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0일 토요일 아침, 경기 의정부 도심 한복판에서 검은 연기가 솟았다. 한 도시형생활주택 1층에서 시작된 불은 위층으로 번졌고, 다시 옆 건물로 옮겨붙었다. 주민들은 옥상으로 쫓겨 올라가 소방헬기에 구조됐고, 당시 피해 건물 일대 거주민 170명 가운데 130명 가까이가 죽거나 다쳤다.
발화는 1층에 세워둔 오토바이 합선이었다. 그러나 피해를 이만큼 키운 것은 건물의 구조였다. 상업지역이라는 이유로 일조권 이격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고,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은 불길이 옆 건물로 옮겨붙는 통로가 됐다.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그해 10월, 국토부는 상업지역 건축물의 이격거리와 외벽 마감 기준을 다시 조였다. 빠른 공급을 위해 풀었던 빗장을, 참사 뒤에야 다시 잠근 셈이다.
같은 해 12월, 국토부는 또 하나의 1인 가구 주거 빗장을 조였다. 이번에는 고시원이었다. 방마다 욕조와 취사시설을 두는 것을 금지하고, 고시원을 방별로 쪼개 분양하는 것도 막았다. 명분은 분명했다. ‘고시원이 편법으로 독립 주거시설로 이용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비주거인 고시원이 사실상 원룸으로 변질되면, 채광·환기·면적 같은 주거 최소 기준을 우회한 채 사람을 욱여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년이 지났다. 그 두 빗장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같은 부처, 거꾸로 가는 처방
5월 26일, 국토부가 비아파트 11만호 공급대책을 내놨다. 도시형생활주택의 세대수·층수 제한을 풀고, 주차장 기준을 낮추고, 일조권 이격거리도 다시 완화한다. 며칠 뒤, 정부가 고시원 욕조 금지 폐지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1년 전 도입된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의 핵심 항목이다. 학습시설 의무도 함께 손본다고 한다. 고시원의 법적 정의는 ‘구획된 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을 제공하는 형태’다. 학습 요건이 약해지면 고시원은 ‘공부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라는 법적 성격에서 더 멀어지고, 사실상 원룸형 거처에 가까워진다. 11년 전 막으려던 바로 그 변질이다.
두 사안의 이름은 다르다. 한쪽은 공급 확대, 한쪽은 1인 가구 월세난 완화다. 그러나 발상은 하나다. 정상 주거가 부족할 때마다 정부의 답은 비주거 쪽으로 기운다. 아파트 공급이 막히면 비아파트로, 임대료가 비싸면 비주거 시설로. 정부가 내놓는 1인 가구의 답이 매번 정상 주거의 바깥, 더 좁고, 더 약하고, 기준이 더 낮은 거처에서 나온다.
자기가 그은 최저선을 자기가 거꾸로 간다
정부 명분의 핵심은 ‘월세난 완화’다. 그런데 욕조를 풀면 정말 월세가 내려가나. 그보다 먼저, 11년 전 정부가 왜 욕조를 금지했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당시 금지된 시설은 욕조만이 아니었다. 방별 취사시설, 방별 발코니가 함께 묶여 금지됐다. 셋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그 방을 ‘독립 생활이 가능한 단위’로 만드는 시설이다. 위생, 식생활, 외기 접촉. 이 셋이 한 방에 들어가면 그 방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단칸 살림집이 된다. 그러나 고시원은 비주거다. 채광·환기·면적·소음 같은 주거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욕조를 풀어 방을 독립 생활 단위로 만드는 순간, 그 방에 사는 사람은 법적으로는 비주거에 살면서 실질적으로는 주거하는 처지가 된다. 주거의 모든 부담을 비주거 신분 그대로 떠안는다. 흔히 알려진 고시원 방의 크기는 2~3평, 가장 좁은 곳은 한 평 남짓이다. 거기에 욕조까지 들어가면 그 안에서의 생활이 어떤 모양일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최저주거기준, 존재의 이유
주거의 최저선을 정한 주체가 바로 국토부다. 주거기본법은 국토교통부장관이 국민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 수준을 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 법에 따라 국토부가 직접 만든 것이 최저주거기준이다. 1인 가구의 최저 면적은 14㎡, 약 4.2평이다. 침실 한 칸과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시설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 기준조차 일본(25㎡), 영국(38㎡)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라 좁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국토부 스스로도 올해 초 이 기준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손보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같은 부처가, 같은 시기에, 정반대의 길도 함께 간다는 점이다. 최저주거기준이 너무 좁으니 넓히겠다고 한 손으로 말하면서, 그 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비주거 거처의 빗장을 다른 손으로 푼다. 14㎡도 좁다고 손보는 부처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두 평짜리 방의 정체성을 더 흐리는 길로 간다. 국토부가 원하는 답이 한 평짜리 방의 확장일 수는 없다.
그러면 월세는 어떻게 되나. 욕조는 월세를 낮추는 장치라기보다, 시설 고급화의 명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같은 자리에 욕조 달린 고시원이 들어서면 시설비가 오르고, 임대료도 함께 오른다. 보증금 부담이 적어 1인 가구의 마지막 선택지였던 저가 고시원이 줄고, 50만원대 ‘프리미엄 고시원’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일 수 있다. 가장 싼 주거형태가 비싸지는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
통계는 정부 명분과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지난해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비중은 3.8%로 전년보다 늘었다. 청년 가구는 8.2%로 더 가파르게 올랐다. 그중 고시원 같은 주택 이외 거처에 사는 청년 비율이 17.9%에 이른다. 국토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거주가 늘고 있다. 그런데 국토부의 답은 그 기준 바깥의 거처를 더 합법화하는 방향이다. 월세난이 심하다고 자기가 만든 최저선을 자기가 깨는 일은, 월세난 해법이 아니다.
