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최신 고대역폭메모리 HBM4의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양산 개시’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연구가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시장과 승부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가 HBM4 양산을 시작했다. 고객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속도는 이전 세대보다 22% 빨라졌다고 밝혔다. 올해 하반기에는 한 단계 더 앞선 HBM4E 샘플도 내놓겠다고 했다.
이날 발표에서 삼성전자는 여러 수치를 제시했다. 제시된 숫자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번 발표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삼성의 시간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HBM은 이제 고급 메모리가 아니다. AI 시대의 필수 부품이다. 대형 AI 모델은 계산보다 데이터 이동에서 병목이 생긴다. GPU가 아무리 강해도, 데이터를 공급하는 메모리가 느리면 전체 속도는 떨어진다. 그래서 HBM은 AI 데이터센터의 성능과 직결된다.
문제는 그동안의 평가였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세계 1위지만, AI용 HBM에서는 추격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전 세대 공급에서 SK하이닉스가 앞섰다는 분석이 많았다. 시장은 냉정했다.
HBM4 출하는 그 평가에 대한 답이다. “삼성도 다음 세대를 맞출 수 있다”는 선언이다. AI 반도체 시장은 세대 교체가 빠르다. 일정과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신뢰를 잃는다. 이번 발표는 삼성의 시계가 다시 AI 시간표에 올라섰다는 신호다.
더 중요한 점은 구조다. HBM은 혼자 쓰이는 칩이 아니다. 설계, 파운드리, 패키징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삼성은 이 세 영역을 모두 갖고 있다. 만약 이를 하나의 해법으로 묶을 수 있다면, 단순 메모리 공급자를 넘어 AI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
경쟁 상대는 단순한 메모리 업체가 아니다. TSMC와 같은 종합 반도체 기업이다. AI 시대의 승부는 부품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갈린다.
물론 출하가 곧 승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고객사 탑재가 이어져야 한다. 수율이 안정돼야 한다. 장기 계약이 확보돼야 한다. 분기 실적이 이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가 있다. 삼성은 이번 발표에서 HBM4에 그치지 않고 HBM4E까지 시간표를 제시했다. 한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연결했다는 점은 전략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AI 시장은 준비된 기업만 살아남는다.
HBM4는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다. 삼성이 다시 ‘따라가는 회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말하는 회사’로 돌아올 수 있는지 묻는 시험대다.
기술은 방향을 열고, 속도는 순위를 가르고, 신뢰는 시장을 결정한다.
삼성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 시간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어질지가 삼성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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