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코스피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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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는 모두가 풍요롭게 살아가며,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삶을 누린다."

16세기 영국 법률가이자 저술가, 정치인으로 유명한 토머스 모어가 소설 '유토피아'에서 그려낸 사회는 결핍과 불평등이 사라진 세계였다. 모두가 필요한 만큼을 누리고 경쟁 대신 질서가, 탐욕 대신 이성이 작동하는 곳. 인간이 오랫동안 꿈꿔온 '완벽한 사회'의 원형이다.

요즘 금융시장을 바라보면 묘하게 유토피아의 그림자가 겹쳐 보인다. 코스피가 8000 고지를 눈앞에 두고 연초 대비 85% 올랐는데 연말엔 1만 시대가 열릴 것이란 증권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수억 원대 수익 인증글은 연일 재생산되면서 마치 모두가 부를 공유하는 시대가 열린 것처럼 느껴진다.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상승해왔고, 투자 수단은 다양해졌으며, 정보 접근성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과거 일부 계층에게만 열려 있던 기회가 대중에게 확산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조금만 비켜서 보면 다른 풍경이 드러난다. 

상승장은 늘 시장 참여자의 서사로 채워진다. 시장 밖에 있던 이들 혹은 뒤늦게 진입한 이들의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을 이미 보유한 이들에게 자산가격 상승은 부의 증식이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진입 문턱만 높아졌을 뿐이다.

주식과 코인 시장에서의 수익도 평균이 아니라 분포의 문제다. 소수는 큰 수익을 거두지만 상당수는 변동성 속에서 손실을 경험한다. 실제로 전날 코스피 835개 종목 중 상승을 기록한 종목은 147개인 반면 하락 종목은 738개로 5배를 넘는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감정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다. 남들이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일수록 시장에 참여하지 않은 선택은 점점 더 '잘못된 결정'처럼 느껴진다. 투자 판단이 냉정한 분석이 아니라 소외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좌우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고점 추격과 과도한 레버리지 같은 위험한 선택이 반복된다.

시장이 만들어낸 '모두가 돈을 번다'는 유토피아적 환상은 오히려 소외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자산 상승의 과실(果實)을 공유하지 못한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심리 문제를 넘어 소비 위축과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금융시장이 확장될수록 기회가 늘어나는 동시에 격차가 확대되는 구조인 셈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유토피아의 실현이 아니라 유토피아에 대한 끊임없는 오해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시장은 모두에게 동일한 결과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 자본, 시점에 따라 결과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승장의 일부 장면만을 확대해 마치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세계가 도래한 것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이쯤 돼서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어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 'ou'(없다)에 '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모두가 돈을 버는 세상,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시장.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이다. 오히려 누군가의 수익 뒤에는 다른 이들의 기회상실공포가 쌓여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시장의 변동성보다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일지 모른다. 유토피아를 현실로 믿는 순간 사람들은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냉정한 판단을 놓치기 쉽다.

유토피아는 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가까이 가면 신기루가 돼 사라지게 된다. 이름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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