11년 전 그 규제는 왜 있었나
의정부 화재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참사를 정책 비판의 장식으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빠른 공급을 위해 푼 규제가 어떤 비용을 남겼는지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시원도 마찬가지다. 2008년 강남과 용인의 고시원 화재로 각각 6명과 7명이 숨졌다. 2016년에도 7명, 2018년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7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7명, 부상자 11명을 낸 국일고시원 화재 뒤에야 정부는 한 번 더 빗장을 조였다. 2020년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해 간이스프링클러를 의무화하고 노후 고시원의 기준을 강화했다. 그 결과 이듬해 고시원 화재가 절반으로 줄었다. 적어도 규제 강화가 현장 안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다.
이번에 검토 중인 욕조 금지 완화는 안전 항목이 아니다. 그 점은 분명히 해둬야 공정하다. 의정부 사안에서 푸는 일조권 이격도 스프링클러나 마감재 같은 안전 기준은 아니다. 정부는 그 점을 들어 ‘안전을 푸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안이 향하는 곳은 같다. 한쪽은 ‘안전의 최저선’, 한쪽은 ‘주거 기본권의 최저선’이다. 둘 다 국토부가 명확한 이유로 그어놓은 선이다. 의정부에서 사람이 죽었고, 종로에서도 사람이 죽었다. 그 선들은 왜 있었는가. 좁은 틈이 다시 불길의 통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비주거가 주거로 변질되어 사람을 낮은 기준의 거처로 밀어넣지 않게 하기 위해, 빠른 공급의 대가가 다시 참사로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유는 사라졌나
그렇다면 11년 전 그 규제를 만든 이유는 사라졌나. 정부 산하 기관의 자료가 정확히 이 점을 보여준다. 국토연구원이 2008년과 2018년을 비교한 분석에 따르면, 주거면적 하위 20% 가구 중 고시원 등 주택이외 거처에 사는 비중은 0.7%에서 9.4%로 늘었다. 10년 사이 13배 증가다. 빗장이 막으려 했던 그 풍경, 곧 비주거가 사실상 주거가 되는 모습이 그 사이 더 커졌다는 뜻이다.
1인 가구 자체도 크게 늘었다. 2015년 1인 가구 비중은 27% 안팎이었지만, 2023년에는 782만9000가구, 전체의 35.5%까지 늘었다. 11년 전 빗장이 보호하려던 사람은 줄어든 게 아니라 크게 늘었다. 주택 바깥으로 밀리는 흐름도 줄지 않았다. 2024년 일반가구 중 오피스텔·고시원·고시텔 등 주택 이외 거처에 사는 비중은 6.0%로 전년보다 늘었다. 11년 전 우려가 작아진 게 아니다.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낮은 기준의 거처 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래서, 어디서 답을 찾을 것인가
답의 출발은 정부 발표자료 안에 이미 있다. 5·26 대책에서 국토부가 가장 무게를 실은 항목은 사실 규제 완화가 아니라 금융이다. 비아파트 전용 특례 PF보증과 분양보증을 새로 만들었고, 사업자대출 한도를 7000만원에서 1억원 안팎으로 올렸다. 비주거를 정상 주거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자에게는 기금 대출과 모기지보증까지 새로 뒀다. 정부 스스로 비아파트 부진의 원인을 PF와 공사비, 분양성 저하로 적었으니 처방의 무게가 거기로 향한 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만 더 가면 된다. 일조권 이격거리를 풀어 좁은 틈을 다시 만드는 대신, PF·분양보증을 더 확실히 키워 사업이 실제로 돌게 하는 길이다. 욕조 금지를 풀어 비주거를 원룸형 거처로 둔갑시키는 대신, 비주거를 정상 주거로 바꾸는 리모델링 지원을 더 키우는 길이다. 두 길 모두 정부가 이번 발표자료에 이미 그어놓은 방향의 연장이다.
그 끝까지 가면 정상 주거 안에서 1인 가구의 답을 만드는 길과 만난다. LH와 SH의 청년 매입임대, 청년 전세임대, 행복주택, 청년안심주택은 모두 정상 주거 기준을 갖추고 시세 이하로 공급되는 채널이다. 문제는 채널이 없는 게 아니라 물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월세난을 키운 핵심 요인도 가장 싼 거처의 부족이 아니라, 전세에서 밀려난 임차인이 갈 곳을 잃은 데 있다. 비주거의 빗장을 푸는 일은 그 어느 쪽의 답도 되지 못한다.
정부 발표자료 안에는 답에 가까운 길도 들어 있다. 문제는 다른 한쪽에서 자기가 그은 최저선들을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14㎡도 좁다고 손보는 부처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거처를 합법화하는 길로 동시에 가는 한, 1인 가구 주거의 답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토부는 자기가 그은 선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의정부 화재 뒤 조였던 선도, 종로 고시원 화재 뒤 조였던 선도, 그리고 주거기본법에 자기 손으로 박아놓은 그 14㎡의 선까지. 11년 전 그 규제를 만든 이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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