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침묵'으로 보내는 '진짜 어른'의 응원법

사춘기를 정통으로 맞은 10대의 자녀에게 매일 꼬박꼬박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너의 부모가 이토록 잔소리를 성실하게 해대는 이유를 이렇게 들곤 한다.
 
“나중에 네가 훌륭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당사자는 과연 훌륭한 어른이 맞는가. 아니, 훌륭하진 않더라도 우리가 사춘기였을 시절 막연히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을 지금 내가 갖고 있는가.
 
사진AI 생성 이미지
[사진=AI 생성 이미지]
 
세상의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달아 내게 닥친 모든 문제에 지혜가 넘쳐 현명한 판단을 하고, 내일 집 근처 어디에 폭탄이 떨어져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인간 관계에 어려움이 없어 확고한 사적 네트워크를 갖고 그 안에서 안온하게 먹고 사는 삶.

10대 시절 추상적으로 머리 속에 들어 있던 어른의 이미지는 이처럼 ‘안정’된 그 어떤 상태였다. 어느 것도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던 사춘기 아이는, 모든 게 다 결정된 상태 안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처럼 어른을 봤다. 어른들은 부럽고도 얄밉고,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으스댄다고 생각했다.
 

너무 다가가면 아픈 일이 생겼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책 '나의 친애하는 적' 중에서)

 
마흔이 다 된 작가는 어른이 되고 난 후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토로했다. ‘아프고 외로운’ 상태. 여전히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고 그것에 무뎌지도록 애를 쓰고 있는 치열한 상태. 책을 쓴 이 작가만의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어른의 나이를 먹은 대부분의 인간이 그럴 것이다.

작가는 또 이 책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 도움을 주지 않은 아버지를 훗날 만나 그 이유를 묻는다. 아버지는 “후회한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듣고 ‘안도’했던 작가에게 아버지는 결국 해서는 안되는 말을 덧붙인다.
 

나는 정말 태아처럼 안도했다. 아버지가 그래도 네가 그렇게 어렵게 산 덕분에 독립심이 강한 어른이 되어 혼자 힘으로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의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아버지를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 글을 읽으며 대체 어른이랍시고 자신보다 더 아랫세대에게 떠들어대는 말들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까를 곱씹어보게 된다. 아버지의 말인즉슨 훌륭하게 자란 아들이 기특하다는 뜻일텐데 왜 저 말들에 당사자도 아닌 독자들의 가슴에도 비수가 꽂히는가.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나면 누구나 꼽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주인(서수빈)은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에 마침내 내면 깊이 꾹꾹 눌러놨던 감정을 터뜨린다. 자동세차장 통로를 천천히 지나는 차 안에서 주인이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동안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 오롯이 그 칼 같은 딸의 말들을 다 받아내고 있다.
 
영화 세계의 주인 한 장면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영화 '세계의 주인' 한 장면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이 장면은 주인 역을 맡은 서수빈의 폭풍 같은 연기도 놀랍지만, 엄마 역을 맡은 장혜진 배우의 웅크리고 있는 어깨가 더 잔상으로 남는다. 저 칼날 같은 말들을 다 받아내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진 딸에게 힘내라는 위로의 말들을 따뜻하게 건네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진짜 어른이 뭘까라는 의문을 던져놓고 ‘세계의 주인’ 속 엄마가 떠오른 건 그의 침묵이 위대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내 경우는 어떠했나라는 자성이 따른다. 나는 내 할 말을 참지 못하고 떠들어버리는 그런 시시한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곧바로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한 장면이 이어서 떠오른다. 박동훈(이선균)이 이지안(아이유)을 집까지 데려다 주는 길에 술집에 모여 있던 동훈의 형제와 친구들을 만난다. 이 어른 무리들은 우르르 나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지안을 집까지 호위하듯 함께 데려다 준다. 시시껄렁하고 썰렁한 어른들의 농담이 난무하는 와중에 영혼 없이 걷던 지안에게 정희(오나라)가 민망하다는 듯 한마디 한다.
 
정희 : 우리도 아가씨 같은 20대가 있었어요. 이렇게 나이 들 생각하니까 끔찍하죠?
지안 : 전 빨리 그 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덜 힘들 거잖아요.
 
지친 지안을 안쓰럽게 돌아보는 어른들. 농담 따먹으며 수다를 떨던 어른들 사이에 일순간 정적이 인다. 애틋한 표정으로 지안의 팔짱을 끼는 정희. 이들은 생각이 많아지고 할 말도 많지만 결국 지안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안의 집까지 간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한 장면 사진tvNDENT 유튜브 공식 영상 캡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한 장면 [사진=tvNDENT 유튜브 공식 영상 캡처]

각자 아픔과 상처와 실패를 겪고 그 무게를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버텨 살아내는 어른들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지도 않고 언제나 그렇듯 인생의 풍파를 겪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20대의 어린 지안에게 보내는 그들의 ‘침묵’은 이보다 더한 위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벅찬 응원이었다.
 
냉소와 무표정으로 빈틈없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지안은 돌아서는 이 어른들에게 잠시만 무장해제 된다. 지안은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자, 다시 자성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나는 기어코 할 말을 해버리는 시시한 어른인가, 상대의 아픔에 묵묵히 공감하는 눈치 있는 어른인가. 내가 현재 맡고 있는 어른의 역할을 나는 잘 해내고 있나.
 

가장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겨우 떠올린 건 상대를 존경할 만한 ‘적장’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의 친애하는 적’은 이렇게 해서 나온 말일 거다. 작가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 적절한 거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적절한 거리감은 상대의 상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할 것이고, 또 너무 무관심해지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상대의 ‘세계’를 인정하는 일이라고 다시 얘기하고 싶다.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사람이 구축해놓은 각자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 각자의 ‘세계’는 사람이 제각각이듯이 하나같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세계의 유일함을 인정할 것.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는 타인의 세계를 따로 떼놓고 내 세계와 다를 것임을 항상 염두하려고 작정한다. 이 작정을 늙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마침내 ‘진짜 어른’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자투리 리뷰 :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주요한 감상을 빼고 난 후 남겨진 또다른 감상의 자투리를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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