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 외교관들이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 회의장에서 고성을 주고받으며 충돌해 회의가 한때 중단됐다.
이날 열린 제81차 유엔총회 27차 본회의에서는 수십 년간 이어진 미국의 대(對)쿠바 금수 조치 해제를 촉구하는 연례 결의안 토론이 진행됐다.
쿠바가 1992년부터 매년 제출해 온 이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매년 회원국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왔으며, 오는 28일 표결을 앞두고 있다.
올해는 미국의 석유 봉쇄 등 대쿠바 압박 수위가 높아진 가운데, 미국이 회원국들을 상대로 결의안 반대를 설득하고 나서면서 유엔 회의장 안팎의 긴장도 크게 고조됐다.
회의에서 마이크 왈츠 주유엔 미국 대사는 쿠바 공산 정권의 자국민 탄압과 부패 의혹을 지적하며 결의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브루노 로드리게스 외무장관을 비롯한 쿠바 대표단은 탁자를 내리치는 등 격렬하게 반발하며 의사진행 발언을 요구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로 걸어 나와 항의하자, 연단에 서 있던 왈츠 대사 역시 발언을 멈추고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할릴루르 라흐만 유엔총회 의장이 양측에 정숙을 요청했으나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로드리게스 장관이 연단 바로 앞까지 다가가 왈츠 대사에게 "당신은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치자, 왈츠 대사는 "여긴 유엔이지, 당신들 공산 독재 국가가 아니다"라며 "나를 침묵시킬 수 없다"고 맞받았다.
왈츠 대사는 이어 "여긴 아바나가 아니다. 당신 지금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아는 건가. 여긴 미국"이라며 "물러서라"고 쏘아붙였다.
장내 소란이 격해지자 라흐만 의장은 회의를 일시 중단하고 양국 대표단에 재차 질서 유지를 요구했다.
이후 발언권을 얻은 로드리게스 장관은 왈츠 대사가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총회 회의장과 회원국, 쿠바 인민과 정부의 존엄성을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다시 발언 기회를 얻은 왈츠 대사도 쿠바 정권을 향한 비판을 이어갔다.
왈츠 대사는 총회가 끝난 뒤에도 엑스(X·옛 트위터)에 쿠바 정권을 겨냥한 비판 글을 잇달아 게시했다. 왈츠 대사는 "주민들이 굶주리는 동안 유엔에서 쿠바의 부패한 정권을 계속해서 폭로할 것"이라며 쿠바 반체제 인사와 전직 정치범들의 증언 자료를 첨부했다.
그러면서 "유엔 회의장에서 비판의 기미가 보이자마자 소위 '외교관'들이 격분하는 모습을 보면, 본국에서 철권통치 아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의 대쿠바 금수 조치는 1959년 카스트로 혁명 정부가 미국계 기업 자산을 몰수하고 소련과 밀착하자, 1960년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부분 제재로 시작돼 1962년 케네디 행정부 때 전면 금수로 확대됐다.
쿠바 정부는 60년 넘게 이어진 금수가 경제난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쿠바의 인권 문제를 제재 유지의 근거로 든다. 유엔 총회는 1992년부터 거의 매년 해제 결의안을 압도적 다수로 채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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