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의 상징적 행사장이 또다시 총성에 휩싸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출입기자협회(WHCA) 만찬 행사장에서 25일(현지시간) 산탄총으로 무장한 괴한이 보안 검색 구역을 돌파하려다 총격을 가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주요 참석자들은 긴급 대피했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됐고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무사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한 경호 사고로 축소할 수 없는 중대한 경고다.
백악관 기자단 만찬은 미국 정치와 언론이 한자리에 모이는 상징적 공간이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과 권력을 행사하는 행정부가 공개된 자리에서 마주 앉는 장면은 미국 민주주의의 한 단면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장소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미국 사회의 분열과 폭력성이 이제 제도와 상징의 중심부까지 침투했음을 뜻한다. 민주주의의 무대가 물리적 위협 앞에 흔들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을 겨냥했는지, 단독 범행인지, 정치적 동기가 있었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동기가 무엇이든 결과는 같다. 정치 공간에서 총기가 등장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토론이 아니라 공포에 지배된다. 선거와 의회, 언론과 집회가 해결해야 할 갈등이 무기로 옮겨가는 사회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사회다.
미국은 오랜 기간 총기 규제 논쟁을 반복해 왔다.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규제 강화 요구가 커졌지만 정치권은 번번이 당파 대립 속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수정헌법과 개인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공공 안전이라는 국가의 기본 책무까지 방치할 명분은 될 수 없다. 대통령이 참석한 최고 수준의 경호 행사장조차 완전히 안전하지 못했다면 일반 시민이 느끼는 불안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정치적 적대감의 일상화다. 미국 정치는 이미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제거 대상처럼 대하는 언어에 익숙해졌다. 음모론과 혐오, 적대적 선동이 온라인과 현실을 오가며 증폭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극단적 개인의 폭력은 우발이 아니라 예고된 결과가 된다.
이번 사건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모두 정치 양극화, 허위정보, 증오 선동, 지도자 개인숭배라는 공통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제도가 견고하다고 믿는 순간 균열은 시작된다.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정치 불신과 진영 대결이 깊어질수록 사회는 쉽게 과열된다.
총격범 한 명이 체포됐다고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진짜 과제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총알이 아니라 언어로 지켜진다. 미국은 지금 그 가장 기본적인 원칙 앞에 다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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