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아시아의 영성(Spiritual Asia) ㉒일본 신토 이야기] 국가신토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영성으로

  • 자연의 종교는 어떻게 국가의 종교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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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토 이야기의 마지막 문 앞에 섰다. 20편에서는 신토가 자연을 어떻게 신성한 존재로 바라보았는지를 살펴보았고, 21편에서는 그 자연의 영성이 신사와 마쓰리라는 생활문화 속에서 어떻게 공동체를 지탱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자연을 공경하던 종교는 어떻게 근대국가의 이념이 되었으며, 공동체의 영성은 어떻게 국가 권력과 결합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모든 종교가 역사 속에서 한 번쯤 마주했던 질문이며, 영성이 권력과 만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문명사의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신토는 본래 교리를 앞세우는 종교가 아니었다. 절대적인 경전도, 창시자도 없었다. 산과 숲, 강과 바다, 바람과 태양, 조상과 마을을 신성하게 여기며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의 종교였다. 일본인은 이를 '가미(神)'의 세계라고 불렀다. 가미는 인간을 지배하는 절대신이라기보다 생명과 자연에 깃든 신성한 존재였다. 그래서 신토는 오랫동안 자연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이어 주는 생활철학으로 기능했다.
 
6세기 무렵 불교가 일본에 전래되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갈등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인은 두 전통을 대립시키기보다 조화시키는 길을 선택했다. 이를 흔히 신불습합이라 부른다. 신은 부처의 다른 모습으로 이해되었고, 사찰과 신사가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신사에서 축복을 받고, 죽으면 불교식 장례를 치렀다. 교리의 일관성보다 삶의 조화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문화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은 일본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봉건 질서를 끝내고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던 새로운 지도자들은 국민을 하나로 묶는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선택된 것이 바로 신토였다. 원래 생활 속 종교였던 신토는 국가가 관리하는 체제로 재편되었고, 일황은 단순한 군주를 넘어 국가의 신성한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토는 본래의 모습과 다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신사는 단순히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아니라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고, 교육과 의례는 충성과 희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자연을 향하던 시선은 점차 국가를 향하게 되었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국가를 위한 헌신으로 확대되었다. 종교 자체보다 국가가 종교를 이용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물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짧은 기간 안에 산업과 교육, 행정과 군사 체제를 정비하며 서구 열강과 대등한 국가를 만들려는 노력은 세계사적으로도 주목받는다. 그러나 국가의 성장과 국민 통합이라는 목표가 종교와 결합할 때, 그 힘은 쉽게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성으로 변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역사는 여러 문명에서 이러한 사례를 반복해서 보여 주었다.
 
20세기에 들어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국가 신토는 점차 국가주의와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기반으로 활용되었다. 신사의 참배는 종교적 행위인 동시에 국가에 대한 충성의 상징이 되었고, 일황에 대한 충성은 정치적 의무를 넘어 신성한 책무로 이해되기도 했다. 원래 자연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던 영성이 국가 앞에서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는 논리와 결합하면서, 신토는 본래의 순수성을 상당 부분 잃게 되었다.
 
이 점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신토 그 자체를 군국주의와 동일시하는 것도 옳지 않고, 반대로 역사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종교는 본래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정신문화이지만, 권력이 그것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할 때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종교의 이름이 아니라 권력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은 일본 사회에 거대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전쟁이 끝난 뒤 국가 신토 체제는 해체되었고, 신토는 다시 국가로부터 분리되었다. 일황 역시 더 이상 신적 존재가 아니라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일본 사회가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일본인이 신사를 찾는 이유는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새해 첫 참배를 하고,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며, 결혼과 입학, 취업과 같은 삶의 중요한 순간을 신사에서 기념한다. 이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기보다 가족과 공동체, 삶의 평안을 바라는 생활문화의 성격이 강하다. 신토는 다시 생활 속의 영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쉽게 잊혀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전통도 권력과 결합하면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영성은 언제나 인간의 자유와 양심을 지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자연을 공경하는 마음이 인간을 억압하는 논리로 바뀌는 순간, 종교는 본래의 목적을 잃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성의 출발점은 국가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다. 산과 강, 숲과 바다, 계절과 생명,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우주의 질서를 향한 경외심이다. 일본 신토가 처음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모습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의 사상가 다석 유영모가 강조했던 자연 영성과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유영모는 인간을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 생명과 함께 숨 쉬는 존재로 이해했다. 그는 삼라만상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다고 보았으며, 자연을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신성한 생명의 현현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사유는 일본 신토가 지닌 자연 경외의 정신과 접점을 이루면서도, 특정 국가나 권력을 절대화하지 않는 보편적 영성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생활 속으로 돌아온 신토와 동아시아 영성의 미래
 
