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북한 노동자를 '학생'으로 꾸며 들여오는 중개망이 국제 인권단체 조사로 드러났다. 북한 노동자 고용을 금지한 유엔 제재를 피하면서, 이들이 번 돈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흘러든다는 것이다.
29일 헤이그에 본부를 둔 인권·국제법 전문 재단 글로벌 라이츠 컴플라이언스(GRC)는 9개월간의 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모스크바 사업가 블라디미르 소콜로프가 온라인 노동 중개 플랫폼 ‘KNDR.su’를 운영하며 북한 노동자를 러시아 기업에 팔고 있다고 밝혔다. ‘KNDR’은 북한을 뜻하는 러시아어 국호 약칭이다. 소콜로프는 2007년부터 중국·유럽산 공작기계를 수입하는 블랙호스 그룹을 이끌어 왔다.
GRC 조사관들은 고용주로 위장해 소콜로프 네트워크의 운영 책임자 루슬란 주코프와 접촉했다. 주코프는 최소 50명 단위로 주문을 받고 북한 노동자가 2025년부터 러시아에서 일했다고 확인했다. 플랫폼은 1명당 10만~15만루블(약 900~1350파운드)의 수수료를 받는다. KNDR.su는 노동자가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이틀만 쉰다고 광고하는데, 주코프는 노동법 위반 아니냐는 질문에 '학생'이어서 고용 관계가 없다며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 대학에 이름만 올린 채 고용 기업에서 '현장 실습'을 받는 형식으로 학생 비자를 받는다. 러시아는 지난해 북한인에게 비자 3만6413건을 발급했는데 2024년의 약 4배이고, 98% 넘게 학생 비자였다. 노동자들은 하루 최대 18시간, 주 6~7일 일하고 소득의 90%를 북한 당국에 낸다.
러시아 기업이 북한 노동자를 쓰려면 북한 대사관의 현장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KNDR.su는 밝힌다. GRC는 얼굴 인식 기술로 주러 북한대사관 관계자들이 러시아 공장을 시찰한 사실을 확인했다. 보고서가 파악한 사업장 9곳 중 모스크바주의 군용 식량·통조림 업체 KPP 루스콘에서는 북한 노동자 30명가량이 영상으로 확인됐고, 칼루가주의 미국 제재 대상 금속가공업체 아그리소브가스는 북한 대사관 관계자가 예비 고용처로 점검했다.
딜런 카터 GRC 수석조사관은 "러시아에서 노예노동은 상품이 된 데 그치지 않고 클릭 몇 번이면 고객이 이용할 수 있다"며 "교육 교류라는 얇은 가면 아래 북한 노동자 집단이 온라인에서 공공연히 광고되고 상품처럼 팔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코프는 블랙호스 네트워크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북한 국적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학생이라고 답했다.
소콜로프는 이달 12일 EU로부터 북한과의 산업 협력 사업을 추진한 이유로 제재를 받아 자산이 동결됐다.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은 지난 9월 북한 해외 노동자가 3만5600~10만1280명이며 지난해 4억5000만~8억달러(약 6000억~1조700억원)를 벌었다고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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