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63) 꾀 많은 토끼는 왜 굴을 세 개 파놓을까? - 교토삼굴(狡兔三窟)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전국시대 초기의 강국 제(齊)나라의 왕족 출신 재상 맹상군(孟嘗君)은 뭐든 재주가 한 가지라도 있으면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식객으로 받아들여 그 수가 삼천 명에 이르렀다. 문객으로도 불리는 식객은 유력자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조력을 하는 당대의 인재들이다. 개중에는 어중이떠중이들도 많아 맹상군의 품격을 문제삼는 이들도 있었지만, 진나라에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그를 구해준 건 닭 울음소리를 잘 내고(계명, 雞鳴) 개처럼 위장하여 도둑질을 잘하는(구도, 狗盜) 재주를 가진 빈천한 식객들이었다. 

진나라에서 살아 돌아온 4년 뒤인 기원전 295년, 가난한 집안의 볼품없는 선비 풍훤(馮諼)이 식객으로 들어왔다. 맹상군은 영지 설(薛) 땅의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식객 유지비에 보탰는데 돈이 잘 걷히지 않아 고민이 컸다. 일년 동안 밥이나 축내고 지내던 풍원이 이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며 물었다. "돈을 다 회수하면 무엇을 사올까요?" "뭐든 좋으니 우리 집에 없는 것으로 사오시오."

설 땅에 도착한 풍훤이 채무자들을 불러모아 놓고 맹상군의 뜻이라 말하고는 빚을 모두 탕감해 주고 차용증을 불태워 없앴다. 이에 모두들 감격해 하며 맹상군 만세를 외쳤다. 풍훤이 돌아오자 맹상군이 물었다. "빌려 준 돈은 모두 받았소?" "모두 받아 왔습니다." "그래 무얼 사왔소?" "이 집에는 금은보화와 가축이 넘쳐나고 후실에는 미인들이 가득하지만 딱 하나 '의(義)'가 없더군요. 그래서 '의'를 사왔습니다."

일년 후, 제나라 왕이 이웃나라들의 이간계에 빠져 맹상군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 많던 식객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실의에 빠진 맹상군이 끝까지 곁을 지키던 풍훤과 영지로 돌아가자 설 땅의 백성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나와 길을 가득 메우고 그를 맞이했다. 빚을 탕감해 준 일로 맹상군이 민심을 얻었다는 얘기다. 맹상군은 비로소 풍훤이 샀다고 한 '의'의 의미를 깨닫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자 풍훤이 말했다. "꾀 많은 토끼도 굴을 세 개 마련해 두어야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다. 공께서는 이제 굴 하나가 있을 뿐이니 아직은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누울 수 없습니다(狡兔有三窟, 僅得免其死耳; 今君有一窟未得高枕而卧也)."  

그후 풍훤은 신묘한 계책으로 맹상군의 몸값을 높여 재상 자리에 복귀하게 했고, 제나라 왕을 설득하여 맹상군의 영지에 왕실 종묘를 세우게 하여 나중에 왕의 마음이 변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했으니 이것들이 각각 두 번째, 세 번째 굴이다. 풍훤이 마련해 준 세 개의 굴 덕분에 맹상군은 한동안 안온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전한(前漢) 사람 유향이 편집한 전국시대 책사들의 책략 모음집《전국책(戰國策)》과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수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 '교토삼굴(狡兔三窟)'은 영리한 토끼라도 세 개의 굴을 마련해 두어야 사냥꾼이나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으로, 생존을 위한 지혜로운 대비책을 사전에 세워두라는 교훈이다. 

