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기술이 미디어 업계 흥망 가른다

한준호 아주닷컴 온라인에디터 입력 : 2018-11-13 07:55
지난여름 일본 아사히신문 본사를 방문해 디지털 편집국 사람들을 만나 ‘디지털 저널리즘’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아사히신문 측에서 "한국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저널리즘에 대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사히신문의 시행착오와 경험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사히신문 관계자들은 “디지털 저널리즘의 성공사례로 뉴욕타임스가 자주 거론되는데, 전 세계를 상대로 영문 기사를 쓰는 그들과 일본어로 기사를 쓰고 일본인 독자만 상대하는 아사히는 처해진 상황이 다르다”며 “오히려 미디어 환경이 비슷한 한국의 사례가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입을 모았다. 

아사히신문은 다양한 디지털 저널리즘을 실험 중이다. 지난 4월에는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특정한 영역을 취재해 소개하는 버티컬 미디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취재 영역은 △밀레니얼 세대 여성 △반려동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법 △좋은 책 고르는 법 등이다. 독자들의 흥미를 대신 취재해 커뮤니티를 늘리겠다는 시도다. 아사히는 2020년까지 취재 영역을 20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 기자는 아사히신문 본사에서 디지컬 편집국 사람들을 만나 '디지털 저널리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사진=정명섭 기자) 

 
신문‧잡지 천국인 일본은 5년 전부터 신문구독자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아사히신문의 발행부수는 2014년 800만부에서 최근 600만부까지 떨어졌다. 회사 전체가 위기의식을 갖고 ‘디지털 저널리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에선 1986년 신문제작이 활자 인쇄에서 컴퓨터 제작으로 넘어오면서 ‘미디어 흥망’이 처음 거론됐다. 1999년에 인터넷 보급에 따른 정보혁명으로 한 차례 위기를 넘긴 뒤 20년이 지난 지금 ‘테크놀로지의 극적인 진화’에 의해 더 큰 변혁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이미지= Listin Diario 홈페이지 자료사진] 


이제 뉴스는 모바일로 소비되는 세상이 됐다. 신문과 잡지가 스마트폰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발행부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종이매체뿐만 아니라 방송사도 모바일에 시청자를 뺏겨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

신문·잡지·방송사와 같은 전통 매체들은 뉴스 유통자의 자리도 뺏겼다.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뉴스 유통의 패권이 넘어가면서 수익 기회가 크게 줄었다. 디지털 광고시장은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미디어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들이 수혜를 받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의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테크기업들이 미디어 업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콘텐츠 쟁탈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 세계 미디어들은 자사 콘텐츠의 유료화를 모색하고 있다. 넷플릭스처럼 월정액을 받고 무제한으로 기사를 제공하는 방식이 유료화의 대표적인 사례인데, 미국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이 성공모델로 꼽힌다. 그러나 네이버를 통해 무료로 기사 콘텐츠를 제공해 온 한국 매체들엔 콘텐츠의 유료화는 그림의 떡이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는 서브스크립션에 성공한 대표적 미디어로 꼽힌다. (사진=각사 홈페이지)  


현재 패권을 쥐고 있는 쪽은 전통 매체들이 아니라 기술을 기반으로 정보 유통을 선점한 플랫폼 사업자들이다. 기술을 무기로 군림한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수익 기회를 박탈당한 전통 매체들도 이제 '테크놀로지' 도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 애널리틱스, 앱 설계, 알고리즘 해석, 블록체인과 같은 디지털 기술의 쓰나미는 편집뿐만 아니라 광고,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으로 밀려오고 있다. 

하지만 기술자 영입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기술자 영입의 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기술자 영입이 어려워 디지털 콘텐츠 개발을 외주에 맡기는 곳도 수두룩하다. 기술자 입장에서도 신문사에 취업하기보다는 구글, 아마존과 같은 IT 공룡 기업에 채용되기를 원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미디어 혁신의 선두주자 버즈피드는 전체 임직원 중 인포그래픽·UI(사용자 인터페이스) 디렉터 등 기술 인재의 비율이 25%를 차지한다. 편집·취재 기자 직군이 대부분인 전통매체의 기술 인재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한 기사 콘텐츠는 이제 살아남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달 27일 '미디어의 새로운 서열' 특집을 게재한 일본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는 향후 미디어 업계의 서열이 △재무격차 △기술격차 △인사격차 △대우격차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재무상황이 악화되면 인재가 유출돼 미래를 위한 기술 투자가 약화되고, 기술력이 약화되면 혁신에 뒤처지게 되며, 구태의연한 인사가 지속되면 개혁 추진력을 잃게 되고, 대우가 좋지 못하면 인재를 끌어모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일본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기술 인재 영입 여부에 따라 3년 후 미디어의 서열이 완전히 바뀌고, 서열을 넘어 생사(生死)까지 가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술이 곧 디지털 저널리즘의 비즈니스 모델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편집과 테크놀로지, 비즈니스 모델을 융합시키는 데 성공한 미디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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