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혁 칼럼니스트]
춘추시대 송나라 성문에 불이 나자 엉뚱하게도 성밖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이 말라 죽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사람들이 연못의 물을 길어다 불을 끄는 바람에 물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성문에 난 불과 아무 상관도 없고 책임도 없는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성문실화 앙급지어(城門失火, 殃及池魚)'다.
성어 '성문실화 앙급지어'는 이렇듯 까닭없이 화를 당하거나 제3자에게 엉뚱한 불똥이 튈 때 쓰인다. 흔히 '앙급지어' 혹은 더 간단히 '지어'라고도 한다. 송나라 설화집《태평광기(太平廣記)》에 처음 등장하나 일반에 널리 퍼진 계기가 된 것은 한참 뒤인 남북조 시대의 한 격문이다.
위•촉•오 삼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사마씨의 서진(西晋)이 '8왕의 난'이라는 내부분열로 단명한 후 중국 대륙은 북쪽의 이민족 왕조와 남쪽의 한족 왕조가 양립하는 남북조 시대가 도래했다. 북방을 호령하던 북위(北魏)가 권력 다툼 끝에 동위와 서위로 갈라졌다. 동위의 실권자는 고환(高歡)이라는 인물이었다. 고환은 하남 지역을 다스리며 10만 대군을 통솔하던 후경(侯景)이라는 장수를 총애했다. 후경은 고환이 죽은 후 권력을 승계한 그의 아들 고징과 사이가 나빠져 남조의 양(梁)나라로 투항해 버렸다.
양나라의 대신들은 후경이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니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했다. 그러나 84세 고령의 황제 무제(梁武帝)는 이를 천하 통일의 징조라고 여기고 후경을 받아들여 하남왕(河南王)으로 봉했다. 동위 입장에서는 엄청난 도발이었다. 얼마 후 벌어진 양국의 전쟁에서 양나라가 동위의 유인책에 걸려 대패했다. 기세가 오른 동위가 당대의 문장가 두필(杜弼)로 하여금 양나라에 보내는 격문을 쓰게 했다. 바로 '위동위격랑문(爲東魏檄梁文)'이다. 격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 후경이 감언이설로 양나라에 투항해 몸을 보전하려 하고 있는데, 양나라의 군신들은 오히려 이를 기뻐하며 도의를 잊고 간신과 결탁하여 이웃 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끊었다. 후경 같은 비열한 소인은 기회만 생기면 다시 풍파를 일으킬 것이다. 초나라의 원숭이가 도망치면 그 화가 숲의 나무에 미치고, 송나라 성문에 불이 나면 연못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듯(但恐楚國亡猿, 禍延林木, 城門失火, 殃及池魚) 앞으로 장강, 회하 유역과 형주, 양주 일대의 관리와 백성들이 무고하게 전쟁의 고통을 겪게 될까 두렵다……"
격문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서기 548년, 후경은 동위와 우호 관계를 회복한 양나라가 자신을 동위로 돌려보내려 하자 반란을 일으켜(후경의 난) 자신을 품어준 무제를 굶겨 죽이고 양나라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었다. 아무 죄없는 백성들이 수년간 전란의 고통을 겪었음은 불문가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전쟁이 속전속결로 해치우려던 트럼프의 계산과 달리 4주차에 접어들었다. 이란이 결사 항전 의지를 불태우며 '수평적 확전'이라는 물귀신 전략으로 맞섬에 따라 전쟁은 확대 일로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원유 수송을 막자 전 세계가 고유가로 몸살을 앓고, 걸프만 인접국들 상공에 자폭 드론을 날리고 미사일을 쏘아대자 각국의 에너지 인프라가 파괴되고 중동의 금융•관광 허브 두바이는 유령도시가 됐다.
전쟁의 파고는 우리나라에도 거세게 밀려왔다. 유가•환율•물가 관리에 동시다발적으로 비상등이 켜졌고 기세좋게 오르던 증시도 요동을 친다. 살인적 고유가에 화물차 기사들이 운행 포기를 고민하고 농어민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원유 말고도 헬륨, 나프타, 에틸렌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 마흔 개가 넘는다. 하나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연관이 큰 원자재들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4월 위기설이 돌기 시작했다.
