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왜 회사를 향해 극단적인 말을 할까. 외부인의 눈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삼성전자라는 이름, 높은 처우,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 지위를 떠올리면 "대체 뭐가 부족하냐"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조직 갈등은 객관적인 조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은 자신이 기여한 만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리고 그 기준이 불투명하다고 여길 때 더 크게 분노한다. 문제는 돈이지만, 감정은 돈 바깥에서 터진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지도부의 강경 발언도 그렇다. 이송이 부위원장은 내부 대화방에서 "회사를 없애버리는 게 맞다", "분사도 각오한다"는 말을 쏟아냈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제도 투명화와 상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고, 정부는 파업 시 긴급조정을 포함한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송이 부위원장의 발언은 문자 그대로만 보면 이상한 말이다. 회사가 사라지면 노조의 기반도, 조합원의 일터도 무너진다. 심리적으로 보면 극단적인 언어는 실제 목표라기보단 감정의 크기를 알려주는 언어다. '그 정도로 분노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이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 분노하게 됐을까?
첫 번째 심리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좋은 조건에 있어도 자신이 비교 기준보다 부당하게 적게 받는다고 느끼면 강한 분노를 경험한다. 상대적 박탈감 연구에서도 핵심은 실제 결핍이 아니라 '공정하지 않게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인식이며, 이 감각은 집단적 분노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은 이 분노를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도 회사라면 더 투명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성과에 걸맞은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기대치를 높인다.
두 번째는 절차적 공정성의 훼손감이다. 구성원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과정이 투명하고, 설명 가능하며,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고 느끼면 어느 정도 수용한다. 성과급 갈등이 민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마를 받느냐'만이 아니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왜 그렇게 정했느냐'가 납득되지 않을 때 분노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의 문제가 된다.
세 번째는 심리적 계약 위반감이다. 회사와 직원 사이에는 계약서에 적히지 않은 암묵적 기대가 있다. '내가 헌신하면 회사도 나를 존중할 것', '성과가 나면 합당하게 돌려줄 것', '최소한 기준은 설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심리적 계약 위반은 조직이 약속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주관적 경험으로, 관련 연구들은 이것이 배신감, 분노, 실망 같은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갈등은 임금 협상이 아니라 '우리를 속였느냐'의 문제로 바뀐다.
여기서 울분이 생긴다. 울분은 화와 다르다. 화는 현재 벌어진 일에 대한 반응이지만, 울분은 '오래 쌓였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말은 강해지고, "더 달라"가 아니라 "이번에 밀리면 끝이다"가 된다. 상대가 제시한 조건이 나아져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갈등이 숫자를 넘어 존중, 체면, 복수감의 영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도덕화된 분노다. 이익 갈등이 어느 순간 '옳고 그름'의 싸움으로 바뀌면 타협은 훨씬 어려워진다. 도덕적 확신에 관한 심리학 연구는 어떤 태도가 개인의 핵심 도덕 신념과 연결될수록 반대자에 대한 관용이 줄고, 갈등 해결이 어려워지며, 때로는 강경한 수단까지 정당화하기 쉬워진다고 설명한다. "돈 보고 하는 게 아니다"라는 발언은 갈등이 이미 '돈 이상의 문제'가 됐다는 선언과 비슷하다.
다섯 번째는 집단극화다. 강한 불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닫힌 대화방 안에서 계속 서로의 분노를 확인하면, 의견은 중간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집단극화 연구는 집단 토론 뒤 구성원들의 태도와 결정이 기존 방향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내부에서는 강한 말이 결속의 언어가 된다. '제대로 화난 것을 보여주겠다'는 식의 표현은 외부에는 파괴적 언어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지도부가 물러서지 않는다'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여섯 번째는 심리적 반발이다. 정부가 긴급조정 가능성을 언급하면 노조 입장에서는 "대화하라"는 메시지보다 "파업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먼저 들릴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권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그 자유를 회복하려는 동기가 강해진다. 이른바 심리적 반발이다. 그래서 외부 압박이 강해질수록 일부 지도부는 오히려 더 센 언어를 택할 수 있다. "굴하지 않겠다", "감방도 각오한다"는 말은 현실적 손익 계산이라기보다 "우리는 통제당하지 않는다"는 반발의 언어다.
이런 상황에서 ZOPA(Zone of Possible Agreement), 즉 합의 가능 영역을 찾기는 어렵다. 표면의 쟁점은 성과급 산식, 상한, 파업 일정이지만 테이블 아래에는 전혀 다른 것이 놓여 있다. "누가 먼저 꺾였는가", "누가 조합원 앞에서 체면을 잃었는가", "누가 회사에 졌다는 평가를 받는가"가 숫자보다 더 중요해진다. 이때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일은 합의가 아니라 굴복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이런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가장 나쁜 방식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것이다. '배부른 소리', '비현실적 요구', '회사를 망치려는 노조'라는 말은 사실 여부와 별개로 방어심을 키운다. 협상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으면, 그는 요구를 조정하는 게 아니라 벽을 등지고 싸울 명분을 찾는다.
협상에서 중요한 건 상대가 물러서도 패배처럼 보이지 않는 출구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예로 "성과급 산식의 전면 수용은 어렵다"가 아니라 "산식 공개 범위와 검증 절차를 만들겠다", "상한 폐지는 어렵지만 재검토 기구와 일정은 명문화하겠다"처럼 감정의 요구를 제도적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강경한 지도부가 조합원에게 "우리가 얻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체면을 살릴 수 있는 합의안을 만들어야 협상이 가능해진다.
사람과 요구도 분리해야 한다. 강경 발언을 한 사람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규정하면 협상은 끝난다. '그 발언 뒤에 있는 불만은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 단 이해와 수용은 다르다. 왜 극단적인 발언이 나왔는지 분석하는 것과, 그 발언을 받아들이는 건 별개다. 그래서 파괴적 언어, 위협적 표현, 비조합원 압박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안다.
사람은 항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만 싸우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패배감을 피하기 위해 싸운다. 협상이 가장 어려워지는 순간은 이때다. 요구가 자존심, 배신감, 명분의 문제가 되는 순간 합의안은 더 좋은 조건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패배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는 얼굴까지 포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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