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노동자라는 이름에 묻힌 '나'라는 별 -영화 '울산의 별'

  • 도시라는 바다에 떠다니는 우리의 인생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사진=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조선업으로 호황을 이루었던 경상남도 울산. 남편을 잃고 남편의 자리에 선 여자 윤화(김금순)가 있다. 짧은 머리를 한 채 담배를 문 그녀는 이제는 밤낮없이 움직이는 크레인과 용접 불꽃이 튀는 이곳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며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간다. 

한때 조선업은 대한민국 경제를 움직이는 심장과 같았으나, 그 찬란한 불빛은 어느새 쇠퇴했다. 그 안에서 여전히 근로자들은 움직이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꿈꾸는 희망은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윤화의 삶과 이 가족의 고단함의 배경에는 울산의 현대사(史)가 깊게 자리해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추진했다. 울산은 깊은 항만과 넓은 부지를 갖춘 입지로 대규모 공업단지 조성에 적합한 땅이었고 이 시기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산업이 집중적으로 들어서며 국가 산업화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1972년 당시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이 울산에 조선소를 세우고 초대형 유조선 건조에 성공하며 조선업의 부흥을 이끌자 수많은 노동자는 울산으로 몰려들었다.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추게 된 울산은 이제 ‘부자의 도시’로 거듭났고 사람들의 모습은 희망에 차 있었고 들뜬 희망만큼이나 도시는 활개를 띄었다.
 
이같은 조선업 부흥은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LNG 운반선, 유조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잇달아 수주한 울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지역 경제는 조선업의 부흥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산업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2008년 전 세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조선업은 빠르게 쇠락했다. 세계 경기가 나빠지면서 무역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배를 만드는 조선업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그렇게 무너진 조선업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수주 절벽은 희망퇴직, 정리해고로 이어졌고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 및 협력업체 종사자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조선업에 크게 의지했던 울산의 경제도 함께 휘청였다. 그 사이 지역 청년들은 이제 또 다른 희망을 찾아 이탈하기 시작했다.
 
쇠퇴한 도시,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
영화 ‘울산의 별’ 속 윤화의 정리해고 통보를 받는 모습은 산업 쇠퇴의 잔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는 ‘조선업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산업의 흥망이 한 노동자의 삶과 그 가족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 지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윤화는 처음부터 이 일을 꿈꾸진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이 조선소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남편이 서 있던 자리에 대신 섰을 뿐, 가족 사진 속 해사하게 웃던 윤화는 어느 새 뜨거운 불꽃과 쇳가루가 날리는 현장에서 남자 동료들과 수십 년을 부대끼며 아들과 딸을 키워냈다. 어느새 조선소는 윤화의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터전이 됐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경기 침체를 이유로 윤화가 정리해고 대상이 됐다는 것. 평생을 바친 일터에서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사진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사진=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윤화의 아들 세진(최우빈)은 세상이 바뀐 것을 직감한다. 한 탕으로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면 이 삶을 바꿀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1억 원을 투자하며 가상화폐를 통해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지만 이는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조선소에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 1억 원이 필요했던 윤화와 첨예한 갈등을 겪게 되고 그 사이 서울로의 도약을 꿈꾸는 딸 경희(장민영)는 지긋지긋한 학교 폭력 속에서도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을 꺾지 않는다.

영화는 노동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윤화의 가족으로 시선을 옮겼다. 세 사람이 각자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과정에서 윤화의 남편이 남긴 땅을 둘러싼 친척들의 갈등까지 더해지며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그래서일까. ‘울산의 별’은 따뜻한 공동체의 모습 대신 회색의 모습이 강하다. 불안과 절망 그 어디쯤에서 헤매이는 삶이지만 그래도 이들은 함께 밥을 먹고 싸우고 부대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별처럼 빛나는 것은 도시가 아닌 ‘사람’
어쩌면 영화의 제목인 ‘울산의 별’은 조선소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용접 불꽃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화려했던 도시의 야경, 빛을 내기 위해 뜨거운 불꽃 아래서 땀과 상처를 감내한 사람들.

영화는 그 아래 있던 평범한 사람들을 비췄다. 정리해고를 앞둔 노동자, 미래를 잃은 청년, 지역을 떠나야만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청춘들. 이 이야기는 특정 가족만의 비극을 다룬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윤화는 결국 평생을 바쳐 일한 조선소에서 해고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평생을 바쳐 일한 조선소 전경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들· 딸과의 갈등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이같은 회색의 삶 속에서 조금의 희망을 싹틔울 수 있는 건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메가폰을 잡은 정기혁 감독은 영화가 개봉한 2024년 1월 EBS 뉴스를 통해 영화 제목이 '울산의 별'인 것에 대해 “고도로 성장한 도시에선 밤하늘에 별을 보기가 쉽지 않다. 성장한 도시의 광해 때문”이라며 “보이진 않아도 별은 늘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의 성장을 위해 희생된 이들이 보이지 않는 별처럼 느껴졌다”는 정 감독은 노동자들을 ‘도시라는 바다에 살아가는 작은 별들’로 표현하며 쳇바퀴같은 삶에도 살아내는 모든 노동자의 '오늘'을 그려냈다.

삶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고 간단하지도 않다. 그래서 어려운 게 삶이다. 다만 바다 위 떠다니는 부표처럼 흔들리는 오늘에도 나를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것은 살아있고,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닐까.
 
사진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사진=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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