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이제 외교 현안을 넘어 세계 경제의 질서를 다시 쓰는 과정이 되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은 이제 배터리와 전기차, 태양광, 조선, 로봇, 희토류, 특허, 인공지능까지 첨단 산업 전반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기축통화 달러와 첨단 반도체 설계, 자본시장, 혁신 생태계, 군사력이라는 가장 강력한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 앞으로 세계는 어느 한 나라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G2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안보는 미국에, 무역은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자 첨단기술 협력국이고, 중국은 여전히 최대 교역국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단순한 편 가르기식 접근은 우리 경제에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실제로 미·중 갈등이 심화될 때마다 한국 기업들은 양쪽의 요구를 동시에 받는다. 미국은 공급망 재편과 첨단기술 협력을 요구하고, 중국은 시장과 원자재, 생산기지를 무기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등 우리의 주력 산업 대부분이 이 갈등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이제 한국은 국제 정세를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변화하는 질서 속에서 스스로 생존 전략을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그 출발점은 '전략적 실용주의'다. 외교는 가치와 원칙을 지키되, 경제는 국익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안보 협력은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유지하되, 경제와 통상에서는 시장을 다변화하고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이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공급망 안정도 국가 전략으로 격상해야 한다. 희토류와 핵심 광물, 반도체 소재, 에너지, 식량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공급망이 무너지면 산업 전체가 흔들린다. 해외 자원개발 확대와 전략 비축, 우방국과의 공동 투자, 재활용 기술 개발까지 국가 차원의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국가 시스템의 혁신이다. 미·중 경쟁은 기업만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경쟁이다. 연구개발 투자와 인재 양성, 규제 혁신,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산업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부처별 칸막이를 넘어 산업과 기술, 통상과 안보를 함께 조정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 컨트롤타워도 강화해야 한다. 기술 패권 시대에는 정책 속도 자체가 경쟁력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지난 30년은 선진국을 추격하며 성장한 시대였다면, 앞으로의 30년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스스로의 경쟁력을 지켜야 하는 시대다. 어느 한 나라에 기대어 성장하는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G2 시대 한국의 해답은 명확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나라가 아니라, 어느 쪽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기술과 산업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이다. 국익을 중심에 둔 실용 외교, 초격차 산업 전략, 흔들리지 않는 공급망,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와 혁신 시스템. 그것이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는 길이며, 다음 세대의 번영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국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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