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BOKonomics] '사천피 시대' 원화 약세…한은 총재가 꼽은 이유 '다섯'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코스피 지수가 '4000피' 돌파를 목전에 뒀지만 원·달러 환율은 14거래일 연속 1400원대에 머물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원화 약세 요인으로 △달러 강세 △엔화 약세  △위안화 약세 △내국인 해외투자 △한·미 관세협상 지연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25일 새벽 2시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장 서울환시 종가 대비 0.20원 내린 1439.4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장중 고점은 1439.90원, 저점은 1433.60원으로 변동 폭은 6.30원을 기록했다. 환율은 지난달 25일 1400원에 진입한 후 단 하루(9월 29일)를 제외하고 줄곧 14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화가 강세를 보일 만한 재료들이 쌓여 있는데도 환율이 계엄 사태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던 당시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같은 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96.03포인트(2.5%) 오른 3941.59로 거래를 마치며 4000선에 근접했다. 외국인의 매수 행렬(5908억원 순매수)이 상승 랠리를 뒷받침하면서다. 국내 증시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면 원화 수요가 커지며 원화 가치가 오르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인데 최근에는 이러한 상관관계가 약화되는 '디커플링' 현상이 뚜렷하다.

한·미 금리차 축소와 역대급 경상수지 흑자도 원화 가치를 키우는 요소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23일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한 가운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오는 2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한미 금리차는 2023년 3월 이후 2년 7개월 만에 1.5%포인트로 좁혀지게 된다. 

경상수지는 29개월 연속 흑자다. 반도체 경기 호조 덕분에 8월 경상수지는 91억5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같은 달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1100억 달러를 넘어 지난 8월 전망치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그만큼 달러 유입이 풍부하다는 의미지만 우리 외환수급에는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서학개미 해외투자, 외국인 국내투자의 4배 
표국제금융센터
[표=국제금융센터]
이 총재는 지난 통화정책방향 회의가 열린 8월 28일 이후 환율이 "약 35원가량 상승했다"며, 이 중 달러 강세 영향은 4분의1(약 9원)이고 4분의3(약 26원)은 국내외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외환수급 불균형의 핵심 요인으로는 서학개미의 해외투자가 지목된다. 이 총재는 "해외증권 투자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으며 외국인이 국내에 들여오는 증권투자액보다 우리가 해외로 가지고 나가는 투자액이 대략 4배 정도 된다"고 짚었다.

실제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적 국제수지 금융통계계정의 증권투자 자산(내국인 해외증권투자)은 886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인 국내증권투자액은 205억3000만 달러다. 

올 들어 외국인 국내증권투자가 많이 늘어났음에도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규모가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들어오는 돈과 빠져나가는 돈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는 722억5000만 달러이며, 외국인의 국내증권투자는 207억7000만 달러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외환분석부장은 "견조한 경상수지 흑자 기조에도 불구하고 내국인 해외투자 추가 확대 여지가 잠재하는 만큼 추후 외환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미 관세협상 지연, 3500억弗 투자 부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미 관세협상 추가 논의를 마치고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미 관세협상 추가 논의를 마치고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근 한 달간 원화의 절하 폭은 우리나라와 경제구조가 비슷한 아시아 통화인 대만달러보다 1.6배가량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가 다른 나라 통화 대비 유독 약세를 보이는 배경에는 한·미 관세협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4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뒤 막판 조율 중인 한·미 관세협상에 대해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핵심 쟁점에 대해선 양국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타결을 기대한다면 갈 길이 멀다"고 협상 장기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일단 정부와 한은은 관세협상이 타결되면 원·달러 환율이 하락 안정될 것으로 봤다. 이 총재는 향후 환율 전망과 관련해 "우리나라 내부 요인인 관세 협상 불확실성이 환율을 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본다"며 "관세협상 불확실성이 좋은 쪽으로 사라지면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달러 강세·위안화 약세·엔화 약세
표한국은행 스냅샷
[표=한국은행 스냅샷]
이 총재가 지목한 다섯 가지 환율 요인 가운데, 앞선 두 가지(내국인 해외투자·한·미 관세협상)는 국내 요인이고, 나머지 세 가지(달러 강세·엔화 약세·위안화 약세)는 주요 아시아 통화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국외 요인이다.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달러 강세가 나타나자 원화도 상대적으로 절하되고 있다.

이날 새벽 2시 외환시장 기준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DXY)는 98.728이었다. 24일 오후 3시 30분 기준으로는 99.034로 100 가까이 바짝 다가섰다. 같은 시간 달러·엔 환율은 152.770엔, 엔·원 재정환율은 100엔당 941.55원이다. 아베노믹스를 계승하며 경기 부양책을 예고하는 인물인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공식 취임하면서 '다카이치노믹스' 기대감에 엔화는 약세(환율 상승)다. 

역외시장에서 달러·위안 환율은 7.1258위안, 위안·원 환율은 202.00원에 거래됐다. 최근 미·중 갈등은 위안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두 나라는 최근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미국의 '100% 추가 관세 위협' 등으로 맞붙은 데 이어 6년 전 무역 합의 이행 실패의 책임 소재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합의점을 찾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권아민 NH증권 연구원은 "현재 상황은 '펀더멘털+수급(유동성)' 조합보다 '정책 불확실성+수급(심리)'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대미 협상에서 3500억 달러 투자의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월말 관세 협상 합의문 발표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월말로 갈수록 악재로 반영됐던 불확실성들이 해소되며 여타 재료와 맞춘 키맞추기를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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