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혁 칼럼니스트]
북한산 자락을 끼고 있는 동네에 사는 덕분에 틈나는 대로 산에 오른다. 아파트 단지 뒤로 해서 조금만 발품을 팔면 금세 경관 수려한 능선과 만나고 험준한 벼랑을 따라 선반처럼 설치한 잔도(棧道) 방식으로 남녀노소 두루 걷기 좋게 길을 낸 나무 데크(deck) 자락길과 연결되니 하늘이 내려준 복이다. 동네 뒷산을 가도 히말라야 등반하듯 중무장을 하는 게 한국인의 특성이라지만, 집에서 입고 있던 추리닝에 운동화 차림이면 족하다.
해가 바뀌었나 싶더니 어느새 여름이다. 세상은 온갖 일로 시끌벅적하고 바람 잘 날 없어도 시간은 재깍재깍 잘도 흘러간다. 떼창을 하듯 일시에 온 산을 노랗게 물들이던 봄의 전령사 개나리가 지자 화사한 벚꽃이 주연 자리를 꿰차더니 세찬 비바람에 장렬히 산화하며 짧은 삶을 마감하고, 코끝을 찌르는 향기로 동구밖 과수원길 추억을 불러내는 아카시아꽃도 제 소임을 서둘러 끝냈다.
봄꽃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녹색 물결이 넘실댄다. 녹음이 짙어진 산길은 그야말로 초록빛 향연이다. 그렇다. 여름은 녹음의 계절이다. 예로부터 숱한 시인 묵객과 가인들이 백화가 만발하는 봄을 노래하고 예찬했지만, 천년 전 북송의 문인이며 정치가이자 개혁사상가인 왕안석(1021~1086)이 녹음 짙고 풀 우거진 여름이 봄보다 낫다고 하며 시 한 수를 남겼다.
石梁茅屋有彎碕 석량모옥유만기
流水濺濺度兩陂 유수천천도양피
晴日暖風生麥氣 청일난풍생맥기
綠陰幽草勝花時 녹음유초승화시
돌다리와 초가집 곁에 굽이진 언덕이 있고
시냇물 졸졸 양쪽 둔덕을 지나 흘러간다.
맑은 날에 따뜻한 바람 불어 풋보리 냄새 나고
녹음 짙고 풀 우거지니 꽃 피는 시절보다 낫다네.
왕안석이 만년에 은둔하면서 한가로운 초여름 경치를 회화적으로 묘사한 시 '초하즉사(初夏即事)'다. '즉사(即事)'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 혹은 그로 인한 심정을 스케치하듯 바로 읊어내는 일을 말하니 '초하즉사'는 초여름의 즉흥시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시의 핵심 메시지는 마지막 구절 '녹음유초승화시(綠陰幽草勝花時)' 일곱 자에 응축되어 있다. 녹음유초가 꽃피는 시절을 이긴다니 무슨 뜻인가? 꽃피는 봄보다 녹음 짙고 풀 우거진 여름 초입이 더 낫다는 얘기다. 개인적 취향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화사한 봄꽃보다 초여름의 짙은 녹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왕안석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시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직접 창작 의도를 밝힌 적도 없다. 어쩌면 그는 그저 초여름을 좋아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좋은 시는 시인의 생각이 머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대를 건너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 더구나 축약과 상징, 비유의 수사법을 근간으로 하는 시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문학장르 아닌가. '초하즉사' 역시 단순한 초여름 풍경 묘사를 넘어 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따로 있을 거라는 추론을 하게 되는 이유다. 왕안석이 평생 개혁과 정쟁의 한복판에서 부침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왕안석은 북송 최고의 개혁가였다. 피폐해지고 문약한 나라를 뜯어고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야심차게 추진한 개혁적 신법은 보수파의 반대로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개혁은 늘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왕안석의 신법에 저항한 보수파, 즉 구법당의 핵심 인물은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 그리고 후대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추앙받는 구양수와 소동파다. 《자치통감》은 그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에 필적하는 대표적 역사서이고, 당송팔대가는 당나라와 송나라의 뛰어난 문장가 여덟 명을 가리키는 말이니 노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의 존재감은 대단했을 것이다. 왕안석은 오만과 독선으로 인해 당대 최고의 문인이요 학자인 이들을 포용하지 못했고, 이는 개혁 실패의 요인으로 작동했다. 왕안석의 사례에서 중종의 신임을 등에 업고 개혁을 추구하던 조광조의 좌절이 오버랩된다. 개혁은 혼자 독불장군식으로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쪼록 개혁을 꿈꾸는 이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 구법당과 신법당의 당쟁 속에 개혁은 실종되고 요나라와 서하(西夏)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북송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관직에서 물러난 왕안석은 고향인 남경 인근 종산(鐘山)에 10년간 은거하면서 스스로를 반산노인(半山老人)이라 칭하고 불교에 귀의하여 개혁 실패에 대한 울분을 달래다가 세상을 하직했다. 조광조처럼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으나 개혁 반대파와의 정쟁 속에서 실각과 복귀를 거듭하다가 끝내 좌절했으니 만년의 심사는 복잡다단했을 것이다. 정치적 성과와는 별개로 왕안석은 뛰어난 문인이었다. 개혁을 반대한 정적들도 그의 문학적 재능과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그 자신도 당송팔대가에 포함될 만큼 문장이 뛰어났던 왕안석은 미완에 그친 개혁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을 품은 채 만년을 보내며 걸출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초하즉사'도 그 시절 씌여진 작품 중 하나임은 물론이다.
꽃피는 봄 한때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허나 꽃은 화려하지만 바람이 불면 허무하게 지고 만다. 반면에 여름철 짙푸른 녹음은 화려하진 않아도 쉽게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왕안석은 야인으로 돌아와 비로소 정신적 자유와 내면의 성숙함을 얻었다. '녹음유초승화시'는 덧없이 사라지는 '화려한 권력과 명예(봄꽃)'보다 '세속을 벗어나 마주한 평온과 삶의 성숙함(녹음유초)'이 훨씬 더 값지고 아름답다는 노정치인의 철학적 깨달음이다. 권력을 휘두르며 칼날 위에 서 있던 시절보다 권력을 내려놓고 자연에 은거한 지금의 내 처지가 훨씬 더 낫다는 통찰과 자기위안의 메시지를 담은 중의적 표현이라 하겠다.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이 '그윽할 유(幽)' 자를 '향내 날 방(芳)' 자로 바꿔 7언절구 시 '간화(看花)'를 지은 이래 한반도에서는 녹음유초승화시를 대신하여 '녹음방초승화시'가 문학적 관용구로 자리잡았다. 민요 잡가 '소춘향가'에서 춘향이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밤을 지새우는 대목에도 나오고, 판소리 단가(短歌) '사철가'에도 등장할 만큼. 예로부터 방초(芳草)는 단순한 풀이 아니라 '덕이 있는 훌륭한 사람', '군자의 미덕' 등을 뜻했다.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면의 향기를 간직한 선비의 지조'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연상할 수 있었기에 각별한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왕안석은 은거하는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여 ‘유초(幽草)’라는 소박한 시어를 선택했겠지만.
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찬탄을 자아내지만 그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녹음은 눈부시지 않지만 꽃이 진 자리에서 묵묵히 자라나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준비한다. 그러니 봄이 짧다고 슬퍼하지 말고 꽃이 진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꽃의 시절은 짧고 잎의 시절은 길다. 인생도 그렇다. 왕안석이 남긴 시구가 우리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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