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6번째 대만 총통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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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2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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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 초상화 앞에서 발언하고 있는 마잉주 현임 대만 총통.[사진=신화통신]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대만의 첫 총통선거는 1996년 치러졌다. 아버지 장제스(蔣介石)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장징궈(蔣經國) 총통은 ‘대만은 대만인이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아래 1988년 사망하면서, 대만인 출신인 리덩후이(李登輝)에게 총통직을 넘겨주었다. 리덩후이는 대만인 출신들을 대거 기용하고, 대만독립을 주장하며, 중화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직선제를 도입했다. 1996년 총통선거를 앞두고 중국은 대만독립노선을 주장하는 리덩후이를 견제하기 위해 대만 앞바다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당시 리덩후이는 53.99%의 높은 지지율로 총통에 당선됐다.

2000년 선거에서 리덩후이는 겉으로는 국민당 롄잔(連戰)후보를 지원했지만 실제로는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후보를 지지했다. 이로 인해 리덩후이는 국민당 당적을 박탈당했다. 천수이볜 후보가 승리하며 대만에 정권교체가 실현됐고, 이후 민진당은 대만독립노선을 착실히 걷게 된다. 중국과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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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대선에서 천수이볜은 지지도 하락으로 낙선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선거일을 몇 일 앞두고 의외의 총격을 받았다. 동정여론이 일었고 천수이볜은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다. 천 전 총통 임기중 대만의 경제성장 둔화에다 부정부패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그의 지지율이 10%대로 하락했다. 현재 그는 총통 재임 당시 비리혐의로 수감중이다.

2008년 총통선거에서는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이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됐다. 민진당 정부의 실정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가 많았으며, 2007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가 대만경제를 덮쳤고, 이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개선이 급선무로 떠올랐던 탓이다. 마잉주의 민진당의 셰창팅(謝長廷) 후보와의 득표율차는 무려 17%P였다.

마잉주는 '하나의 중국'을 제창하며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힘을 썼고, 경제는 중국과의 교류덕에 활기를 되찾았다. 마잉주는 2012년 총통선거에서 대만독립을 강하게 주장한 민진당 여성후보 차이잉원(蔡英文)의 거센 도전을 받았지만, 대만 경제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만에서는 대규모 반중시위가 일었다. 중국과의 교류확대가 대만을 중국에 종속시키며, 대만인들의 일자리를 뺏어갈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국민당의 지지율이 급락했고, 마잉주의 지지율 역시 한자리수까지 떨어졌다. 이어 국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참패를 거뒀다. 지지율이 급락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당은 차기 대선후보로 잠재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훙슈주(洪秀柱)를 선택했다. 내년도 대만의 여섯번째 총통선거는 두 여걸의 빅매치로 치러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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