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칼로 핏덩이의 탯줄을 잘랐다. “앞치마에 묻은 피는 웬 거요?” “생선 피예요.” 그녀는 일어나서 칼을 던져 버리고 씻기 위해 걸어갔다. 그 순간 예기치 않게도 생선 도마 밑에서 새 생명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생선 내장과 잘린 생선 대가리들 사이에서 온통 파리 떼에 뒤덮여 있는 갓난아기를 발견해 끄집어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주인공 그루누이는 이렇게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악취가 심하다는 어느 식료품 시장의 죽은 생선들 사이에서 말이다.
소설 ‘향수’는 프랑스 전역의 온갖 악취를 꽤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요강에 얼얼하게 밴 오줌 냄새, 충치로 구취가 심한 사람의 썩은 양파 즙 냄새, 나이 든 사람에게 나는 오래된 치즈와 상한 우유 냄새, 심지어 왕비에게 나는 늙은 염소의 냄새.
‘향수’는 완벽한 향수를 위한 그루누이의 집요한 여정을 담고 있어 아름답고 세밀한 ‘향기’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그렇지만 도입부의 ‘악취’를 묘사한 부분을 읽노라면 실제로 생선 썩은 냄새가 맡아지는 것처럼, 그 기억이 강렬하다.
이렇게 글자를 읽었으나 마치 영상을 본 것처럼, 아니면 그 현장에 직접 가봤던 것처럼 독자의 감각을 깨우는 글이 있다. 아무리 ‘쇼츠’에 길들여져 짧고 자극적인 영상이 아니면 그 어떤 정보도 머리에 잘 입력이 안되는 세태라고는 하지만 ‘쇼츠’의 자극을 뛰어넘는 글귀가 엄연히 존재한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은 배경이 되는 ‘세령호’가 또 하나의 주인공일만큼 공간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는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 무너진 돌담, 덜렁거리는 지붕널, 철근이 드러난 벽, 부러진 문설주, 흩어진 기왓장, 쓰러져 썩어가는 나무들, 바퀴 빠진 유모차 하나, 양철뚜껑이 덮인 우물.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세상이 이런 모습일까. 그의 아틀란티스는 황폐하면서도 아름다웠다.
‘7년의 밤’에서 등장인물 승환은 민간잠수사다. 모종의 사건으로 ‘세령마을’이 한 순간에 수몰돼 수십명의 마을 사람들이 죽었다. 승환은 이렇게 수몰된 세령마을을 보려고 밤마다 잠수를 한다. 위 글귀는 그 깊은 밤 물에 잠긴 세령마을을 유영하는 승환의 시선을 묘사한 것이다.
수중전등에 의지해 세령마을을 위에서 관찰하는 승환은 마치 이 세상을 소유한 신이 된 듯한 느낌을 가졌을까. 마치 마을 위 하늘을 나는 듯한 승환은 마을에 아직도 남아 있는 삶의 흔적을 구석구석 훑으며 벅차올랐을 것이다. 그의 기분이 필자에게도 그대로 전이됐을 정도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간이다.
‘7년의 밤’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가장 기대했던 승환의 잠수 장면은 책을 읽었을 때만큼 인상적이지 못했다. 영화화를 목 빠지게 기다렸던 소설의 팬들은 영화를 본 후 알게 됐다. 텍스트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텍스트가 영상을 보기 좋게 이겨버린 케이스다.
머리가 길쭉하게 앞으로 나와 있고, 한 번에 어디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두 눈이 둥그렇게 불거져 있다. 보통 개미들의 배보다 열 배나 큰 여왕의 배에 연속적으로 경련이 일어나더니, 여왕이 여리디 여린 알 여덟 개를 낳는다. 아주 동그랗고 끈적끈적한 알이 모태를 빠져나오자...
눈치챘겠지만 이 구절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여왕개미인 ‘벨로키우키우니’의 외양을 묘사한 부분이다. 꽤 오래 전 어린 시절 이 소설을 읽으며 필자는 개미들의 제국이 실제로 그러할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그럴 만큼 개미들의 세상을 다룬 작가의 성실함이 빈틈이 없다. ‘벨로키우키우니’ 치하의 개미 제국에 직접 들어가 견학을 하는 듯하다. 그 안에서 나름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는 몇몇의 개미 캐릭터들을 따라가다보면, 실제 제국의 흥망을 겪는 백성의 애환이 느껴질 정도다.
‘벨로키우키우니’가 어렸을 당시 인간의 손가락을 만난 그 시절 여왕개미의 경험담을 회상하는 장면 또한 기가 막히다.
그 여왕개미는 자기가 보낸 원정대 가운데 몇몇이 ‘장밋빛 공’의 세례를 받고 1백 마리 이상이 사망했다고 이야기했다. 증언에 따르면 장밋빛 공들은 언제나 다섯씩 떼를 지어 다니는 듯하다고 했다. 장밋빛 공은 꽤 냄새가 독한 물렁물렁한 것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위턱으로 뚫고 들어가 보니 하얗고 딱딱한 줄기가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그 구절을 읽는 동안 독자는, 속절없이 개미의 입장이 되어 인간의 손가락을 보게 된다. 인간의 입장에서 ‘초미시적’인 세상을 이토록 실감나게 묘사한 작가의 성의는 필자를 순식간에 차원이 다른 세계로 순간이동시켰다. 그 당시 필자가 봤던 개미집 속 멋들어진 제국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또한 테드 창의 단편소설 ‘바빌론의 탑’은 땅과 하늘을 잇는 바빌론의 탑을 오르는 광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이 땅에서부터 꼭대기까지 탑을 오르는 여정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된 이 이야기는, 필자에게 고소공포증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곁눈질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릎에서 힘이 쑥 빠졌다. 여기서 추락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땅에 떨어지기 전 기도를 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중략) 광부들은 위롤 올려다보든 아래를 내려다보든 탑이 똑같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는 행위는 이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을 읽으며 ‘고소공포증’, 그러니까 실제로 오금이 저리는 경이로운 경험을 한다. 텍스트를 읽으며 영상을 보는 듯한 시각적 충족을 넘어 오감이 다 반응한 것이다. 물리적으로 신체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텍스트의 경험은, 극장에서 4D 영상을 보는 것 못지 않게 작가의 ‘글’이 그토록 위대함을 깨닫게 했다.
그 당시 필자가 활자를 통해 보고 느낀 세상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으면서 일상 속에서 사물을 색다르게 보는 ‘생각근육’이 되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보가 넘치지만 판단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다. 이럴 때일수록 정보를 거르고 해석하는 ‘생각근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러 분야에서 강조하고 있다.
같은 정보를 보고도 어떤 이는 핵심을 짚지만 어떤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그 차이는 정보·지식의 차이라기 보다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쇼츠’에 길들여진 우리의 근육 빠진 뇌에 잠시나마 신선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도 텍스트의 위력을 느낄 시간을 가져보시길.
* 자투리 리뷰 :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주요한 감상을 빼고 난 후 남겨진 또다른 감상의 자투리를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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