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 불안이 확대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산 에너지 확보에 나서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 여파로 원유 수송의 핵심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사실상 제약을 받으면서 동남아 각국이 대체 공급처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14일 보도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약 5시간에 걸친 정상회담을 갖고 러시아산 석유 제품 공급을 요청했다. 러시아 측도 장기 계약 체결을 전제로 양국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확인했다. 인도네시아는 원유 소비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로, 중동발 공급 차질 여파로 비축량이 현재 약 20일분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정부는 공무원 주 1회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등 연료 절감에 나섰지만 한계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러시아를 통한 에너지 확보 노력은 동남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베트남은 러시아 가스기업 노바텍과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을 위한 예비 계약을 체결했고, 태국은 최대 200만 톤 규모의 러시아산 화학비료 수입과 함께 원유 도입도 검토 중이다. 필리핀 역시 러시아산 원유를 도입하며 추가 구매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태다. 이는 그간 서방의 대러 제재를 고려해 조심스러웠던 동남아 국가들의 기조가 에너지 안보 위기 앞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원유 가격 상승과 수요 확대가 맞물리며 올해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은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실제로 우랄산 원유 가격은 3월 기준 배럴당 77달러까지 상승해 러시아 정부의 올해 예상치(59달러)를 크게 상회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의 원유 관련 세수는 4월에만 배로 늘어난 9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나아가 러시아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 에너지 인프라 협력을 병행하며 동남아 국가들과의 장기적 관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닛케이는 러시아가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원유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에 대한 에너지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헝가리와 베네수엘라, 이란 등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던 국가의 지도자들이 잇따라 교체되는 상황 속에서, 우군 확보가 시급한 러시아가 에너지 수급이 급한 국가들에 실질적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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