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은 지난 8일(한국 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올림픽 한국 선수단을 통틀어 처음 나온 메달이다.
김상겸이 써 내려간 '은빛 드라마'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천식으로 고생하던 '허약한 소년'은 건강을 위해 육상을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스노보드와 운명처럼 만났다. 그러나 2011년 한국체대 졸업 후 선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실업팀이 없어 생계유지가 어려웠던 그는 훈련 기간 중 주말 하루는 아르바이트, 비시즌에는 공사장 일용직 노동에 뛰어들어야 했다.
김상겸은 2011년 튀르키예 에르주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평행대회전 우승을 차지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올림픽의 벽은 높았다. 2014년 소치 대회에선 한국 선수 최초로 이 종목에 출전했으나 예선 17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8년 평창 대회에선 16강전에서 바로 고배를 마셨다. 2022년 베이징 대회에서도 예선 24위로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최고 성적은 2021년 평행대회전 4위였다.
하지만 김상겸은 포기하지 않았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기량이 만개했다. 지난 2024년 11월 중국 메이린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 데뷔 15년 만에 은메달을 딴데 이어 지난해 3월 폴란드 크르니차 대회에선 동메달을 추가했다.
절치부심해 나선 네 번째 올림픽에서 김상겸은 예선을 8위로 통과해 16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16강을 통과한 뒤 8강에서 이번 시즌 월드컵 랭킹 1위인 롤란드 피슈날러(이탈리아)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4강을 거쳐 결승에서도 베냐민 카를(오스트리아)과 치열한 접전 끝에 0.19초 차로 아깝게 패해 은메달을 확정했다.
'메달을 딴 순간 가장 생각나는 사람'을 묻자, 김상겸은 아내를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기다려줘서 고맙다. 가족들이 힘을 많이 실어줬다. 믿어준 많은 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면서 "이 메달은 엄마, 아빠, 아내에게 걸어주겠다"며 미소 지었다.
끝으로 김상겸은 "스노보드는 제 인생"이라면서 "앞으로도 헤쳐나갈 일이 많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상겸의 이번 메달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도 큰 획을 그었다. 한국 스키·스노보드는 2018년 평창 대회에서 이상호가 이 종목 은메달을 획득해 사상 첫 올림픽 입상에 성공한 지 8년 만에 같은 종목에서 메달을 추가하는 기쁨을 누렸다.
아울러 김상겸은 한국 올림픽 역사상 400번째 메달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1948 런던 하계 올림픽에서 김성집(역도)의 동메달로 올림픽 첫 메달을 획득한 한국은 2024 파리까지 하계 올림픽 메달 320개(금 109, 은 100, 동 111), 2022 베이징까지 동계 올림픽 메달 79개(금 33, 은 30, 동 16)로 도합 399개의 메달을 기록 중이었다. 김상겸의 은빛 질주로 한국 스포츠는 마침내 '올림픽 메달 400개' 고지를 밟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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