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담배와 영화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7-12-14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나 받았다.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와 2004년 ‘밀리언달러 베이비’이다. 두 작품 모두 작품상도 거머쥐었다. 그러나 남우주연상은 후보에만 올랐다. 그의 연기보다 감독 능력이 더 뛰어난 것일까.

그의 ‘메소드 연기’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4년 작 ‘황야의 무법자’가 대표적이다. 무명의 떠돌이로 나와 담배를 질겅거리며 툭툭 던지는 짧은 대사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한다. 그는 “말수가 적으면 강한 인상을 주고, 관객의 상상 속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레오네 감독의 ‘달러 3부작’에서도 주인공은 여전히 ‘무명인’이었다.

그가 1971년 ‘더티 해리’에서 매그넘 권총을 쏴대는 폭력 경찰로 등장했을 때, 비로소 무명인에서 유명인이 됐다. 여기서도 짧은 대사와 함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담배 피우기를 선보였다. 그에게 담배는 거친 마초의 상징이었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잉그리드 버그먼을 떠나 보내는 험프리 보가트 입에도 담배가 물려 있었다. 트렌치 코트의 깃을 세우고 뒤돌아서는 고독한 남자의 뒷모습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관객들이 모성본능을 느꼈을까. 이스트우드와는 달리 섬세하고 멋스러운 스모킹은 당대의 섹시 여배우 로렌 바콜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첫 영화에서 바콜은 담배를 든 채 걸어오고, 보가트는 불을 붙여준다. 이후 그들은 실제 부부가 된다.

하지만 이런 레전드급 스모킹은 TV에서 제대로 볼 수 없다. 화면을 부드럽게 뭉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규정에 담배와 관련된 사항은 없다.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모자이크 처리한 것이다. 영화 주인공이 멋있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흡연을 부추긴다고 보는 것일까.

턱이 우묵한 배우 커크 더글러스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처음으로 담배를 접했다고 한다(뉴욕타임스, 2003년 5월 16일자). 바버라 스탠윅스의 남편으로 분한 1946년 ‘마사의 낯선 사랑’에서 첫 장면이 공교롭게도 담배를 피우는 설정이었다. 그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했지만, 감독은 “쉬워. 금방 배워”라며 소품 담당자를 시켜 건넸다고 했다.

당시 영화에서 담배는 훌륭한 소품이었다. 많은 배우들이 손 처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포켓에 넣을까, 뒷짐을 질까, 옆구리에 댈까. 담배가 해답이었다. 담뱃갑에서 한 개비 끄집어내고, 톡톡 두드리고, 불을 붙이고, 깊이 빨아들인 다음 내쉬면 됐다. 링을 만들거나 담배로 무언가를 가리킬 수도 있다. 재떨이에 부드럽게 혹은 강하게 비벼 꺼도 됐다. 폴 헨리드는 1942년 ‘나우, 보이저’에서 한번에 두 개피를 피워 물어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

그런 시대였지만 더글러스는 1950년 갑작스레 담배를 끊는다. 책상 위 아버지 사진을 보고서다. 그의 아버지는 1910년 미국으로 온 러시아 농부로, 이른바 ‘체인 스모커’였다. 기침 때문에 병원에 갔고, 의사로부터 담배를 끊지 않으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경고를 받는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셔츠 주머니에 담배 한 개비를 넣었다.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어지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노려보며 외쳤다. “누가 강하냐? 너냐, 나냐?” 그리고는 “내가 강하다”며 도로 담배를 넣었다. 그럼에도 72세에 암으로 죽었다.

더글러스는 이를 떠올리며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담배를 뚫어지게 보고는 “누가 강하냐? 너냐, 나냐?” 외쳤다. 이어 “내가 강하다”며 셔츠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의 첫 담배는 할리우드가 건넸지만, 마지막 담배는 스스로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이후 50편 이상 영화에서 실제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더글러스가 1957년 ‘OK목장의 결투’에서 치과의사 출신의 전설적인 총잡이 닥 할러데이를 연기할 때 폐렴으로 콜록거리는 설정을 선보였다. 이 영화는 1881년 10월 26일 오후 3시부터 30초간 벌어진 보안관과 카우보이 사이의 실제 총격전을 극화한 것이다. 버트 랭커스터가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를 맡았는데, 그 역시 여느 서부 총잡이처럼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반면 의사 출신 총잡이가 콜록거리는 설정은 아마도 실제와 달리 더글러스의 결단일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2004년 개봉 작품 ‘일루전’에서 늙어 죽어가는 영화감독 역할을 맡았는데, 극중 담배를 건네자 “담배 안 피워. 나 암 걸렸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건강하게 살고 있다. 지난 9일 101세 생일을 맞았다. 87세인 이스트우드도 여전히 노익장을 자랑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