혜가 기대되는 관련주에 투자하는 상품들도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다. 당시 청년희망펀드 가입자를 보면 정치인부터 재계 총수, 금융지주 회장, 연예인 등 유력자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문제는 펀드를 어떻게 운용할지, 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청년실업 해결에 어떤 실질적 도움을 줄지가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성된 1400여억원은 용처 없이 은행 예금으로 잠을 잤고, 결국 지난 8월 판매 중단됐다.

정부 눈치를 본 금융사들이 차분한 검토 없이 '눈치보기 식'으로 상품을 출시하다 보니 실효성이 부족하고 지속성도 떨어져 결국 몇년 지나지 않아 유명무실화된 셈이다.

◆전시행정에 반짝하고 사라지는 정책금융

관치 금융으로 인한 폐해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8‧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후 MB 정부는 녹색성장 구체화에 속도를 붙였다.

무언의 압박에 금융권에서는 관련 펀드가 봇물을 이뤘고, 정책금융 기관도 펀드 흥행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를 결정했다. 수출입은행이 2013년 말 탄소펀드와 자원개발펀드에 339억원을 투자해 102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녹색성장 펀드는 대표적인 '관치 펀드' 사례다. 관치로 인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다 보니 금융사의 경영 자율성은 축소되고, 경쟁력을 키우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녹색성장펀드는 2008년 5건에서 2009년 39건으로 8배가 됐다. 하지만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0년 13건, 2011년 7건, 2012년 8건 등으로 이명박 정부의 힘이 빠질수록 펀드도 쪼그라들었다.

권력이 박근혜 정부로 넘어간 뒤엔 힘이 더 빠졌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1년 1500억원 규모였던 녹색성장펀드 설정액 규모는 올 7월 현재 398억원으로 감소했다. 국내에서 운용되고 있는 42개 테마펀드 중 가장 적은 규모다. 펀드 수가 4개에 불과한 럭셔리펀드의 설정액(1357억원)보다도 적다.

수익률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녹색성장을 향한 관심이 높았던 2009년 수익률은 58.6%에 달했다. 하지만 정권 말기인 2011년에는 마이너스(-21.6%)로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 관치 펀드는 더욱더 생겨났다. 청년희망펀드와 함께 대표적인 관치 상품으로 알려진 것이 '통일펀드'다. 그러나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직후 각 은행마다 경쟁적으로 쏟아냈던 통일금융은 어느새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정권 초기 은행들이 앞다퉈 통일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정부에서도 통일금융 관련 연구를 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이후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기술금융이 그 자리를 차지한 모습이다.

상생‧동반성장 펀드 역시 이름만 거창할 뿐 대기업들이 수천억원의 자금을 은행에 이체하고 이자를 안 받는 대신 중소기업 대출에 쓰라는 식이었다. 일부 기업은 고작 수십억원짜리 중소기업 펀드를 내놓고 그룹 홍보에 치중하기도 했다.

◆관치에 금융사도 눈치 게임

이 같은 '캠페인식' 관치 금융상품의 실패 요인은 체계적인 관리의 부재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정부 주도 펀드는 소비자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하지만 지속 가능한 설계가 되지 않아 수익 창출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를 펀드 하나로 해결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안이하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이어 정부가 예산과 정책으로 다뤄야 할 사회문제를 펀드 생성으로 민간 참여를 독려했다는 홍보효과를 노린 데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같은 정책 중심의 펀드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수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수익이라는 매력이 없으면 자산운용사와 소비자가 외면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 수익 중심의 체계적인 계획 확충과 민간·시장 주도의 펀드 운용이 해결 방안으로 제시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효성에 상관 없이 정권 코드에 맞춰 상품을 내놓고 보자는 관행이 여전하다"며 "치밀한 검토 없이 눈치보기 식으로 출시하다 보니 실효성이 부족하고 지속성이 떨어져 결국 몇년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도 정책 기조인 재벌개혁‧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존 정부의 전시성 행정을 답습하고 있다"며 "전 정권과 같은 말로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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