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박탈감의 무게...'기름값·통신요금'과 '6억 성과급'

김성현 AI부 차장 사진아주경제DB
김성현 AI부 차장 [사진=아주경제DB]


2011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제유가와 국내 기름값 격차를 거론하며 한마디를 던졌다. "기름값이 묘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유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정부는 주유소 현장 점검에 나섰고, 언론은 정유사 이익을 집중 조명했다. 서민 지갑을 쥐어짜는 기름값의 주범을 찾는 여론몰이가 시작됐다. 

15년이 지났다. 이란 전쟁이 불러온 국제유가 급등 속에 이재명 대통령이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주유소 최고가격 지정을 지시했다. "아침·점심·저녁 가격이 다르고 하루에 리터당 200원 가까이 올린 곳도 있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배경에는 일부 부도덕한 주유소들의 가격 장난질이 있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주유소에 시작된 유가 점검은 정유사로 번지는 분위기다. 이란 발 유가상승으로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의 1분기 영업이익은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에서는 이미 정유사를 상대로 이익을 토해내라는 압력을 준비하는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제유가가 급등하면 이미 확보해 둔 재고 원유로 만든 석유제품의 판매 단가가 뛰기 때문에 영업이익은 단기간에 크게 불어난다. 이마저도 국내 정유사들의 영업이익 80% 이상은 수출에서 나온다. 국내 주유소 판매에서 정유사가 가져가는 마진은 세금을 제외하면 리터당 수십 원 수준에 불과하다. 

통신사도 마찬가지다. 이번 1분기 통신3사 실적은 시장 예상을 웃도는 선방이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실적 선방의 배경은 무선통신이 아니다. 해킹 사태로 인한 가입자 이탈이라는 악재에도 실적을 방어한 것은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수요 확대 덕분이다. 무선통신 사업 자체는 정부의 강도 높은 요금 인상 억제 정책과 맞물려 국내 신규 수요가 사실상 정체된 상태다. 지금의 통신사들은 AI 인프라 투자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한 것이지,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이익을 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경기가 어려워질 때마다 정부는 어김없이 통신사를 꺼내 든다. 이명박 정부는 '통신비 20% 절감'을 공약으로 내걸고 통신3사를 압박했다. 박근혜 정부는 '반값 통신비'를 외쳤고, 문재인 정부는 기본요금 폐지와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을 추진했다. 윤석열 정부는 5G 중저가 요금제 확대를 과제로 삼았다. 어느 정부도 실질적인 요금 인하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통신3사를 불러 요금제 개선을 논의하고 있으며, 상반기에는 통신3사가 2만원대 5G 요금제를 출시할 예정이다. "납득할 수준의 요금제"라고 업계는 쓴웃음을 짓지만, 경기부양의 해답을 통신 요금에서 찾는다는 점은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다.
 
정유·통신사라는 악역을 만들어 경기침체로 인한 국민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창구로 활용했으리라. 이제 진짜 손대야 할 곳을 봐야한다.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생산직 노조는 올해도 수억원대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반면 국내 산업계는 물론 노동 인력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경기침체를 이유로 임금 동결 통보를 받는 곳이 허다하다. 대기업이 인건비 상승 압박을 납품 단가 인하로 흡수하면, 그 고통은 협력업체와 그곳에 다니는 직원들에게 전가될 것이 분명하다. 많은 노동자가 주머니를 닫을 것이며, 올해도 몇 개월 단위로 동네 식당 간판이 바뀌는 모습이 흔할 것이다.  
 
1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점심값에 손이 떨리는데, 어딘가의 노동자들은 성과급으로 6억원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이 뉴스에 나온다. 정부는 오늘도 손쉬운 표적을 상대하며 경기부양책을 내놓는다. 국민에게 박탈감을 주는 것이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정유사나 클라우드 사업으로 돈을 버는 통신사가 아니다. 약자라는 탈을 쓰고 전 국민을 조롱하고 있는 불편한 구조는 다른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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