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중동發 '지정학적 폭탄'… '3고(高)'가 오는 가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최근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돌아보면 오랜만에 경제를 둘러싼 낙관이 넓게 퍼져 있었다.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이어갔고, 개인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크게 높아졌다. 오랫동안 이어진 경기 둔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이제는 경제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이 곳곳에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언제나 국내의 기대와 별개로 움직인다. 국제 정세의 작은 균열이 순식간에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흔들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런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고,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에너지 수송의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밝히면서 국제 경제가 긴장에 휩싸였다. 이른바 중동발 ‘지정학적 폭탄’이다. 이란의 보복 공격은 걸프 지역의 에너지 시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원유 생산시설과 액화천연가스(LNG) 설비가 있는 지역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미 여러 유조선이 공격을 받아 항해가 어려워졌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은 이런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에너지 가격과 환율, 채권금리 등 핵심 지표들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다.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이 좁은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핵심 동맥이다.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석유의 약 20%와 LNG의 상당 부분이 이곳을 통과한다. 세계 경제의 심장으로 향하는 에너지의 흐름이 이 좁은 해협을 지나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이 지역의 긴장은 언제나 국제 경제의 가장 민감한 위험 요소로 꼽혀왔다. 과거에도 이란은 여러 차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봉쇄가 실행된 적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협이 완전히 봉쇄되면 이란 역시 원유 수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단순한 정치적 위협 이상의 긴장감을 낳고 있다. 유조선 공격과 에너지 시설에 대한 무인기 공격이 실제로 발생하면서 시장은 더 이상 이 상황을 단순한 외교적 수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 에너지 시장을 즉각적으로 흔들었다.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원유와 LNG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 에너지 가격은 세계 경제의 거의 모든 산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은 곧바로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직접적인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역시 그중 하나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으며, LNG도 약 30%를 이 지역에서 들여온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에너지의 대부분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곧 한국 경제의 긴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만약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거나 에너지 생산시설의 피해가 확대된다면 한국 경제는 두 가지 위험에 동시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는 가격 충격이고, 다른 하나는 공급 충격이다. 먼저 가격 충격이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그 영향은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석유와 가스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산업과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는 기본 자원이다.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 정유제품 가격이 올라가고, 이는 운송비와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LNG 가격 상승은 전력과 도시가스 요금 상승 압력으로 연결된다. 결국 물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인플레이션 요인이 된다.

여기에 환율 문제까지 겹치면 부담은 더 커진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 같은 에너지를 수입하더라도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더 커진다. 즉 국제 가격 상승과 환율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면 수입 비용은 이중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 경제가 우려하는 ‘3고(高)’ 현상이다. 환율 상승, 물가 상승, 금리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물가가 올라가고,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금리가 상승하면 가계와 기업의 금융 부담이 커지고 경제 전반의 활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위기의 또 다른 측면은 공급 자체의 문제다. 가격이 오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공급이 실제로 줄어드는 경우다. 다행히 한국은 과거의 석유 위기를 교훈 삼아 상당한 수준의 전략 비축 체계를 갖추고 있다. 현재 한국의 원유 비축량은 국내 소비 기준으로 약 221일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만약 공급이 일시적으로 차질을 빚더라도 즉각적인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LNG다. LNG는 극저온 상태에서 보관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장기간 대량 저장이 쉽지 않다. 현재 한국의 LNG 재고는 약 50일 남짓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중동 지역 공급이 장기간 차질을 빚게 되면 LNG 수급 문제가 현실적인 위험으로 떠오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중동 긴장은 단순히 유가 상승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에너지 안보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에너지 소비 역시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국제 정세의 작은 변화도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을 곧바로 경제 위기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국제 분쟁이 발생하면 금융시장은 대개 초기 단계에서 과잉 반응을 보인다. 위험을 피하려는 자금이 이동하면서 환율과 금리가 빠르게 움직이고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진다. 하지만 분쟁이 빠르게 진정되면 상당 부분이 다시 안정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지금 한국 사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도한 공포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다. 금융시장과 경제는 심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소비자와 기업이 동시에 위축되면 실제 경제활동이 줄어들고, 이는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시장이 상승할 때는 지나친 낙관이 문제지만, 위기가 닥칠 때는 과도한 비관이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침착함이다. 주식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상승기에는 모든 사람이 낙관에 빠지고, 하락기에는 공포가 빠르게 확산된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이러한 감정의 진폭을 반복해 왔다. 이런 때일수록 감정에 치우친 '투매'나, 반등을 노린 무리한 '빚투(빚내서 투자)'는 가계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다. 지금은 공격적인 자산 증식보다는 '방어적 자산 관리'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커진 만큼, 부채 규모를 줄이고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또한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압박이 실물 경기에 반영되는 시차를 고려할 때, 불요불급한 소비를 줄이는 등 가계 경제의 기초 체력을 비축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위기일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자산을 지키는 최고의 전략이다.

그러나 국민의 침착함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시나리오(컨틴전시 플랜)에 기반한 대응 전략이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위기 그 자체보다 '정부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확실성이다. 단순히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 안정이 중요하다. 환율이 과도하게 흔들릴 경우 시장의 공포가 확대되지 않도록 안정 장치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외환시장 개입이나 유동성 공급 같은 정책 수단을 통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해야 한다. 채권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 금융 시스템 전체에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채권시장 안정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에너지 공급 안정 대책도 중요하다. 정부와 에너지 기업은 중동 이외 지역에서의 대체 조달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미국, 호주, 동남아 등 다양한 공급원을 활용해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전략 비축 물량을 탄력적으로 방출해 가격 급등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국제 협력 역시 중요한 수단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중심으로 한 소비국 간 협력 체계를 활용하면 에너지 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의 에너지 위기에서도 주요 소비국들이 협력해 전략 비축을 공동으로 활용하면서 시장 안정에 기여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중장기적인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에너지 공급의 상당 부분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언제든 경제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산업 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동시에 기업과 금융기관의 환율 위험 관리 능력을 강화해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경제 위기의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국민은 과도한 공포를 경계해야 하고, 정부는 과도한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 전체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도 정책은 철저히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분명 긴장을 요구하는 시기다. 그러나 동시에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는 여러 번의 외부 충격을 이겨낸 경험이 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경제 시스템을 단단하게 다져 왔다.

위기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나 준비된 사회는 그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준비다. 국민에게는 차분함을, 정부에게는 명확한 시나리오와 신속한 대응을 요구해야 할 때다. 경제는 결국 신뢰 위에서 움직인다. 그 신뢰가 유지되는 한 어떤 외부 충격도 한국 경제를 쉽게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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