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원을 넘어섰지만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자금이 쏠리면서 수익률 개선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전문 수탁법인이 적립금을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해 자산 운용의 전문성을 높이고 장기 수익률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다만 전문기관의 운용이 수익률 상승을 보장하는 것은 아닌 데다 투자 성과에 따라 원금 손실도 발생할 수 있어 운용 책임을 명확히 하고 가입자 보호 체계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29일 고용노동부와 재정경제부 등 관계 부처가 발표한 '퇴직연금 기능 강화 방안'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전년 말 431조7000억원보다 16.1% 증가했다. 2024년 400조원을 넘어선 지 1년 만에 5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연간 운용수익률은 6.47%로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았다. 전년 수익률인 4.77%보다 1.7%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다른 연금과 수익률 격차는 여전했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18.82%, 공무원연금은 17.2%, 사학연금은 18.9%를 기록했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이들 연금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수익률을 제약하는 요인으로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쏠린 보수적인 운용구조가 꼽힌다. 지난해 퇴직연금의 원리금보장형 수익률은 3.09%였지만 실적배당형은 16.80%를 기록했다. 실적배당형 수익률이 원리금보장형 대비 5배를 웃돌았지만 전체 적립금에서 실적배당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4.6%에 불과했다. 반면 원리금보장형 비중은 75.4%에 달해 전체 수익률을 제약했다.
정부가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해 가입자의 선택권을 넓히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계약형은 가입자가 금융회사와 계약을 맺고 개별적으로 운용상품을 선택하는 구조다. 반면 기금형은 별도 수탁법인이 적립금을 모아 투자 전략을 세우고 자산 배분과 운용을 맡는다.
개인이 상품을 선택하는 데 따라 운용 성과가 좌우되는 구조를 보완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을 관리하면 수익률을 높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 인력이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고 시장 상황에 맞춰 운용 전략을 조정할 수 있다. 적립금을 모아 운용하면 규모의 경제에 따른 비용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수탁법인은 설립 주체에 따라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으로 나뉜다. 각각 금융회사가 설립하는 방식, 복수의 사용자나 노사단체가 연합해 설립하는 방식,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처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기금형을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적용할 계획이다. 사업장이 기존 계약형과 기금형을 함께 설정하고,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얻어 기금형을 기본값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다만 운용을 전문기관에 맡긴다고 수익률 개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하락하면 투자 자산 가치가 떨어져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수탁자 책임을 법률에 명시하고, 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과 가입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규정할 방침이다.
투자 운용과 이해상충 관리, 설명의무 등 일부 영역에서는 수탁법인이 의무 위반과 손실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거나 고의·과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적립금의 0.25% 수준에 해당하는 운영위험준비금도 의무적으로 쌓도록 할 방침이다.
기존 계약형 제도도 함께 손질한다. 현재 70%인 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확정기여형과 IRP의 투자 대상에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 등을 추가할 계획이다. 수익률과 위험조정성과를 기준으로 디폴트옵션 상품을 평가해 성과가 낮은 상품을 퇴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11월 중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마련해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를 추진할 계획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후 소득의 안정성과 수익성 간에 균형을 맞춰 노동자 노후를 든든하게 지켜내는 제도적 기반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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