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퇴직연금은 '고인 물'이라 그렇다. 좀처럼 운용방식을 바꾸지 않고, 안전자산에만 안주한다. 돌다리도 두드리는 신중함이 아니라 무사안일에서 비롯한 것이다. 보험연구원 자료를 보자. 원금보장형 퇴직연금은 2016년 기준 예·적금을 50% 가까이 담았다. 이에 비해 미국과 영국은 예·적금에 2%가량만 투자했다. 대신 퇴직연금 적립액 가운데 40% 안팎을 주식에 투자해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숙련된 전문인력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인 물을 이런 의미로도 쓴다. 오랫동안 새로운 이용자가 늘어나지 않는 게임을 고인 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게임은 대개 얼마 지나지 않아 망한다.
대안은 기금형 퇴직연금이다. 이름부터 어렵다면 '고인 물을 흐르게 하는 제도'라고 생각해도 좋다. 먼저 기업 외부에 자산을 관리할 수탁법인을 만들고, 이를 노사 공동으로 뽑은 대리인에게 맡긴다. 당연히 노사가 함께 참여하니 수익률에 바짝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정말 좋은 제도처럼 보이지만 실행은 아직 불가능하다.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하기 위한 법안은 수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그나마 퇴직연금이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살 수 있게 한 점은 다행스럽다. TDF는 세계적인 노후준비 상품이다. 생애주기에 따라 안전·위험자산 비중을 바꿔주기 때문에 수익성과 안전성을 고르게 챙길 수 있다.
정부는 복지를 챙기려면 퇴직연금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보다 손뼉을 많이 칠 일은 찾기 어렵다. 그리고 국회는 정말 일 좀 하자. 아니면 퇴직연금 개선에 여야가 나뉘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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