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한국 야구를 사랑한 日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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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디지털뉴스룸 편집장
입력 2018-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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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외무성에 한국 업무를 전담하는 ‘과(課)’가 생겼어요.”

내달이면 주한일본대사관 근무를 마치고 유럽으로 떠나는 오래된 외교관 친구가 필자에게 자랑하듯 한 얘기다. 지난주 그를 송별하기 위해 참석한 지인들과의 저녁자리에선 단연 일본 외무성에 신설된 ‘한국과’가 화제였다. 자리에 함께한 일본 외교관들은 '한국과'가 신설된 데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 모습이었다.

기자는 외무성에 한국을 전담하는 부서가 생긴 것도 까마득히 몰라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랐지만, 초대 한국과장 자리에 나가오 시게토시(長尾成敏) 외무성 총무과 기획관이 임명됐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두 번 놀랐다.

그는 4년 전 주한일본대사관에 근무하던 시절에 프로야구 경기를 함께 보러 다녔던 야구친구였다. 한국 야구를 사랑했던 그가 초대 한국과장으로 일본의 한국외교를 총괄하게 됐다고 하니 나도 덩달아 기뻤다.

그동안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산하에 있던 동북아시아과에서 한국과 북한에 관한 외교정책 업무를 담당해 왔으며, 한·일 경제를 다루는 일한경제실(日韓經濟室)이 별도로 운영돼 왔다. 7월 1일자로 시행된 외무성 조직개편으로 북동아시아과는 북동아1과(한국담당)와 북동아2과(북한담당)로 분리돼 ‘한국과’와 ‘북한과’가 각각 신설됐으며, 일한경제실은 북동아1과로 흡수됐다. 북동아과는 2개로 쪼개졌지만 한방을 쓰기 때문에 정보공유는 잘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서 “이번 조직개편은 일·한관계 강화의 필요성 및 북한을 둘러싼 각종 현안에 대한 대응을 강화할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북동아1과와 북동아2과를 설치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과 북한 모두 챙겨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에 보도된 뉴스는 온통 ‘한국과’가 아닌 ‘북한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기사 제목도 "日 외무성, 北전담 ‘동북아2과’ 신설" 등으로 대동소이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북한이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라 ‘북한과 신설’에 자연스레 무게가 실린 모양새다. ‘한국과’도 새롭게 출범했는데 북한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다. ‘한국과 신설’이 북한에 가려진 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북한 이슈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일본 정치인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올해 들어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의 업무 비율은 한국이 20%, 북한이 80% 정도로 차이가 컸다”며 “정치인들의 북한에 대한 문의가 외무성에 폭주해 담당 공무원들은 국회에서 북한동향을 설명하느라 일에 쫓기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 업무가 뒷전으로 밀릴 만도 하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1시간 동안 계속된 확대회담을 마친 후 서명식장으로 자리를 옮겨 한국어와 일어로 작성된 공동선언문에 공식 서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정책방송원 제공]


그렇다고 한·일관계에 이목을 끌 만한 이벤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일본 총리가 1998년에 체결한 ‘21세기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 발표 20주년이 되는 해다. 한·일 파트너십 20년을 계기로 한·일관계를 가일층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공감대도 이미 양국 간에 형성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이 되는 10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길 희망한다는 뜻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또, 적절한 시기에 자신도 한국을 방문해 셔틀외교를 본격화시켜 나가길 희망한다는 뜻도 밝혔다.

한·일 양국은 정상외교뿐만 아니라, 문화‧인적 교류 활성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을 빛내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최근 나가오 신임 한국과장이 방한했다. 외교부를 찾아 카운터파트를 만나고 국내 일본전문가들과 함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2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전 총리가 만들어낸 우호적인 양국관계를 다시 살려나가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 최전선에 한국 야구를 사랑하고, 한국에 친구가 많은 나가오 과장이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자뿐일까.    

주변에 물어보니 역시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한·일외교 전문가는 "한국과장 자리에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주한일본대사관 근무를 경험한 외교관이 그 자리에 오른 것도 사상 최초"라고 그의 행보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나가오 과장의 나이는 45세로 일본 외무성 과장의 나이 치고는 굉장히 젊기 때문에 무언가 보여주지 않을까"라며 양국관계에 신선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상을 내놨다. 한국 프로야구를 사랑했던 나가오 과장이라면 '한·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쯤은 기획하고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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