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이끈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역사적 대승을 거뒀다. 단독 과반을 훌쩍 넘겼고, 연정까지 합치면 중의원 3분의 2를 확보했다. 숫자만 보면 ‘완벽한 승리’다.
그러나 이 선거를 백지위임으로 해석하는 순간, 일본 정치는 길을 잘못 든다. 이번 선거는 정책에 대한 포괄적 승인이라기보다 인기투표에 가까웠다. 방위비 증액, 방산 수출, 비핵 3원칙, 재정과 감세 정책과 같은 주요 현안 중 어느 것 하나 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되거나 국민적 토론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다수 의석은 얻었지만, 모든 정책에 대한 사전 동의까지 얻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대승이 다카이치 정권의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본다.
총선 개표 도중 일본 방송국 인터뷰에 응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 [사진=일본민방 캡쳐]
첫째,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졌다. 유권자들은 “뭔가 해줄 것 같다”는 감각으로 표를 던졌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빠르다. 일본 정치에서 그동안 반복된 공식이다.
둘째, 권력이 총리 개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됐다. 압승 직후 당에서는 “이제 총리에게 반대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라는 말이 나왔다. 토론이 줄어들고, 견제가 약해질수록 정권의 회복 탄력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셋째, 자민당은 ‘대승 후 하락’의 역사를 가진 정당이다. 2005년 고이즈미의 우정 해산, 2012년 아베 정권의 재집권 등 모두 압도적 승리로 출발했지만, 정책 강행과 설명 부족이 누적되며 지지율은 빠르게 꺾였다. 자민당의 대승은 늘 정치적 안정이 아니라 정치적 과잉과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일본 유권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넷째, 대외 환경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방위비와 역할 확대를 요구할 것이고, 중국은 그의 강경 노선을 예의주시하며 전술적 압박과 유화 사이를 오갈 것이다. 국내 합의가 얇은 상태에서 외교·안보의 속도만 빨라질 경우 정권은 안팎에서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이번 선거는 다카이치 총리에게 가장 강한 권력을 안겨줬다. 동시에 가장 좁은 안전지대를 남겼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추진이 아니라 더 많은 설명이다. 결단이 아니라 합의의 설계다.
대승은 끝이 아니다. 일본 정치에서 대승은 종종 하락의 시작점이 되어 왔다. 다카이치 정권이 이 함정을 피할 수 있을지는 이제 정치에 달려 있다. 유권자들은 표를 던졌지만, 백지장을 건넨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