한반도로 번진 불길은 경제를 넘어 안보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란전쟁이 장기화되자 패트리엇과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사드 등 주한미군이 보유한 방공 자산의 중동 차출이 현실화했다. 마치 대만 유사시 전개될 상황의 예고편 같다. 대북 억지력의 약화가 불을 보듯 뻔하니 국민의 불안심리도 커진다.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대가로 북한이 드론 운용과 실전 경험을 쌓고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이 강화된 데 이은 또 하나의 안보 적신호다.
이란의 물귀신 작전이 효과를 보자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물동량이 많은 한중일 3국과 영국, 프랑스에 통행 안전 확보를 위한 전투함 파견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른바 '호르무즈 청구서'다. 중국은 적대 행위 중단이 우선이라는 원론적 반응을 보이며 사실상 일축했다. 미국과 맞장뜨는 중국이니까 그런 말이라도 하지 우리나 일본은 신중한 검토니 정중동이니 하면서 서로 눈치를 보며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뿐이다. 동맹국들의 미온적 반응에 뿔난 트럼프가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다"고 했지만 어떤 형태로든 청구서는 다시 날아올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것은 국가 존립의 기본적인 당위이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정치는 존재한다. 허나 후진국 정치일수록 이같은 당위를 외면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간다. 대내외 정세가 엄중한데도 집권세력의 관심은 온통 이재명 대통령 사법리스크 제거에 꽂혀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사법 3법으로 퇴임 후 안전판을 만들더니 이제는 김어준이 불을 지핀 '공소취하 거래설'을 두고 친명과 친청으로 패가 갈려 음모론 공방전을 벌이느라 여념이 없다. 심지어 검찰 총수의 명칭을 놓고도 티격태격한다. 국가 안위나 국민 복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차기 공천권과 대권을 겨냥한 파벌 간 투쟁이요 힘겨루기임을 알 사람은 다 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숙의 과정을 생략한 사법 3법으로 애먼 국민들이 고생을 하건 말건 내 알 바 아닐 것이다. 그러니 국민 일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검찰청 해체도 변변한 공청회 한번 없이 강성지지층의 뜻대로 밀어붙이는 것 아니겠는가.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싶다. 제 할 일 안하는 여당을 질책하고 견제해야 할 제1야당이 '윤 어게인' 세력과 절연을 하니 마니 하는 문제로 집안싸움이 끊이지 않고 지방선거 공천 잡음만 요란하니 말이다. 여든 야든
국민이 마음 붙일 데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나라의 위기 앞에서 대동단결하고 협치를 할 리 또한 만무하다. 의회주의는 안중에도 없는 거대 여당은 쟁점 법안을 일방 처리하고, 무능하고 무기력한 야당은 고작 필리버스터로 맞서는 게 뉴노멀로 굳어졌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오불관언하는 우물안 개구리 정치는 우리끼리 싸움질하다가 나라와 백성을 나락에 빠뜨린 통한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전쟁이 '강 건너 불'일 수 없는 걸프만 인접국들이 유탄을 맞는 것은 지정학적 숙명이라 치자. 중동에서 7천km 가까이 떨어져 있고 이란과 척진 일 없는 우리는 왜 이란전쟁의 여파로 나라의 안위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는가. 우리는 언제쯤 성문에 일어난 불 때문에 화를 입는 연못 속 물고기나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외부 리스크에 휘둘리지 않는 나라가 되려면 먼저 내부 리스크를 없애야 한다. 그런데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야말로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리스크 아닐까?
남조를 대표하던 양나라가 일개 무장 후경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진 것은 황제의 오판과 향락에 젖은 지배층의 무사안일, 황제 유고시 권력 승계를 노리고 함몰 위기에 처한 도성의 위급함을 수수방관한 황족들의 탐욕이 어우러진 결과다. 세월과 함께 무기는 칼에서 미사일로, 성문은 국경으로 바뀌었지만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 국제 정치의 냉혹한 메커니즘은 그대로다.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저 옛날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는 성어와 고사를 오늘날에도 되새겨 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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