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상권 붕괴와 주상복합 공실의 악순환을 끊어낼 '공간의 진화'

  • 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회장

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회장
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회장
한국의 상권은 지금 극단적인 양극화 게임 중이다. 주말이면 성수동이나 이태원 같은 핫플레이스에는 '인스타 감성'을 찾아 몰려든 젊은이들이 넘치지만, 잘나가던 구도심 번화가와 삐까번쩍한 신도시 주상복합 상가는 텅 빈 채 침묵만 흐른다. 압구정 로데오와 가로수길의 부활과 몰락은 '상권도 흥하고 진다'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전국에 유령처럼 방치된 '대규모 공실 상가'다. 멀쩡한 공간이 텅 비어 있는 건 국가적 자원 낭비이자 동네를 스산하게 만드는 슬럼화의 주범이다.

'건물만 깨끗하게 잘 지으면 알아서 오겠지?'라던 생각은 완벽한 착각이었다. 높은 분양가와 임대료, 손님의 외면이 만든 연쇄 폐업은 자영업자의 눈물로 끝나지 않는다. 시행사엔 '공실 폭탄'을, 금융사엔 '부실 대출 리스크'를, 지자체엔 '유령 도시화'라는 직격탄을 날리며 사회적 위기로 번졌다. 이제 '임대료를 조금 깎아줄게'라는 식의 땜질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수술대에 올리고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때다.

상권 생사의 기본은 배후의 '정주·업무 밀도'와 '교통 편익'이다. 주말만 반짝 뜨는 유동인구에 목매는 상권은 수명이 짧다. 반면 강남이나 여의도, 명동처럼 탄탄한 오피스와 거주 인구가 결합되고 교통망이 뚫린 곳은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젠트리피케이션의 저주에 빠진 곳은 바로 외면받는다. 임대료를 올리면 개성 있는 소상공인과 예술인이 쫓겨나고,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며 '힙한 정체성'이 증발해 사람들도 덩달아 떠나버린다.

주상복합 상가의 공실 비극도 똑같다. 분양 수익만 노린 개발회사들이 상가 면적을 과하게 늘린 탓이다. 수요와 콘텐츠 고민 없이 과잉 공급된 상가는 높은 분양가와 임대료를 불렀고, 이는 상인들의 연쇄 폐업으로 이어졌다. 외관만 화려하면 장사가 될 거라는 꿈은 산산이 조각났다. 시행 마진이 무너지고 금융사도 부실 위험에 시달리며, 텅 빈 거리는 동네 이미지와 집값마저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공실 폭탄을 막고 상권을 살려낼 진짜 해법은 무엇일까? 답은 주체별 역할 체인지, 그리고 콘텐츠 다양성의 이식에 있다. 아울러 예술과 문화 활동을 중심으로 동네와 마을, 도시의 물리·사회적 환경을 전략적으로 형성하고 재생하는 '창의적 장소만들기(Creative Placemaking)'를 실행해야 한다. 전문가나 행정기관 중심의 하향식 개발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나 예술가, 이해관계자가 초기 단계부터 함께 참여해 공간을 만들어 텅 빈 상자(공간)에 영혼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와 지자체는 '상가 몇 % 의무 설치' 같은 낡은 규제부터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무작정 상가만 늘리기보다 첨단 산업이나 청년 창업, 공공 문화 시설을 들여놓는 '착한 개발'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얹어주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이미 흉물로 전락한 장기 공실 상가는 공공이 직접 매입한 뒤 미술관이나 안심 상가로 판을 깔아주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개발회사는 '상가 쪼개 분양하고 손 털면 끝'이라는 먹튀 패러다임을 버려야 한다. 상가 전체를 전문 운영사에 통째로 위탁 운영(마스터리스)하며 현실적인 운영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동네 상권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 물량만 공급하는 절제미를 보이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금융사와 임대인도 눈높이를 낮춰야 함께 산다. 금융사는 건물의 겉값 대신 상권이 실제 버는 힘(운영 수익률)을 보고 돈을 대야 하고, 임대인은 매출 연동형 임대료나 임대료 유예(Rent Free)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인들의 연쇄 폐업부터 막아주는 상생 전략을 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빈 공간에는 다채로운 문화와 산업의 소프트웨어를 빽빽하게 채워야 한다. 예술가 30명 이상의 스튜디오나 소규모 전시관이 들어서면 독창적인 에너지를 찾아 '문화 마니아'들이 모여든다. 여기에 힙한 로컬 F&B, 독립 서점, 팝업 스토어가 어우러져 거리의 흥청거림을 살려내고, AI·ICT 스타트업 같은 오피스와 주거가 함께 물려 돌아가는 '복합 거점(Mixed-Use)'이 될 때 비로소 상권은 지속가능한 활기를 유지하게 된다.

건물만 번듯하다고 사람이 저절로 모이지 않는다. 텅 빈 상가는 도시의 실패이자 국가적 자원 낭비다. 이제 개발회사, 입점 상인, 금융사, 정부는 각자의 계산기를 내려놓고 '문화와 사람이 모이는 지속 가능한 공간 생태계'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손을 잡아야 한다. 빈 거리와 빈 상가를 예술과 청년 창업의 허브로 탈바꿈시키는 것만이 거리에 온기를 돌게 하고 지역 경쟁력을 살리는 유일한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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