거여(巨與)의 사법 폭주가 거침이 없다. 지난달 26일부터 민주당은 법왜곡죄, 재판소원제, 대법관 증원 등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을 하루에 한 개씩 모두 통과시키고 이달 5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의결했다. 이로써 3심제는 4심제로 바뀌고, 2030년까지 대법관의 수를 14명에서 26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원해야 하고, 판검사는 법왜곡 혐의로 수사를 받을 수 있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제는 위헌이라는 지적이 많다. 재판소원제에 의해 대법원 확정판결을 뒤집을 수 있으니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만 살판나게 생겼다. 법왜곡죄로 법의 왜곡을 막으려다 판검사들 양심의 왜곡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농후하다. 대법관 증원은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이 대통령이 임기 중 무려 22명을 임명하게 됨으로써 편향성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법 3법으로 인해 사법부의 독립성이 전례없는 시험대에 올랐다. 그런데도 야당과는 물론이고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숙의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며 법조계와 학계의 우려는 묵살됐다.

현 집권세력이 사법 3법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그 뿌리를 캐보면 작년 5월 1일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에 다다른다. 사법 3법 도입이 파기환송 이튿날부터 추진되어 왔다는 것만 보더라도 입법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만하다. 무슨 명분을 내세워도 최대의 수혜자가 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각종 혐의로 인한 5개의 재판이 중지 상태인 이 대통령은 퇴임 후 재판이 재개될 예정이다. 이 사법 리스크를 줄이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3법이 톡톡히 할 게 분명하니 말이다. 

성어 교토삼굴은 본래 생존의 지혜를 말하지만, 종종 정치적 처세술로 소환되기도 한다. 사법 3법 도입 역시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법왜곡죄는 판검사들을 위축시켜 이재명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결을 함부로 못하게 할 것이니 '공격적 방어'의 성격이 강한 첫 번째 굴이고, 그럼에도 유죄 판결이 나오면 대법원에서 뒤집으면 되니 코드 인사를 통해 자신의 우군을 대거 늘리는 대법관 증원은 두 번째 굴이다. 그런데 세상 일이 어디 계획한대로만 굴러가던가. 지난 2월, 트럼프가 직접 지명한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관들도 트럼프의 관세 부과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다수 의견에 합류했듯 현 정권에서 임명되는 대법관들이 무조건 임명권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마냥 기대하다가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에 대비한 게 재판소원제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재판관이 다수 포진한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뒤엎으면 된다. 사실상 4심제인 재판소원제가 이재명 대통령을 사지에서 구해줄 '최후의 비상구'요 세 번째 굴인 셈이다.

사법 3법이 사법 정의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아니라 권력이 마련해 두려는 세 개의 굴 아니냐는 세간의 인식이 억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법 3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었다. 야당은 물론이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조계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요청했지 않은가. 이 대통령이 임명한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특히 법왜곡죄는 "대한민국 법치의 수치이며 국격에 맞지도 않는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끝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교토삼굴은 일종의 잔꾀다. 그럼에도 풍훤의 굴이 튼튼했고 후세의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의로움'이 자리하고 있었고 '민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풍훤이 마련해 준 맹상군의 굴들은 설 땅의 백성들이 빚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다시 재상이 되어 선정을 펼치게 해 주었다. 지금 민주당의 입법 독재, 사법 폭주에 어떤 의로움이 있는가. 오롯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민주당은 굴 세 개로는 성에 안 차는지 '공취모'를 결성하고 '공취 특위'를 의결하는 등 부산을 떤다. 목적은 오직 하나, 이 대통령 사건 공소를 취소시켜 아예 재판 자체를 없애겠다는 거니 또다른 굴 파기다. 의로움이 없고 민심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정교한 굴을 수십 개 판들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의'가 빠진 교토삼굴은 토끼의 목숨을 구하는 은신처가 아니라 토끼를 가두는 함정이 될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 자신이 늘 얘기하듯 국민만 바라보고 간다면 무슨 굴이 필요하겠는가. 

한자 '교(狡)'는 본래  '총명하다'는 의미였으나 후대로 오면서 '교활하다'로 새김이 바뀌었다. 이는 사람들이 '의'라는 핵심가치는 도외시한 채 권력의 안위만을 도모할 목적으로 굴을 팠기 때문은 아닐까?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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