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영화 이야기⑥ | 인간·문화·자연] 조선의 충신 김종서와 책사 한명회의 대비된 죽음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보도 스틸 컷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보도 스틸 컷

“신, 김종서는 죄인입니다.하여 저승을 가지않고,
저승의 문턱에서 조선땅을 50년째 내려보고 있었습니다.이제사 무릎꿇고, 성군이신 세종대왕과 지극히 온화하셨던 문종 폐하, 그리고 어린 나이에 나라의 무게를 짊어지셨던 단종 전하 앞에 고합니다. 소신은 세 분 성상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불충에 불충입니다.”
 
김종서는 칼을 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칼을 막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함길도의 대호(大虎)라 불리며 북방을 지켰고, 여진을 토벌하며 국경을 굳혔던 장수였습니다. 그는 조선의 기틀을 실질적으로 확장한 관료이자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궁궐 안의 음습한 음모까지 읽어내지는 못했습니다. 1453년 계유정난의 첫 피가 되었고, 그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왕통은 흔들렸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영혼은 기록을 넘어섭니다. 사초는 침묵할지라도 우주의 섭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역사의 신, 종교의 신, 인간의 양심은 각자의 방식으로 균형을 되찾습니다. 저, 김종서는 저승 문턱에서 그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김종서를 쓰러뜨린 칼은 수양대군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설계한 이는 한명회였습니다. 그는 칼을 직접 들지 않았으되, 칼의 방향을 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책략은 치밀했고, 그의 언변은 날카로웠습니다. 계유정난은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라 계산된 정치 공학의 산물이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그 긴장의 결을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단종을 향해 공손히 예를 갖추면서도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장면, 청령포 유배를 둘러싼 논의에서 “전하의 안위를 위함”이라 말하면서 실은 고립을 확정짓는 서늘한 대사, 궁궐 회랑을 천천히 걸으며 수양대군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장면은 영화가 던지는 가장 날 선 질문입니다. 권력은 언제나 명분의 언어로 포장된다는 사실입니다.
 
“저, 김종서는 저승 문턱에서 조선 왕통의 역신이자 계유정난의 설계자 한명회를 쭉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38세가 되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습니다. 재능은 있었으나 때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뜻밖의 경로로 찾아옵니다. 친구 권람을 통해 수양대군을 만났고, 그 만남이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권력의 균열을 읽어낸 그는 수양을 설득하고 조선의 권력 지형을 재편했습니다.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한 인물이었습니다.
 
정난이 성공한 뒤 그는 권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세조의 신임을 얻었고, 예종의 장인이 되었으며, 다시 성종의 장인이 되었습니다. 일등공신 네 차례. 조선 제일의 권세가라는 이름이 그의 어깨에 얹혔습니다. 한강 변 압구정에 올라 경복궁을 굽어보던 그의 모습은 절정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는 단종을 몰아내는 결정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투와는 달리 결단은 단호합니다. “국가를 위함입니다.” 그 한마디로 개인의 비극은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절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딸은 요절했고, 외손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비의 자리는 영광이었으나 후사는 남기지 못했습니다. 권력의 빛은 강렬했으나 그림자 또한 깊었습니다. 이것을 복수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역사의 균형, 인간 권세의 한계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1487년, 한명회는 73세로 생을 마쳤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한 노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504년, 연산군이 갑자사화를 일으켰습니다. 생모 폐비 윤씨의 죽음을 둘러싼 분노가 조정을 뒤흔들었습니다. 선왕 시대의 권신들은 파헤쳐졌고, 무덤은 열렸습니다. 부관참시. 두 번 죽는 형벌. 한명회의 무덤 또한 파헤쳐졌습니다. 봉분이 무너지고, 백골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권세의 절정에 섰던 자의 말로였습니다.
 
“세 분 성상이시여, 불충한 김종서는 저승 문턱에서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제야 신, 김종서, 세 분 성상 앞에 석고대죄합니다. 비록 지켜내지 못했으나 뜻은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저승의 미관말직에서라도 충신의 길을 다시 걷겠습니다. 굽어 살피어 주소서.”
 
이 글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한명회의 비운을, 저승을 떠돌던 충신 김종서의 영혼이 독백하는 형식으로 정리한 상상적 서사입니다. 역사적 인과로서의 복수가 아니라, 영혼의 차원에서 바라본 대비입니다.
 
한쪽에는 칼에 쓰러진 충신의 죽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권세의 정점에서 내려온 권신의 죽음이 있습니다. 대비된 두 죽음은 묻습니다. 무엇이 오래 남는가.
 
김종서는 생전에 북방을 개척하고 조선의 영토를 확장한 정통 충직형 관료였습니다. 엄격했으나 청렴했고, 강단 있었으나 사사로움이 없었습니다. 조선의 기틀을 지키는 일에 몸을 바쳤습니다.
한명회 또한 뛰어난 책사였습니다. 시대를 읽었고, 권력을 설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두려움이었고, 김종서가 남긴 것은 신의였습니다.
 
영혼의 세계에서 복수는 칼이 아니라 시간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삶이 끝난 뒤에도 선택의 결과는 이어집니다.
영화는 단종의 눈물로 막을 내리지만,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권력은 순간을 지배하되 품격은 세대를 지배합니다.
군자의 복수는 5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수는 상대의 파멸이 아니라 자신의 도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조선의 하늘 아래 두 인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칼에 쓰러졌고, 한 사람은 권세 속에 늙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오늘,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더 경건하게 부르고 있는가.
역사의 신은 조용히 답합니다.
권력은 지나가고, 신의는 남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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