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세계 1위 초강대국 미국과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의 정상회담은 언제나 세계 질서의 향방을 흔드는 사건이지만, 이번 회담은 그 무게와 상징성이 유난히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인공지능(AI) 패권 경쟁, 반도체 전쟁, 대만 문제, 희토류 통제, 공급망 재편, 달러의 패권과 위안화의 국제화까지 한꺼번에 겹쳐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단순한 양국 외교행사가 아니다. 사실상 “21세기 중반 세계 질서를 누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둘러싼 거대한 탐색전이다. 미국은 기존 패권 질서를 유지하려 하고, 중국은 새로운 다극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그 사이에서 세계는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두 지도자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양 정상은 이날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약 2시간 넘게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회담 직후 두 정상은 중국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던 성지인 천단공원(톈탄공원)으로 이동했다. 저녁에는 국빈 만찬도 이어졌다.
중국이 이번 회담 장소 가운데 하나로 천단공원을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천단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중국 문명의 정통성과 천명(天命)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명·청 시대 황제들이 “하늘의 명령”을 확인하던 장소이며, 중국이 스스로를 단순한 국민국가가 아니라 수천 년 문명을 이어온 문명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비가 내리는 천단공원의 돌길을 함께 걷는 트럼프와 시진핑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훌륭하다”고 짧게 말했고, 평소와 달리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 짧은 침묵 속에는 지금 미국이 처한 복합적 현실이 담겨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과거처럼 모든 전선을 동시에 장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고, 중동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는 재정적자와 고금리, 제조업 공동화, 사회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는 중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 없이는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흔들리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중국 역시 쉽지 않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지방정부 부채, 청년실업, 내수 부진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이며, 희토류·배터리·태양광·전기차 공급망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문명국가”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보여주려 했다.
천단공원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은 250년 남짓한 젊은 제국이다. 반면 중국은 스스로를 5000년 문명의 계승자로 인식한다.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천단으로 초대한 것은 단순한 의전이 아니라 “중국은 잠시 존재하는 국가가 아니라 긴 역사와 철학, 질서를 가진 문명”이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하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크게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관세와 무역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농민과 제조업 노동자의 표심을 의식해 중국산 수입 문제와 함께 미국산 대두·곡물·육류 구매 확대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역시 경기 둔화 속에서 미국 시장 안정이 필요하다. 결국 양국은 충돌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구조다.
둘째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문제다. 미국은 첨단 인공지능 반도체와 장비 수출을 제한하며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역시 화웨이를 중심으로 빠르게 국산화에 나서고 있다. 이 싸움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미래 문명의 운영체제를 누가 장악하느냐의 문제다.
셋째는 희토류와 공급망 문제다. 최근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전략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전기차와 반도체, 방산산업의 핵심 원료를 중국이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중국 의존 구조를 완전히 끊기는 어렵다.
넷째는 대만 문제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민감했지만 가장 조심스럽게 다뤄진 의제다.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를 잘못 다루면 양국 충돌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역시 대만을 쉽게 포기할 수 없지만, 동시에 중국과의 정면 충돌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대만해협은 앞으로 세계 경제의 최대 지정학적 위험지대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는 중동 문제다.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이 확대되면서 미국은 중국의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화해를 중재했던 중국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외교적 영향력을 과시하려 하고 있다.
여섯째는 달러와 위안화의 문제다. 이번 회담의 물밑에는 국제 금융질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도 깔려 있다.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 하고,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확대하려 한다. 에너지 결제와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이 커질 경우 세계 금융질서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충돌 속에서도 대화는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견제하지만 동시에 서로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관계다. 미국 없는 중국도 어렵고, 중국 없는 미국도 어렵다. 세계 경제 역시 두 나라의 완전한 결별을 감당하기 힘들다.
특히 동북아 정세는 이번 회담 이후 새로운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고, 미국은 일본·한국과의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일본은 군사력 증강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며, 북한 역시 미중 관계 변화를 면밀히 계산할 것이다.
결국 동북아는 미중 경쟁의 최전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냉전 시대가 미국과 소련의 군사 대결 중심이었다면, 앞으로의 신냉전은 인공지능·반도체·에너지·해양·공급망이 결합된 복합 패권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봐야 할까. 대한민국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봐야 한다. 미국은 우리의 핵심 안보 동맹국이며, 중국은 최대 교역국 가운데 하나다. 어느 한쪽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단순히 줄을 서는 국가가 아니라, 기술·산업·외교 역량을 바탕으로 전략적 균형을 만들어 가야 한다.
특히 반도체, 인공지능, 조선, 원전, 배터리, 방산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중간국가”로 축소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질서 재편 속에서 실질적 전략국가로 인식하는 것이다.
천단공원의 비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 질서가 새로운 계절로 넘어가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빗길 위에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문명의 시간으로 같은 미래를 계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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