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제도가 도입된 지 6년이 지났다. 그 사이 노동관서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2020년 5823건에서 지난해 1만6373건으로 약 3배 가까이 늘었다.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활용도는 그만큼 높아졌지만, 정작 제도의 작동 방식은 도입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숫자는 늘었는데, 시스템은 그대로다.
현행 체계의 골격은 이른바 '셀프 조사'다. 사업장에 신고가 들어오면 원칙적으로 회사가 자체 조사를 진행한다. 외부 법무법인 등에 위탁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사업주가 비용을 대고 조사 주체를 고르는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설령 신고인이 노동청에 진정을 넣더라도 노동청이 직접 조사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사용자에게 조사 및 조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을 보내고, 사업장이 제출한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받아 행정 종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사업장 내부 문제에 대한 공권력 개입을 자제하려는 태도와 인력 부족이 맞물린 결과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터진다. 가해자가 사용자 본인이거나 조직 내 실세라면 '셀프 조사'의 구조적 한계는 더욱 선명해진다. 실제 신고 사건 4건 중 1건(지난해 4422건, 27%)이 사용자가 가해자인 것으로 나타난다. 조사를 지시하는 사람과 조사받는 사람이 사실상 같을 때 그 결과를 신뢰할 근로자가 얼마나 될까. '스스로를 심판하라'는 요구는 공정함의 전제를 무너뜨린다.
다행히 최근 개선 움직임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4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을 개정해 사용자가 가해자인 사건, 조사의무를 반복 위반한 사업장은 근로감독관이 직접 조사에 나서도록 했다. 7월에는 '예방·대응 매뉴얼'을 개정해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용자를 배제하고, 외부기관 위탁이나 노사협의회 활용 등으로 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내부 지침과 매뉴얼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법적 구속력이 약해 강제력이 제한되고, 운영 방향이 언제든 후퇴할 여지도 남는다.
물론 모든 사업장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소규모 사업장은 이해관계가 없는 내부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외부 전문가 선임 비용도 부담이 된다. 일정 규모 이상에 대해서는 조사위원회 구성, 자격, 제척·기피 사유를 법률로 명시하되, 영세 사업장에는 노동청이나 공익기관이 조사 지원이나 비용 보조를 제공하는 이원적 접근이 실효적일 수 있다.
다른 방법은 노동청의 감독 기능 자체를 강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2024년 3131명이던 근로감독관을 2028년까지 8000명으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인원 부족뿐 아니라 전문성과 권한이 문제라는 지적이 크다. 이런 문제의식은 근로감독관의 직무·권한·수사기준을 하나의 법률로 통합한 '노동감독관 직무집행법'(2026년 12월 8일 시행)으로 결실을 맺었다.
최근 입법예고된 시행령·시행규칙안은 특별감독 대상에 '폭언·폭행 및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 등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발생 우려가 있어 언론에 보도되는 사업장'을 명시해 개별 신고를 기다리지 않고 선제 감독에 나설 근거를 마련했다. 또 피해자가 회사 조사 결과에 불복해 재신고하면 노동청이 서류만 보고 종결하는 대신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재검토하도록 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법안도 있다. 사용자의 조사·조치가 형식적이더라도 감독기관이 사후 확인·보완을 명할 근거가 없다는 공백을 메우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성권 의원 대표발의)이다. 피해근로자의 확인 요청, 중대한 피해, 의무 불이행 등의 사유가 있으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용자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노동감독관이 이를 확인한다. 조사·조치가 부적정하면 재조사·재조치를 명하고, 불응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구조다.
해외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노동부 감독관이 사용자에게 특정 자격을 갖춘 독립 조사관을 지정해 조사를 명령할 수 있고, 그 비용은 사용자가 부담한다. 호주는 공정근로위원회라는 독립 심판기구에 근로자가 직접 괴롭힘 중지 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우리도 노동청 인력 증원과 별개로 변호사·공인노무사 등 외부 전문가에게 조사 역할을 부여하고, 국가가 그 비용을 지원하는 협업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다음 과제는 제도가 실제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법적 장치와 이를 뒷받침할 행정력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숫자만 커지는 제도는 신뢰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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