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영화 이야기⑤ | 인간·문화·자연 ] '왕과 사는 남자'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수양대군, 세조와 금성대군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서 극장을 나서는 길, 관객의 눈가가 젖어 있다면 그것은 단지 비극적 결말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한 인간이 끝까지 인간으로 남으려 했던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권력의 승패가 아니라 품격의 승패를 묻는 영화.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금성대군이다.
 
조선의 계보는 분명하다. 성군 세종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장남 문종이 그 질서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문종의 아들,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역사에는 늘 균열이 있다. 둘째 아들 수양대군, 훗날 세조가 되는 인물이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조선 왕실은 피로 물든다. 그 갈림길에서 또 하나의 이름이 선다. 금성대군.
 
영화의 도입부는 문종의 빈전이다. 향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어린 단종은 슬픔을 억누르며 고개를 숙인다. 그 곁에 선 금성대군은 아무 말 없이 조카의 손을 감싼다. 그 손길은 보호자의 손길이다. 그는 형 문종의 영정 앞에서 낮고 분명한 음성으로 말한다. “전하를 보필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세종이 세운 왕도의 정신을 지키겠다는 다짐이며, 조선 왕실의 명예를 끝까지 붙들겠다는 선언이다.
 
이 장면에서 이미 형제의 길은 암시된다. 수양대군의 눈빛은 냉정하고 계산적이며, 금성대군의 눈빛은 맑고 곧다. 같은 피를 나누었으되 다른 선택을 준비하는 두 얼굴. 영화는 그 대비를 과장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보여준다.
 
계유정난 이후 조정의 공기는 급변한다. 수양대군은 군권을 장악하고 정국을 주도한다. 어린 단종은 왕좌에 앉아 있으나 실권은 멀어진다. 이때 금성대군은 앞에 나서지 않는다. 대신 한 발 뒤에서 단종의 어깨를 지킨다. 대신들의 언쟁이 거세질 때 그는 조용히 시선을 들어 조카를 바라본다. “전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눈빛은 말보다 깊다.
 
그리고 마침내 단종은 상왕으로 밀려난다. 영월 청령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고립의 땅. 영화는 그곳을 서정적으로, 그러나 차갑게 담아낸다. 강물은 맑고 하늘은 높지만, 소년 임금의 마음은 갇혀 있다. 그는 모래 위에 앉아 작은 돌을 던진다. 물결이 퍼지듯 그의 운명도 흩어진다.
 
이때 화면은 순흥으로 전환된다. 가시 울타리 안, 위리안치된 금성대군의 집. 등잔불 아래에서 그는 지도를 펼친다. 손끝이 영월을 짚는다. “전하께서 홀로 계신다.” 그의 목소리는 낮지만 흔들림이 없다. 그는 병력과 식량을 점검하고, 밀사를 보내며 영월과 순흥을 잇는 길을 조용히 조직한다.
 
영월의 강물과 순흥의 산길은 그렇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상인으로 위장한 밀사가 서찰을 품고 산길을 넘고, 승려가 밤길을 걸어 소식을 전한다. 영화는 이 장면들을 교차 편집으로 긴박하게 엮는다. 그러나 그 긴박함의 중심에는 야망이 없다. 오로지 보호자의 마음만이 있다.
 
금성대군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왕위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조카의 안위와 왕통의 정당성만을 말한다. “전하께 누가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라.” 그 말에는 형 문종과 부왕 세종을 향한 충성이 담겨 있다. 세종이 세운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의지, 문종이 맡긴 나라를 되돌려주겠다는 신의.
 
그러나 역사는 냉혹하다. 순흥에서의 거사는 밀고로 드러난다. 관군이 들이닥치고, 고을은 불길에 휩싸인다. 영화는 그 장면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불길 사이로 비치는 금성대군의 얼굴을 비춘다. 분노도 절망도 없다. 다만 안타까움이 스친다. 조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 그러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결연함.
 
최후의 순간, 그는 영월 방향을 묻는다. 북쪽을 가리키는 손짓을 본 뒤, 무릎을 꿇고 세 번 절한다. 그 절은 단종에게 바치는 절이며, 세종과 문종 앞에서의 약속을 지킨다는 인사다. 패배자의 절이 아니다. 신의를 완수한 자의 절이다.
 
관객은 이미 역사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장면에서 눈물이 흐른다. 왜인가. 그것은 권력의 비극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숭고함 때문이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영월의 강물은 지금도 흐른다. 청령포의 모래는 햇살 아래 빛난다. 경북 영주 순흥의 신단에는 해마다 향이 오른다. 폐부되었던 고을은 복설되었고, 지워졌던 이름은 복권되었다. 시간이 흘러 신의는 다시 평가받았다.
 
세종에서 문종으로, 문종에서 단종으로 이어지는 왕통의 계보는 권력의 논리로 끊겼으나, 인간의 논리로는 이어졌다. 그 연결 고리가 금성대군이다. 그는 왕좌를 차지하지 못했으나, 왕도의 정신을 지켰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권력이 정의를 대신할 수 있는가. 형제의 피가 의리를 압도할 수 있는가.
영월의 강물과 순흥의 바람 속에서 우리는 답을 듣는다. 권력은 순간이지만, 의리는 영원하다.
 
금성대군은 왕이 되지 못했으나 인간으로 남았다. 그의 이름은 패배가 아니라 품격으로 기억된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눈물이 그 증거다. 우리는 권력을 위해 사는 인간보다, 약속을 위해 죽는 인간을 더 오래 기억한다.
 
인간·문화·자연은 그렇게 이어진다. 자연은 흐르고, 문화는 쌓이며, 인간의 선택은 역사로 남는다. 금성대군의 삶은 그 진실을 증언한다. 그리고 오늘도 영월과 순흥은 조용히 말한다. 왕좌는 사라져도, 신의는 남는다고.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포스터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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