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늦어진 ELS·지배구조 개선, 남은 건 감경과 뒷북

  • ELS 과징금 수조원서 수천억원대로 감경

  • 회장 연임 견제책은 주요 인선 이후 윤곽

  • 오랜 검토에도 실효성·시의성 의문

이서영
이서영

금융당국이 올해 내내 붙들고 있던 은행권 주요 현안들이 연말을 앞두고 하나둘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제재와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이 대표적이다. 그간 은행 감독 분야에서 이렇다 할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나왔던 만큼 뒤늦게나마 성과가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오랜 논의 끝에 내놓은 답안을 들여다보면 기대보다 아쉬움이 앞선다.

홍콩 ELS 제재는 금융감독원이 2023년 11월 검사에 착수한 지 약 3년 만에 결론에 이르렀다. 금융위원회는 4일 정례회의에서 7개 은행에 과징금 3619억6000만원과 과태료 17억7800만원을 부과하기로 최종 의결했다. 금융위는 이번 제재가 역대 최대 규모의 금전 제재라며 불완전판매에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제재가 확정되기까지 과정을 돌아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초 금감원이 산정한 과징금은 약 4조원에 달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사전 통보 단계에서 2조원으로 줄었고, 올해 2월 제재심의위원회에서는 1조4000억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금융위가 사실관계와 법리 보완을 요구하면서 지난 6월에는 6000억원으로 재산정됐다. 최종 확정된 과징금은 최초 산정액 대비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물론 과징금 감경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초기 계도기간 적용 여부와 위반행위의 중대성 등 법적 쟁점을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 은행들의 자율배상 노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 역시 명확한 법적 근거와 비례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과징금 규모가 클수록 금융소비자 보호에 충실한 제재라고 볼 수도 없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최초 산정액이 지나치게 과도했던 것인지, 금융위 심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법리적 쟁점이 충분히 검토된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수조 원대 과징금을 예고했던 제재가 여러 차례 재산정을 거쳐 수천억 원대로 확정됐다면 그 차이가 발생한 이유부터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에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정작 금융당국의 제재 기준과 일관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역시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을 견제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겠다며 제도 개선을 추진해 왔다. 최근에는 구체적인 방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그러나 금융지주 회장 인선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에서는 올해 회장 연임 여부가 결정됐다. 특히 iM금융은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황병우 회장 후임을 정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시행까지 남은 절차를 고려하면 현재 진행 중인 회장 인선에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을 견제하겠다며 마련한 새 규칙이 정작 회장들 거취가 결정되는 시기에는 작동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연임 의결 요건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폐쇄적인 승계 구조가 개선될지도 의문이다. 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사외이사들이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외부 후보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지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의결에 필요한 숫자만 높이고 후보 추천과 검증 과정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형식적인 개선에 그칠 우려가 있다.

두 현안 모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중한 검토가 언제까지나 결정 지연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금융당국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제재의 예측 가능성에 의문이 쌓였고, 제도 개선이 현장에 영향을 미칠 기회도 줄어들었다.

금융당국의 성적표는 현안을 얼마나 많이 마무리했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불완전판매에 책임을 물을 일관된 기준을 세웠는지, 지배구조 개선이 실제 금융지주 회장 선임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오랜 시간을 들인 결과물이 거듭된 과징금 재산정과 뒤늦은 제도 개선으로만 기억된다면 그간의 논의가 무색해진다. 늦게 제출한 답안일수록 내용은 더욱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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