패전 이후 일본 신토는 커다란 전환을 맞았다. 국가는 더 이상 신토를 통치의 이념으로 삼을 수 없게 되었고, 신사는 다시 지역사회와 생활 속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오늘날 일본인은 자신을 특정 종교의 신자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새해가 되면 신사를 찾고, 아이의 성장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신사를 방문한다. 종교라기보다 생활문화이고, 교리라기보다 삶의 의례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인의 종교관이 모순이라기보다 실천 중심의 문화임을 보여 준다. 삶의 시작에서는 신사를 찾고, 결혼식은 다양한 형식으로 치르며, 삶의 마지막은 불교식 장례를 따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구의 기준에서는 일관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일본 사회는 오랜 세월 이러한 공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다. 이는 종교를 경쟁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이해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유영모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자연을 인간이 이용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스며 있는 거룩한 세계로 이해하였다. 산과 들, 나무와 바람, 강과 바다는 모두 생명의 질서를 품고 있으며, 인간 역시 그 질서 안에서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자연관은 신토가 지닌 자연 경외의 정신과 일정한 공명점을 가진다. 그러나 유영모의 사상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에 대한 경외를 모든 인간과 생명을 향한 사랑으로 확장하려 했다.
 
일부 문화사 연구자들은 일본의 큐슈(九州)가 '아홉 개의 주(州)'라는 상징성을 지니며, 동아시아 전통에서 숫자 아홉이 완성과 충만을 의미하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고유 사상인 천부경의 81자, 곧 9×9라는 상징성과 문화사적 연관성을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러한 연결은 현재 역사학이나 종교학의 정설이라기보다 상징적·문화사적 해석의 영역이라는 점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문화가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수(數)의 상징 속에 담아 표현하려 했다는 공통된 사유 방식이다.
 
신토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문제이다. 인간은 과연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대가로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라는 거대한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제는 성장만이 아니라 공존의 철학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 점에서 일본 신토의 자연 경외 정신은 현대 문명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물론 신토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또한 근대 국가신토가 보여 준 역사적 왜곡은 분명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자연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며, 삶의 중요한 순간을 감사와 절제로 기념하는 문화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충분히 성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 역시 오랜 세월 산신 신앙, 당산제, 성황제, 두레와 품앗이 같은 공동체 문화를 이어 왔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많은 전통이 약해졌지만, 그 정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전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명과 공동체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일본 신토 3부작이 말하고자 한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자연은 인간이 지배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이라는 점이다. 둘째, 공동체는 경쟁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의례와 기억, 감사와 나눔을 통해 지속된다는 점이다. 셋째, 어떤 영성도 권력의 도구가 되는 순간 본래의 순수성을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일본 신토의 빛은 배우고, 그림자는 경계해야 한다. 자연을 사랑하되 우상화하지 말고, 전통을 존중하되 배타적 국가주의로 흐르지 말며, 공동체를 지키되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동아시아 문명이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지혜이며, 오늘날 인류가 다시 새겨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진리는 자연을 향한 경외에서 시작되고, 정의는 공동체를 향한 책임에서 자라며, 자유는 권력이 아니라 양심과 생명을 존중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일본 신토의 긴 여정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이 오래된 사실을 다시 일깨워 준다. 이것이 「진정자의 아시아의 영성」 일본 신토 3부작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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