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칼럼] 엄동설한, 중국 국빈 방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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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7-12-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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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 중국 국빈 방문의 교훈

 

     [사진=강영진 초빙논설위원]



강영진 초빙논설위원

차라리 가지 않은 것이 낫지 않았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을 두고 국내 일부 언론에서 나오는 평가다. 역대 대통령의 해외 ‘국빈’ 방문에 이런 평가가 뒤따른 적은 없었다.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 와중에 “문 대통령 정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알현하러 가는 날”이라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앞에서 망발을 부렸다. 우리 외교능력이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사드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뒤 우여곡절 끝에 입장을 바꿔 사드 배치를 ‘완성’했다. 문 대통령 역시 공약과 달리 사드 배치가 우리 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인식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키는 일이든 아니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를 카드로 삼아 중국에 ‘추파’를 던졌고 중국은 이를 한국의 ‘외교적 약점’으로 만들었다. 10월에 ‘3불 조치 표명’으로 일단락됐다던 중국의 ‘사드 보복’은 아직도 여전하고 문 대통령과 세 번째 만난 자리에서도 시진핑 중국주석은 또다시 사드를 문제 삼았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우리 경제에 상당히 나쁜 영향을 주고 있기에 하루빨리 반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건 맞는다. 그러나 ‘사드 보복’으로 인한 피해는 이미 1년 가까이 진행돼 왔고 그 피해가 중국의 졸렬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국민적 합의가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문 대통령의 국빈 방문으로 일거에 반전시킬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 이번 방중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재벌총수 다수가 포함된 300여명의 경제사절단을 동반한 대통령 행사에 중국 측은 의사결정권 없는 기업 내 2, 3인자들이 주로 참석했다. 아무리 우리가 성의를 보여도 중국은 ‘보복’을 거둘 생각이 아직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알고도 굳이 중국 방문을 서두를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애당초 ‘혹 떼려다가 혹 붙이는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방중을 준비했다면 무능한 외교 참모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중국이 여전히 앙금을 털지 못하고 앙앙불락하고 있다는 점은 이번 국빈 방문 과정 전체를 통해 다각도로 드러났다.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없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국 정상이 제 나라에 와 있는데 온종일 변변한 인사들이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급기야 중국 공안의 지휘 아래 있는 중국 경호원들이 문 대통령 코앞에서 수행 기자단과 청와대 직원을 폭행했다. 그 사건으로 대통령 일정이 지연되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행동이 문 대통령에게 ‘간접 행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고 저지른 듯하다. 한국 언론이 문 대통령 방중에 우려를 표시하고 중국의 홀대를 지적하자 중국 관영언론이 한국 언론을 강하게 비판한 뒤에 벌어진 일이다. 중국 언론과 공안이 당국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본때를 보이겠다’는 심사를 가지고 벌인 일종의 작전이 아닐까 싶다. 중국의 ‘손님 대접 솜씨’가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다.
외국 손님을 맞는 중국의 태도가 이렇게 바뀐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 널리 공표되면서 중국은 외국을 대하는 자세가 급변하고 있다. 걸핏하면 보복이고 걸핏하면 시비다. 당국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 언론과 과도한 민족주의에 취한 대중이 수단이다. 당국은 뒤로 빠져서 자신들은 보복한 적이 없다고 얼굴 두껍게 말하면서 말이다.
이런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할지는 전략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지금처럼 중국을 달래기 위해 온갖 수모를 감수하며 한없이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이나마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국격을 지켜나가는 것이 좋은지 말이다. 중국이 가진 드넓은 시장 때문에 초조함을 드러내가며 원칙 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만 대응하다가는 갈수록 수렁에 빠질 것으로 심각히 우려된다. 중국은 진작부터 '한국은 돈으로 누르면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정상회담 합의사항 4대 항목도 애매한 구석이 있다. 화성 15호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북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내용은 빠져 있다. 남북한 교류가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지만 지금 시점에 굳이 정상 간 합의에 넣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또 한반도에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한 대목은 중국에 가서 미국을 견제한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수시로 밝혀왔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앞에 미국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해결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 자체로는 타당하고 절대적이다. 그러나 어떤 입장이라도 맥락과 상관없이 아무 자리에서나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중 합의에 동맹국인 미국을 의식한 듯 비쳐지는 내용을 꼭 포함시켜야 했을지 의문이다.
중국은 우리에게 운명적인 관계이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두 나라와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는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들이 한민족의 존립과 번영을 존중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대단히 지혜로워져야 한다. 이념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성찰하고 역사를 살펴야 하는 것이 지도자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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